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빨래>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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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는 그날의 무드를 정해줘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고요. 또 우리는 향기로 순간을 기억하기도 하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기간 내내 한 종류의 향수만 뿌려보세요. 시간이 지나고 그때 뿌렸던 향을 마주하면 소중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거예요. 그렇게 떠오른 기억 덕분에 미소도 한 번 더 지을 수 있고요. 이처럼 향기는 잊었던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요. 보이지 않는 향기와 향기가 가진 힘을 온 마음 다해 전해주는 공연이 있어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뽀송한 향을 지닌 뮤지컬, <빨래>입니다!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빨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뮤지컬 <빨래>의 제작사 씨에이치수박이 내건 슬로건입니다. <빨래>에는 총 8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해요. 이들에게는 즐겁지만 때로는 버거운 서울살이를 견디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꿈을 꾸는 20대 나영부터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주인 할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죠. 극의 배경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어쩐지 오늘날의 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여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도 작품을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겠네요!
그래서일까요? 뮤지컬 <빨래>는 2005년 초연 이후로 대학로를 대표하는 뮤지컬로 자리 잡았어요. 다양한 연령의 관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죠. 나영은 꿈을 쫓아 상경했지만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솔롱고도 꿈을 따라 한국에 왔지만 이주 노동자라는 이유로 갑질만 당하고요.
나영이 세 들어 살고 있는 단칸방의 문을 꼭 걸어 잠글 때는 이웃과 소통이 단절된 우리 사회가 엿보여요.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에 갈 때마다 겪게 되는 솔롱고와의 만남도 어딘가 불편합니다. 어른들은 자꾸만 불필요한 관심을 보이고, 낯선 이웃과 마주치는 것도 탐탁지 않은데요. 이내 이들은 온 마음을 다해 서로를 보듬어 주게 돼요. 다름 아닌 ‘빨래’를 계기로 말이에요. 주인 할매는 빨랫감만 봐도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다고 말해요. 빨래는 사람들의 사연을 고스란히 보여주니까요. 만약 공연을 관람하러 가신다면, 등장인물들의 빨랫감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대학로 소극장의 시대가 찾아왔어
뮤지컬 <빨래>는 2005년부터 17년 동안 500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만났어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기록은 경신되고 있답니다. 이 수치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어요. 바로 뮤지컬 <빨래>가 소극장 뮤지컬이라는 점과 국내 창작 뮤지컬이라는 점이죠.
빨래가 제작된 2000년대는 국내 뮤지컬 산업의 성장기였어요. 이때쯤 대형 뮤지컬 공연장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유명한 해외 작품들을 내한 공연이나 라이선스 공연의 형태로 국내에서 만날 수 있었죠. 특히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오페라의 유령>이 국내에서 초연되면서 뮤지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아주 커졌답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국내 뮤지컬 산업이 성장하게 되었고, 이즈음 공연 예술의 메카인 대학로에도 많은 공연장이 생겨났어요. <빨래>처럼 오랜 기간 사랑받은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인 <루나틱>, <김종욱 찾기>도 2000년대에 만들어졌고요. 2000년대는 <명성황후>, <베르테르>와 같은 대형 창작 뮤지컬들이 탄생한 시기이기도 한데요. 해외 작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뮤지컬 시장의 성장을 도모하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뮤지컬 <빨래>가 지금까지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메시지예요. 역사적 이야기 혹은 사랑 이야기에 기반한 이전 창작 작품들과 달리, <빨래>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우리네 이야기를 전달하죠. 사람 사는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말이에요.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고, 관객들로부터는 깊은 공감을 얻었답니다. 이처럼 뛰어난 작품성과 높은 객석 점유율을 자랑하는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빨래>는 두산아트센터의 중극장인 연강홀에서의 공연을 제외한 모든 공연을 소극장에서 선보였어요. 덕분에 관객들은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을 거예요. 소극장 공연에서는 관객과의 소통을 빼놓을 수 없겠죠? 코너 속의 코너라고나 할까요? 공연 도중에 다수의 관객이 자발적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세요!
🧺무대 위로 <빨래>를 널어놓은 사람들!
뮤지컬 <빨래>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로 우리네 삶을 이야기했다는 점을 꼽았는데요. 한창 대중적인 내용의 작품들이 선보여질 때 어떻게 새로운 노선의 작품이 극장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그 대답은 <빨래>의 시작점에 있습니다. 사실 뮤지컬 <빨래>의 시작점은 공연제작사가 아니라 학교였어요. <빨래>는 원래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의 졸업 공연이었거든요. 그로부터 2년 뒤, 약간의 수정을 거쳐 상업 공연으로서 대중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친 결과 지금의 <빨래>가 완성된 거죠. 초연 때보다 러닝타임이 1시간가량 늘어나고 뮤지컬 넘버 역시 10곡 이상 추가되었답니다.
