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발레가 아니라 춤, 그것도 재미있는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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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발레 공연은 어떨까요? 재미있는 율동과 발레 동작이 섞인 안무에 차분한 클래식 대신,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연이요. 공연 중간마다 작품에 대한 해설을 붙여주고, 무용수가 추고 있는 발레 자세의 용어를 알려주죠. 마치 어린이 발레교실과 같은 공연 말이에요! 현실에선 이처럼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발레 공연을 찾아보기 힘든데요.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발레에 대한 문턱을 낮출 수 있을까요? 바로 이와 같은 고민을 했던 한 사람이 있었어요. 신 고전주의를 지향하며 20세기 미국 발레의 대중화와 부흥기를 이끌었던 제롬 로빈스(Jerome Robbins, 1918~1998)였죠. 

 

춤이면 다 좋아!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 무용가

  제롬 로빈스는 뉴욕의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예술을 가까이하며 성장했어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꽤 소질이 있어 어린이 콘서트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기도 했죠. 예술적 재능이 다분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그는 예술 관련 학과가 아닌 뉴욕대 화학과에 입학했어요. 1년 뒤 미국에 찾아온 대공황이 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는데요.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대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대신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 거예요!

  그는 댄서, 감독, 마임 및 교사 등 여러 방면으로 예술적 재능을 펼쳤던 글럭 산도르(Gluck Sandor, 1899~1978)를 사사하며 무용가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어요. 무용에 대한 그의 열정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정도였는데요. 그는 발레, 현대무용, 스페인 무용, 작곡 등 춤과 관련되었다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것들을 학습했거든요.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그의 창작력은 이런 그의 열정의 씨앗이 맺은 열매였던 셈이에요.

 

제롬 로빈스 ©제롬 로빈스 재단

 

  로빈스는 스승인 글럭 산도르가 이끌던 산도르 컴퍼니의 무용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공연에 주역 무용수로 참여했어요. 이디쉬 극장에 배우로 데뷔하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까지 진출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그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는데요. 뮤지컬 등의 안무를 맡았던 조지 발란신을 만난 것이에요. 로빈스는 신고전주의의 창시자인 발란신에게 매료되어 ‘발레씨어터’에 입단해, 무용수로서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했어요. 스트라빈스키의 대표 발레작 <페트루슈카>에서는 주인공 페트루슈카를 맡아 혼을 가진 인형의 슬픔과 이중적인 모습을 완벽히 표현해 찬사를 받았죠. 이외에도 다양한 작품에서 코믹하고 유머러스한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 내며 이름을 날렸어요.

 

자신만의 안무를 찾아

  발레씨어터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면 할수록, 그에게는 자신의 안무를 창작하고픈 열망이 점점 더 크게 자리 잡았어요. 발레씨어터는 러시아에서 활약하던 무용수들과 러시아적 전통 스타일에서 발전된 형태를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로빈스는 이러한 스타일에서 벗어나 미국을 테마로 하는 작품을 안무하기로 결심했죠. 이렇게 1944년 탄생한, 발레 <팬시 프리(Fancy Free)>는 ‘미국적'인 것으로 똘똘 뭉쳐진 그의 첫 작품인데요. 당시 겪고 있던 2차 대전을 배경으로 두고, 해군을 소재로 안무를 창작했답니다. 이 작품은 20여 차례 커튼콜을 받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어요. 힘든 시기에 ‘미국적’인 것을 더욱 원했던 대중들의 열망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죠. 재즈풍의 발레음악을 비롯해 당시 발레 작품으로서는 낯설기 짝이 없는 시도였지만, 가장 미국적인 음악과 무용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인기 몰이를 이어갔어요.

 

 

  이후 발레 <팬시 프리>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품으로도 각색되었어요. 안무가로서도, 브로드웨이 뮤지컬 연출가로서도 성공적인 데뷔작이 되었죠. 1957년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해석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안무하고 연출까지 맡았고요.  이 작품은 발레와 현대무용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안무로 극찬을 받았어요. 이후, 로빈스는 <법정으로 가는 길에 생긴 재밌는 일들>, <지붕 위의 바이올린> 등 다양한 작품으로 브로드웨이를 휩쓸었어요. 

 

예술가로 승승장구했지만 동료들에게 경멸받은 안무가, 제롬 로빈스 : 네이버 포스트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한 장면 ©경향신문

 

  로빈스의 발레에 대한 열정도 여전했어요. 1948년 발란신이 뉴욕시티발레를 창단하자 로빈스는 조감독을 맡아, 미국적 테마를 담은 작품이나 코믹 발레 등,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창작하여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어요. 이후에는 미국의 전역을 순회하기 위해 발레단 ‘Ballets: U.S.A’를 창단했지만, 1969년 다시 뉴욕시티 발레단으로 돌아와 발레마스터의 자리를 지키며 추상적이고 그의 특색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안무했어요.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소재로 한 독특한 작품도 있었고, 아무 음악도 없는 무성 발레를 시도하기도 했답니다.

 

 

  춤의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춤을 익혔던 재주꾼, 제롬 로빈스는 ‘뮤지컬 발레’와 같이, 춤의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서라면 장르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았어요. 유쾌함을 겸비한 그의 일부 작품들은 ‘코믹 발레’라 일컬어졌었는데요. 그의 신선한 시도에 한 번 감탄을, 새로운 장르로까지 인정받았던 그 작품성에 또 한 번 감탄을 하게 됩니다. 발레가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도 로빈스처럼 발레에 재미있는 것을 덧붙이거나 어려운 부분을 걷어내 본다면 어떨까요. 상상은 자유이고, 그 상상이 또 어떤 변화를 만들지 모를 일이니까요.

 

 

 

류한울·조주연 공동 작성

 

 

 

ㅇ 참고자료

- 장두이, 신수정. 『올 어바웃 뮤지컬』, 엠에스 북스, 2015.

- 윤소윤 (1999). 미국 발레사에 나타난 Jerome Robbins 안무 특성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정승희. 『서양 무용사』, 서울: 보문각,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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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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