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만 죽이면 금수저가 될 수 있다고?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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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권력을 갖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재력으로 사람의 서열을 나누고 가난한 이들을 멸시하는 사회악을 누군가 간단하게 제거해주는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만약 그 ‘누군가’가 영리하고 매력적이라면? 아마 더욱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겠죠! 11월 13일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코미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Gentleman's Guide to Love and Murder)가 바로 이런 이야기예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때는 1909년 영국 런던, 가난한 백수의 삶을 살고 있던 몬티 나바로는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방문한 메이드, 미스 마리에타 슁글을 통해 놀라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돼요. 알고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는 막강한 가문인 다이스퀴스 집안의 딸이었는데, 천민과 사랑에 빠져 가문에서 버림받고 평생을 살았다는 거예요. 그러니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는 바로 몬티였던 거죠! 이야기를 들은 몬티는 자기 앞에 있는 후계자 8명을 죽이면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게 돼요. 마침 이 8명은 악인에 가까운 인물들이지 뭐예요? 갑질하는 부동산 재벌, 열심히 비자금을 조성하는 자선사업가, 아버지의 재력만 믿고 날뛰는 2세 등이 있었죠. 이들은 귀족이라는 이유로 지위가 낮아 보이는 몬티를 무시해요. 몬티는 드디어 결심했어요. 다이스퀴스 가문의 1순위 후계자로 거듭나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기로!
🛬라이선스 뮤지컬이 국내에서 성공하기까지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은 로이 호니먼(Roy Horniman, 1874-1930)이 쓴 소설 <이스라엘 랭크-범죄자의 자서전(Israel Rank: The Autobiography of a Criminal, 1907)>을 원작으로 2012년 미국 하트퍼드 스테이지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작품이에요. 2014년에는 브로드웨이 4대 뮤지컬 어워즈라 불리는 토니상과 드라마 데스크 상, 외부비평가협회 상, 드라마리그 상에서 모두 베스트뮤지컬 상을 받았죠. 국내에서는 2018년에 초연하게 되었는데요. 영어로 된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해 무대에 올리는 만큼, 원작의 위트를 국내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게 관건이었어요. 다행히 공연은 쓴웃음이 배어 나오는 이야기의 역설적인 면을 유쾌하게 살려냈어요.
🔮뮤지컬의 재탄생, 뮤지컬에도 초월 번역이 있다!
뮤지컬의 번역은 뮤지컬 <마틸다(Matilda)>와 <타이타닉(Titanic)> 등의 작품을 담당하여 실력을 인정받은 김수빈 번역가가 맡았어요. 라이선스 뮤지컬은 자칫 잘못하면 번역이 자연스럽지 않아 국내 정서에 맞지 않고 원작의 재미를 망치는 경우가 있지만,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은 원작의 정서를 해치지 않으면서 우리 정서에 맞게 재치있고 유쾌한 대사로 번역하여 큰 호평을 받았어요. 가장 주목받은 것은 코미디 특유의 ‘패터송(Patter Song)’이에요. 패터송이란, 가사가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코믹한 내용의 노래죠. 그렇기 때문에 패터송을 우리말 가사로 바꾸기는 더욱 쉽지 않아요. 하지만 다이스퀴스가 부르는 넘버 중 ‘I don’t understand the poor’이라는 가사를 ‘왜 가난하고 그래’로 번역한 순간, 다이스퀴스의 거만함이 원곡에 그대로 드러나요. 넘버 ‘왜 가난하고 그래’ 는 몬티가 가문에 대해 알기위해 하이 허스트 성에 들어가서 백작 의자에 앉아 허세를 부리다가, 현 다이스퀴스 백작인 에덜버트에게 들키게 되면서 불리는 곡인데요. 애덜벌트가 가난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왜 가난하고 그래 왜 가난하고 그래”라며 노래 부르는 장면은 이 작품의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 패터송 예시
패터송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는 몬티와 시벨라, 피비가 함께 부르는 '결혼할 거야, 그대랑' 넘버예요. 몬티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 피비는 그와 결혼하겠다고 말하고, 몬티는 급히 시벨라를 숨기랴 피비를 상대하랴 이 방 저 방 옮겨다니며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결국 피비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내용인데요. 배우들은 귀에 잘 꽂히는 딕션으로 빠른 가사를 소화하여 관객들의 이목을 확 집중시켜요.
