무용

발레리나들은 언제부터 말랐을까?

  • 2,550
  • 0
  • 글주소

  2019년, 크로넨 신문사에서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의 발레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아카데미의 일부 교사가 어린 학생들에게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흡연을 권유하고, 교사들이 학생을 이름대신 옷 사이즈로 불렀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에요. 이 사건으로, 무용수의 마른 몸에 집착하는 발레계의 이면이 드러나게 됐어요. 발레리나들은 고난이도 동작을 연마하는 동시에, 가늘고 균형 잡힌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고된 다이어트를 병행해야 하는데요. 이 과정이 얼마나 고된지, ‘발레리나보다 신체 조건을 까다롭게 선발하는 직업은 우주비행사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대체 발레 무용수들은 언제부터, 왜 말라야 했을까요?

 

발레리나는 원래 마르지 않았다?

  무용수들이 마른 몸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어떤 동작에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군살 없는 몸이 필요하기 때문인데요. 겨우 몇 백 그램일지라도, 몸이 둔해지면 동작 구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무용수들은 매일 연습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몸을 점검합니다. 하지만 300년이 넘는 발레의 역사 속에서 무용수에게 이토록 마른 몸이 요구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이는 19세기에 가장 유명했던 두 명의 발레리나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죠.

  먼저, 고전발레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에서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는 동작 ‘푸에테’를 처음으로 성공시킨 이탈리아의 발레리나 피에리나 레냐니(Pierina Legnani)에요. 그녀는 한 다리를 축으로 삼아 회전하는 ‘푸에테’ 동작을 무려 32회나 선보인 발레리나로 잘 알려져 있죠. 다음으로, 러시아의 발레리나 마틸다 크셰신스카(Matilda Kshesinskaya)인데요. 크셰신스카는 고난이도 테크닉 동작은 물론 매력적인 외모로 러시아 대공들과 끊임없는 스캔들을 일으킨 주인공으로도 유명했죠. 그런데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로 손꼽혔던 이 둘의 신체는 현재 발레리나와 아주 달랐어요. 둘은 150cm 정도의 작은 키와 통통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피에리나 레냐니 / ⓒ 위키백과
마틸다 크셰신스카 /ⓒ 위키백과


  두 사람이 활동하던 당시, 발레계에서는 파워풀하고 카리스마 있는 테크닉 동작을 잘 구현하는 무용수가 사랑을 받았다고 해요. 때문에 당시 발레리나들에겐 마른 체형보다 동작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힘이 우선시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상적으로 여기는 무용수의 신체조건은 긴 팔과 다리, 가녀린 몸과 작은 얼굴이죠. 이런 기준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요?

 

“Ballet is women”

  미국 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안무가중 하나였던 그는, 유독 발레리나에게 혹독한 다이어트를 요구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어요. 발란신은 발레 동작의 조형미를 위해 마르고 긴 신체의 여자 무용수를 선호했고, 심지어 이들에게 성형수술까지 강요했다고 해요. 그의 무대에 오른 무용수들은 바디라인이 돋보이는 타이즈를 입어야 했고, 점점 신체의 사이즈에 강박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발란신의 발레리나들을 “Mr.B의 발레리나”로 불렀다고 하는데요. 무용수들이 신체 타입이 얼마나 획일적이었을 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죠.

  발란신은 파리에서의 발레뤼스가 해체된 후, 새로운 발레를 개척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고층 빌딩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를 마주한 그는 이에 영감을 받아 ‘미국적이고, 현대적인’ 발레 양식을 확립했어요. 그 결과 빠른 속도감과 신체의 조형미가 강조된 네오 클레식(Neo Classicism) 발레가 탄생했습니다. 이 양식의 작품 대부분이 줄거리가 없는 추상 발레였어요. 때문에 인물의 감정 표현보다는 음악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동작의 조형미가 중요했죠. 특히 발란신의 작품은 무용수 몸의 ‘선’을 드러내는 동작이 많았기에, 발레리나들의 체형 기준은 더욱 가혹하게 규정되었어요. 발란신은 ‘Ballet is women’이라는 어록까지 남기며 여성의 신체 미학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발레뤼스

   1990년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파리에서 창단한 발레단이에요.

   피카소, 샤갈, 스트라빈스키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협력하면서, 고전발레의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레의 가능성을 열었어요.

 

 George Balanchine  /ⓒ 위키백과
오늘날 이상적인 체형의 무용수 
Svetlana Zakharova /ⓒ Zakharova instagram

 

아름다운 신체에 대한 고정관념

  시간의 흐름을 타고 예술 역시 변해가면서, 그에 맞는 무용수들의 체형도 바뀌어 왔습니다. 발레리나의 마른 몸은 이제 세계 어디에서나 강조되는 표준이 되었고요. 하지만, 이에 반기를 든 10대 소녀가 있었는데요. 미국에 사는 리지 하웰은 다섯 살 때부터 10년간 발레를 해왔으며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활동 중입니다. 그녀는 SNS를 통해 ‘자신의 마르지 않은 몸이 발레를 하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했어요. 그녀의 이런 태도는 곧 그녀를 SNS스타로 만들어 주었죠. 현재, 발레뿐만 아니라 무용계 전체에서도 무용수의 신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요. 앞으로 좀 더 다양한 체형의 발레리나를 볼 수 있게 될지,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류한울·조주연 공동 작성

 

 

 

참고자료
 - 이은경. 『즐거워라 발레』, 범조사. 2001.
 - 한지영. 『발레작품의 세계』, 서울: 플로어웍스, 2021.
 - 배소심·김영아. 『세계무용사』, 서울:혜민북스, 2018.
 - 수잔오. 『발레와 현대무용』, 서울:시공아트, 2018.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등록 : 11-17

키워드

#발레리나 #다이어트 #고정관념 #조지발란신 #발레뤼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