<빨래>에는 추민주 연출가의 삶이 담겨 있어요. 작품 속 나영처럼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살이를 시작한 추민주 연출가는 처음으로 빈부격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서울 변두리의 반지하 방에 거주하던 시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삶은 이어진다는 진리를 깨달아요. 그리고 ‘빨래’라는 행위에 담긴 삶의 의지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 냈죠. 그밖에 옥상에 빨래를 널러 간다는 설정이나, 남자 주인공이 이주 노동자라는 설정을 비롯해 주인공 나영이 일하는 곳이 서점이라는 점 등 작품 곳곳에서 연출가 본인의 실제 경험을 풀어냈어요. 뮤지컬 팬덤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넘버인 ‘참 예뻐요’는 이주 노동자 남성에게 고백을 받은 지인의 경험에서 착안한 것이랍니다. 그래서 더 진정성 있는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출가 추민주와 작곡가 민찬홍은 <빨래>를 계기로 뮤지컬계에서 “콤비”로 불리고 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당시 시작된 인연은 꾸준한 협업을 통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죠.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고 밝힌 민찬홍 작곡가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뮤지컬 음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전했어요. 추민주 연출가의 제안으로 <빨래>를 통해 처음 뮤지컬 음악에 도전한 것이죠. 이들의 찰떡호흡은 이번 달부터 선보이고 있는 뮤지컬, <어차피 혼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답니다.
⛩<빨래>, 뮤지컬계의 등용문이라고?
이정은, 정문성, 이규형.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떠오르는 이 배우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네, 바로 뮤지컬 <빨래>에 출연했다는 것이죠. 이들은 2008년과 2009년 즈음부터 <빨래> 무대에 올랐어요. 이정은 배우는 주인 할매로, 정문성 배우와 이규형 배우는 솔롱고 역으로 말이죠.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정문성 배우가 솔롱고 이외에 다른 역도 맡은 적 있다는 것인데요, 8명의 주요 인물 중 어떤 역할이었을까요? 정답은 바로 ‘마이클’ 입니다. 정문성 배우는 <빨래>에 참여한 역대 배우들 중 두 명 이상의 역할을 연기한 최초의 배우예요. 이정은 배우와 이규형 배우는 지난 2019년, 10년 만에 정식 음원 발매가 진행된 <빨래>의 OST 녹음에 참여하며 작품에 대한 애정과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답니다.
<빨래>를 거쳐간 모든 배우가 주목받을 만한 연기를 펼쳤지만,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배우가 있어요. 바로 홍광호 배우입니다. 홍광호 배우가 <빨래>라는 작품을 특히 애정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는데요. 그는 7년이라는 공백을 사이에 두고 ‘솔롱고’역을 두 차례나 연기했어요. 놀라운 것은 공백 동안 홍광호 배우가 ‘<오페라의 유령> 최연소 팬텀’, ‘한국 배우 최초로 영국 웨스트엔드 진출’과 같은 화려한 수식어를 얻었다는 사실이죠. 국내외 대극장에서 수많은 관객 앞에 섰던 그가 대학로의 소극장 뮤지컬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모두의 기대감을 높였고, 그 결과는 당연히 모두를 만족시켰어요.
무대 위에서가 아닌 무대 밖에서 뮤지컬 <빨래>가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빨래>의 숨은 주역, 김희원 배우도 빼놓을 수 없어요.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2005년 초연 당시 관객으로 <빨래>를 접했고, 바로 작품의 흥행을 확신했다고 밝혔어요. 그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초연 이후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까지 김희원 배우는 작품의 엔젤 투자자이자 예술감독으로서 많은 도움을 줬답니다. 이처럼 창작진과 제작진, 그리고 훌륭한 배우들의 힘이 모여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뮤지컬 <빨래>가 완성되었어요.
![포토] 연극 '빨래' 10주년, 포즈 취하는 김희원](https://cdn.newscj.com/data2/content/image/2015/06/14/.cache/512/201506140243677.jpg)
뮤지컬 <빨래>를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이 많고, 지금도 공연장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기 때문에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아껴두었어요. 그러다 보니 가장 핵심이 되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는데요. <빨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관객들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빨래>를 찾는 이유도, 또 수많은 관계자들이 빨래의 작품성을 인정하는 이유도 결국은 ‘희망’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뮤지컬 <빨래>는 위로만큼이나 더 큰 희망을 전해주거든요.
‘슬플 땐 빨래를 해’라는 넘버에는 “자 힘을 내, 자 힘을 내, 어서”라는 가사가 있어요. 그런데 사실 정말 힘들고 지칠 때 “힘내”라는 말은 그다지 와닿지 않잖아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뮤지컬 <빨래>를 보면 힘을 내라고 하는 직접적인 말에서도, 빨래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라며 빙빙 둘러말하는 대사에서도 웃음이 나요. 그렇게 희망을 느끼고 결국은 힘이 난답니다. 집에서 빨래를 할 때마다 작품 속 인물들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라면, 조금만 더 기운을 내 빨래를 해 보면 어떨까요? 좋아하는 향을 품은 섬유유연제를 잔뜩(은 아니고 적당량만) 넣고 말이에요. 그렇게 근심과 걱정은 날려버리고, 우리 또 다른 내일을 살아가 보아요!
ㅇ참고자료
- 김소라. “한국 현대 창작뮤지컬의 극본 연구 : 199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우석대학교 국내석사학위논문. 2011.
- 김언. “뮤지컬 빨래의 제작 과정 분석을 통해 본 소극장 뮤지컬의 제작모델 연구”. 단국대학교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국내석사학위논문. 2010.
- 조승미. "2009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수상한 연출가 추민주”. 여성신문. 2009
- 박성준. "졸업작품으로 만들땐 이렇게 오래 공연될 지 상상도 못했다”. 세계일보. 2019
- 박정환. "'눈알낚시'하던 '아저씨' 김희원이 '빨래'에 매달리는 이유”. 오마이스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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