👉‘왜 가난하고 그래’ 넘버 영상
🕺주연들의 빛나는 솔로 활약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의 핵심은 ‘다이스퀴스들의 죽음’이에요. 다이스퀴스는 한 명의 배우가 후계자 9명을 연기하는 ‘멀티롤(Multirole)’ 캐릭터인데요. 후계자들의 허무한 죽음을 완벽한 웃음 포인트로 만들어야 하죠. 불륜의 여인과 스케이트를 즐기다가 꽝꽝 얼어붙은 강으로 곤두박질치거나, 자신이 기르는 벌떼에 공격을 당하거나, 연극 주인공을 맡은 다이스퀴스가 무대 뒤에서 진짜 총을 맞고 죽게 된다는 에피소드를 잘 살리는 게 관건이에요. 다이스퀴스 역 배우는 퀵체인지(Quick-change)를 통해 남녀노소를 넘나들며 상대 몬티 역이 누구든지 안정된 코미디 연기를 유지해요. 몬티와 관객 사이의 호흡을 놓치지 않고 웃음 포인트를 자극하기도 하죠.
반면 몬티는 빠른 노래를 정확한 음정으로 불러 캐릭터의 능청스러움과 재치를 생생하게 전달하여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요. 순수했던 몬티가 다른 후계자들을 죽이기 위해 작전을 짜고 실행하는 모습은 응원하고 싶을 만큼 귀엽고 유쾌하죠. 몬티를 연기하는 배우마다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애드리브도 조금씩 다른데요. 뮤지컬을 즐겨보는 팬들이라면 반드시 ‘회전문’을 돌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선사해요!
👉퀵체인지(Quick-change)
퀵체인지는 주로 짧은 시간 내에 의상이나 소품 등을 바꿔서 다른 모습으로 무대 위에 오를 때 쓰입니다. 무대 가까이 퀵체인지 룸을 따로 만들어 이곳에서 스태프들이 대기하다가 배우들의 의상 교체를 도와요.
🎉2021년, 그들이 무대에 오른다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이 다시 한 번 막강한 초특급 캐스팅으로 돌아왔어요! 백작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영리한 주인공 ‘몬티 나바로’ 역에는 유연석, 이석훈, 고은성, 이상이가 캐스팅됐어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의사 안정원을 연기한 유연석이 초연에 이어서 몬티 역을 담당했고, SG워너비 멤버인 가수 이석훈과 뮤지컬 라이징 스타인 고은성이 새롭게 합류했죠. 후계자 9명의 역할을 홀로 소화해야 하는 다이스퀴스 역은 꾸준히 무대에 올랐던 오만석과 재연에서 연기했던 이규형 이외에 정성화, 정문성이 합류했어요. 욕심 많은 늙은 백작부터, 청렴한 은행장, 음흉한 불륜남, 말 많은 성직자, 검은 속내가 있는 기부천사 귀부인, 연기꽝 여배우, 양봉업자, 청소부까지 9명의 인물을 훌륭하게 소화해요. 몬티의 애인이었으나 다른 귀족과의 결혼을 선택한 시벨라 홀워드 역은 이정화, 유리아가 맡았어요. 넘치는 끼와 유머감각으로 작품의 재미를 더할 배우 라인업만 봐도 이 작품, 기대해도 좋겠죠?
💬 Editor’s Comment
라이선스 뮤지컬은 원작을 살린 모방과 새로운 창조라는 두 요인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해요. 주체적으로 작품을 연구하면서 각색해야 할 부분과 원작에서 살릴 부분을 고민해야 하죠. 라이선스 뮤지컬로 성공한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은 이 두 가지 요인을 충족시킨 모범적인 라이선스 작품이에요. 최근에는 해외 뮤지컬을 중심으로 제목, 음악, 대본은 비슷하지만 안무, 의상, 연출 등은 완벽히 재해석된 한국 버전의 라이선스 뮤지컬이 등장했는데요. 많은 국내 관객들에게 사랑 받을 뿐 아니라, 해외로 역수출되는 일도 생겼다고 해요. 앞으로 원작에 대한 뛰어난 해석과 재창작을 통해 훌륭한 무대를 만들어낼 우리 창작진의 작품들을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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