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보석으로 남은 발레, 조지 발란신의 주얼스(Jew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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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석이 보석이 되기까지, 수 천 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해요. 사람들은 영롱한 빛깔을 뽐내는 보석에 감탄하지만, 그것은 본래 한낱 돌멩이에 불과했죠. 세공사는 각기 다른 성질을 갖고 있는 원석들을 하나씩 직접 다뤄보며 기술을 체득해, 가장 투명하고 빛나는 보석을 만들어 내는데요.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 이렇게 세 가지의 보석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발레 작품 ‘주얼스(Jewels)’도 이렇게 탄생했어요. 조지 발란신이 안무한 ‘주얼스’는 1967년 초연 이후 볼쇼이와 마린스키, 파리오페라 등, 해외 유명 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보석’이 되었죠. 오늘은 빛나는 ‘주얼스’를 만들어낸 안무가 조지 발란신과, 작품 ‘주얼스’에 대해 알아볼게요.  

 

1920년대 발란신 ⓒ위키백과

조지 발란신, 그의 작품세계가 궁금해!

  ‘주얼스’를 안무한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은 러시아 출생으로 황실발레학교를 졸업 후, 마린스키 발레단 소속의 무용수가 되었습니다. 입단 후 처음으로 안무 활동을 시작한 발란신은 안무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죠. 이후 발레 뤼스(Ballets Russes)에 합류해 발레뤼스의 주요 안무가가 된 그는 다양한 작품들을 안무했어요. 그는 세기의 거장들과도 작업을 함께 했는데요. 음악에 있어서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모리스 라벨과 같은 작곡가들, 그리고 무대 세트와 의상 디자인에는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와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했어요. 특히, 1928년 안무한 ‘아폴로 (Apollo)’는 이후 발란신의 신고전주의 경향을 결정지은 중요한 작품으로 남아있어요.

 

APOLLO ⓒMariinskii Teatr

  러시아 혁명과 유럽 대공황의 여파로 유럽에서의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는데요. 그가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발란신은 그의 발레 인생에서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미국에서 예술 애호가이자,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었던 커스틴을 만나게 된 것이었죠. 재능과 경험을 겸비한 발란신과 발레에의 열정을 갖고 있던 커스틴의 만남. 이는 마치 바짝 마른 장작에 불을 피운 것과 같았어요. 미국 발레의 성장은 이 둘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정도이니까요. 발란신은 아메리칸 발레학교(School of American Ballet)를 설립했고, 이후 뉴욕시티발레단을 설립하기에 이르렀죠.

  발란신은 마리우스 프티파의 영향을 받아, 자신 스스로 프티파를 ‘정신적 아버지’라고 밝혔는데요. 이는 그가 러시아의 고전발레를 계승했다는 것을 의미해요. 하지만 그가 고전발레를 그대로 차용한 것은 아니었어요. 고전발레 동작들을 변형하고 미국의 감각에 맞게 새로운 양식을 확립했어요. 이것이 바로, ‘신고전주의(Neo Classicism)’입니다.

 

추상발레의 탄생

  신고전주의는 이야기가 있는 기존의 발레 작품들과 다르게 특별한 줄거리가 없는 Abstract Ballet(추상 발레)로, 무용수들의 극적인 표현은 절제하고 오직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음악으로만 작품을 구성해요. 안무, 무용수, 음악에만 집중하여 단순함의 미학을 추구한 것이죠. 또한, 음악의 분위기와 구조에 부합 하는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표현하는 등, 무용수를 통해 '보이는 음악'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발란신은 뉴욕시티발레단에서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던 시기, 다양한 신고전주의 작품들을 만들었는데요. 그중의 백미가 바로 <주얼스>입니다.

 

피에르 아펠(왼), 뉴욕시티발레단의 수잔 패럴(중간), 조지 발란신(오) ⓒVan Cleef & Arpels
주얼스 中 다이아몬드 ⓒ국립발레단

  프랑스 보석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의 보석들에 영감을 받아 탄생 한 <주얼스>는 발란신의 신고전주의, 즉 추상 발레의 대표작이에요. 이 작품은 특별한 줄거리 없이, 세 가지의 보석을 발레로 표현하는데요. 1막에서 3막까지, 각각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1막 에메랄드는 19세기 로맨틱한 프랑스 발레 감성을 담은 안무와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음악이 만났어요. 우아한 느낌의 에메랄드처럼, 곡선 위주의 팔 동작과 섬세한 스텝이 낭만적인 음악과 어우러져 우아한 몸짓으로 시각화되었어요. 2막 루비는 스트라빈스키의 현대적인 음악과 함께 미국의 모던발레를 표현했는데요. 붉은색의 루비처럼 강렬하고 역동적인 스타일로 불규칙한 리듬과 힘차고 재치 있는 동작들이 조화를 이루어냅니다. 마지막으로 3막, 변치 않는 아름다움의 상징 다이아몬드예요. 다이아몬드는 러시아 황실 발레를 떠올리게 하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으로 기품 넘치는 클래식 발레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 ‘주얼스’의 피날레를 장식해요.  

  ‘주얼스’는 지금까지도 조지 발란신이 안무한 작품들 중, 20세기의 걸작으로 남아 있는데요. 이 작품이 화려한 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주얼스’는 신고전주의 작품의 특징대로, 서사가 없는 독립된 작품이에요. 스토리라인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오직 무용수의 동작과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데요. 이렇게 단순하지만, 단순하기에 ‘주얼스’가 더욱 아름다운 ‘보석’이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굳이 화려한 디자인 없이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충분히 빛이 나는 투명한 ‘보석’처럼 말이죠.  

 

류한울·조주연 공동 작성

 

 


ㅇ 참고자료
- 한지영. 『발레작품의 세계』, 서울: 플로어웍스, 2021.
- 이덕희. 『불멸의 무용가들』, 서울: 작가정신, 2000.
- 배소심·김영아. 『세계무용사』, 서울:혜민북스, 2018.
- 수잔오. 『발레와 현대무용』, 서울: 시공아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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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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