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발레리나의 팔자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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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의 몸은 무언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가만히 서있는 발레리나를 떠올려볼까요. 곧은 어깨와, 얇은 팔과 다리, 긴 목선... 아름다운 선을 가진 여성의 모습이 그려지시죠? 그런데 그녀가 스텝을 밟기 위해 발을 내딛는 순간. 여러분의 시선은 발레리나의 이곳에 꽂힐지 모릅니다. 바로, 그녀의 발이죠. 양발을 바깥으로 벌린 채 팔자걸음으로 걷는 발레리나의 발 말입니다. 양 발끝이 마치 부채 모양처럼 벌어진 채로 걷습니다. 그토록 우아한 자태를 지닌 발레리나들은, 왜 ‘팔자걸음’을 하며 걷는 걸까요?
발레리나의 턴 아웃

팔자걸음은 ‘턴 아웃 (Turn out)’이라 부르는 자세에서 온 것입니다. 사진에서처럼, 무릎뼈와 발끝이 바깥쪽을 보도록 다리를 회전한 상태를 말하는데요. 이는 모든 발레 동작의 기초가 되는 자세죠. 턴 아웃은 발레에서 중요시하는 신체의 정렬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체 정렬은 무게 중심뿐 아니라, 얼굴, 몸, 팔, 손, 다리, 발 등 모든 신체구조가 바른 위치와 바른 방향을 유지해야 하는데요. 시선까지 바른 방향을 응시하고 나서야 신체 정렬은 완성됩니다. 무용수가 이토록 복잡한 신체 정렬을 한 후, ‘턴 아웃’까지 취하고 나면, 비로소 발레 동작을 시작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 갖춰집니다. 이 자세는 해부학적으로 봤을 때, 골반에서 두 다리가 완전히 바깥을 향한 상태인데요. 훈련되지 않고서는 취하기 힘든 자세죠. 또, 방향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간다고 하니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턴 아웃, 왜 하게 된 걸까?

그렇다면 결코 쉽지 않은 이 ‘턴 아웃’을 도대체 왜! 하게 된 걸까요? 프랑스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발레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등장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요.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워 무려 26편의 발레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동했을 정도로 발레를 사랑했던 루이 14세는, 1670년에 무용을 그만둔 후에도 발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이어나갔습니다. 현재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전신 격인 ‘왕실 음악 무용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발레 테크닉을 개발시키고, 발레 용어를 정리해 학문적으로 정착시킨 것도 바로 루이 14세의 업적이었죠. 이 시기 발레는 궁정 무용에서 지금의 극장 예술 형태로 발전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바로, ‘무대와 관객이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객이 정면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프로시니엄 무대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객석에서 볼 때 원형이나 반원형으로 보이는 무대로 액자 무대라고도 불리는 프로시니엄 무대의 탄생은 무용수 개인의 솜씨를 과시할 수 있는 안무 스타일의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관객들이 무용수를 바라보는 각도가 높아지면서, 무용수의 발 움직임과 정면 프로필이 강조되었기 때문이죠. 이때 생겨난 것이 바로 ‘턴 아웃’이에요.
발레의 아름다움은 턴 아웃에서부터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요구되었던 턴 아웃은, 시각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무용수가 더 아름답고 멋진 동작을 수행할 수 있게 합니다. 무용수는 춤추는 내내 턴 아웃을 유지하는데요. 이는 회전과 점프, 또는 포즈를 취하는 동작에서 다른 동작으로 이동할 때, 각 동작 관계에서 움직임의 선이 돋보여지게 하죠. 그뿐만 아니라, 턴 아웃은 다양한 고난이도의 기술을 소화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자세랍니다. 무용수가 다리를 더 큰 각도와 방향으로 자유자재로 쓸 수 있도록, 움직임의 반경을 넓혀주기 때문입니다. 선의 예술인 발레의 아름다움은 턴 아웃의 고통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죠?
뚜껑을 열기만 하면 오르골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작은 발레리나처럼, 무대 위 그들의 모습은 그저 예쁘게만 보였었는데요. 그 아름다운 선을 지켜내기 위해 말 그대로 ‘뼈를 뒤트는’ 고통을 인내한 무용수들의 노력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제, 우아한 자태로 팔자걸음을 걷는 발레리나를 본다면, 물음표대신 느낌표를 달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께도 이제 그들의 팔자걸음이, 그들의 노력이 ‘아름다워!’ 보이시나요?
- 류한울·조주연 공동 작성
참고자료
- 김윤경. 필라테스와 발레의 기본동작 및 기능 비교연구. 석사학위논문, 안동대학교, 2018.
- 이은경. 『발레 이야기』, 서울: 열화당, 2019.
- 정재왈. 『발레에 반하다.』, 서울: 아이 세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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