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종합예술의 결정체, 발레 뤼스(Ballets Ru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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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드뷔시, 모리스 라벨, 스트라빈스키... 미술, 연극, 음악을 대표할만한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모두 파리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그들이 향한 곳은 어디였을까요? 전시회도, 음악회도, 그렇다고 연극 무대도 아닌, ‘발레 뤼스(Ballets Russes)’라는 발레단이었습니다. 발레 뤼스는 당시 각각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던 예술가들과 발레의 만남이 이뤄졌던 곳인데요. 이렇게 다양한 예술적 요소와 결합한 발레는 단순한 오락물로 여겨지던 기존의 발레를 종합 극장 예술로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실험적인 도전과 독창적인 예술세계로 중무장한 20세기 최고의 발레단, ‘발레 뤼스’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세기의 흥행사, 디아길레프
프랑스어로 ‘러시아 발레단’이라는 의미를 가진 ‘발레 뤼스’는 1909년 ‘세기의 흥행사’라 불리는 디아길레프(Sergey Pavlovich Diaghilev)에 의해 창단되었어요. 발레단의 후원자이자 동시에 제작자, 예술 감독의 역할까지 소화했던 디아길레프는 재능 있는 안무가를 발굴하고 당대의 예술 정신과 다양한 예술가들을 융합시키면서, ‘새로운 발레’를 만들었어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던 셈이죠. 사실, 천재 안무가이자 감독이자 기획자였던 디아길레프의 발레 입문 시기는 꽤 늦은 편이었습니다. 본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려고 했던 그는, 음악에 대한 관심을 접지 못하고 뒤늦게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공연 기획자로 진로를 바꾸었는데요. 이때 미처 놓지 못한 음악에 대한 애정은 후에 스트라빈스키 등 수많은 음악가와 발레 뤼스의 협업을 가능케 했다고 합니다.


발레뤼스의 역사
파리에서 처음 결성된 발레 뤼스는 같은 해 샤틀레 극장에서 첫 시즌을 시작했어요. 러시아 출신의 무용가들이 선보이는 화려한 테크닉과 강렬한 에너지가 담긴 무대는 순식간에 발레를 유럽의 인기 예술로 만들었고, 개막 공연이었던 미하일 포킨(Michel Fokine)의 안무작 <아르미드의 관>, <향연> 중 ‘파랑새 파드되’는 파리 관객을 충분히 매료시켰죠. 이 눈부신 시작을 가능케 한 인물은 발레 뤼스의 첫 번째 상임 안무가였던 ‘포킨’인데요. 전통 발레의 상투적이고 전형석인 형식을 비판했던 그는 발레에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무대에 동서양이 구별되는 이국적인 의상과 요소를 등장시켰어요.

발레 뤼스의 20년 역사는 흔히 세 개의 시기로 구분되는데요. 포킨이 활동하던 때는 발레 뤼스의 ‘황금기’라 불리던 1기였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무용수 바슬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와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 <불새>와 <페트루슈카>를 작곡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가 함께 이 시기를 이끌었어요. 이후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이 잇따르면서 발레 뤼스의 2기가 열렸습니다. 이전까지 러시아 출신의 예술가와 주로 작업해왔던 발레 뤼스는 이때부터 서유럽의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했어요. 특히 기존에 부가적 요소로 치부하던 무대, 음악, 대본, 의상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고, 발레와 다양한 예술의 관계에 집중했어요. 이 과정에서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등의 세계적인 작곡가와 협업하기도 했고요. 특히,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무대의상과 디자인으로 참여하고, 에릭 사티의 음악과 장 콕토의 단막 시나리오로 구성된 1917년작 <퍼레이드(Parade)>는 대중의 엄청난 기대를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일부가 단단한 판지로 되어있는 피카소의 입체 의상은 무용수에게 최소한의 움직임만 허용했고, 독특한 무대 구성과 안무, 음악은 전체적으로 불협화음을 이루었죠. 그럼에도 이 실험적인 발레 공연은 예술을 각각의 독립적인 형태로 드러내면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해체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어요



발레뤼스의 대표작
발레 뤼스의 작품 중 실험성이 돋보이면서 잘 알려진 작품으로, 세 작품을 꼽을 수 있는데요. 포킨이 안무를 짜고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불새>는 동명의 러시아 동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어요. 불새가 소유한 축복과 저주의 의미, 러시아의 민족주의를 담은 작품으로 역동적인 안무와 독특한 무대의상과 세트가 특징이에요. 포킨의 <페트루슈카> 역시 스트라빈스키가 작곡을 맡았는데요. 한 여자를 사랑한 두 남자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인간의 나약함과 이중성을 깊이 있게 표현함으로써 현재까지도 걸작으로 꼽히고 있어요. 이 작품은 `페트루슈카 화음'이라는 스트라빈스키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담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마지막으로,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입니다. 러시아의 원시적인 종교 제전을 배경으로 봄의 도래를 축하하는 다양한 원시 의식을 묘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발레를 기존의 아름다움에서 탈피시켜, 새로운 형식을 선보인 작품인데요. 최초의 모더니즘 작품 중 하나로,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곡이기도 하죠. 클래식 레퍼토리 중 가장 많이 녹음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어요.

프티파의 고전주의에 결박되어 있던 발레가 그 전형성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움과 모험을 한껏 맛보았던 시기, 그 시작엔 발레 뤼스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발레를 지배했던 고전주의 발레에 비한다면, 발레 뤼스는 탄생부터가 파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다양한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더욱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면모를 갖춘 발레를 선보였죠. 이렇게 발레 뤼스의 유산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 현대 발레의 시발점이 되었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또는 관람해온 발레 무대는 어떤 모습인가요? 혹시, ‘발레는 이런 모습이어야 해’라는 틀을 갖고 있진 않나요? 우리도 다음엔 ‘발레답지’않은, 발레 공연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류한울·조주연 공동 작성
참고자료
- 한지영. 『발레작품의 세계』, 서울: 플로어웍스, 2021.
- 임지정.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기 예술의 특징을 통해서 본 디아길레프의 발레뤼스.『인문사회』Vol.6 N0.2(2015).
- 임효진, 윤희경.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 공연기획 특징에 관한 연구. 『무용예술학연구』제33집(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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