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서사를 마무리하는 방법, 앤솔러지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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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년 차에 접어든 방탄소년단(BTS)의 새로운 계획, 들으셨나요? 당분간 단체 활동은 휴식기를 가지고 솔로 활동에 전념할 것이라는 소식을 알렸었죠. 그리고 지난 6월 10일, 새로운 앨범이 발매되었습니다. 이번 앨범은 이들이 향후 완전체로 다시 활동하기 전 마지막 앨범이 될 텐데요. 그래서일까요? 이 앨범, 뭔가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미니앨범, 정규앨범, 싱글 등으로 규정되는 앨범이 아닌, 앤솔러지 앨범이라는 사실이에요. 앤솔러지란 무엇이며, 방탄소년단은 앤솔러지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던 것인지 알아볼까요?
👀앤솔러지가 뭐야?
앤솔러지(Anthology)는 ‘꽃을 따서 모은 것', 꽃다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앤톨로기아(anthologia)에서 파생되었어요. 과거부터 출판사에서 신춘문예나 문학상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모아 책을 출간했기 때문에, 앤솔러지는 여러 작가들의 시를 모은 선집(選集)을 뜻했죠. 이렇듯 앤솔러지는 본래 문학에서만 사용되는 개념이었는데요. 최근에는 테마 앤솔러지의 형태로서 각기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주제나 배경에 따라 한데 모은 작품집이라면 모두 앤솔로지로 부르게 되면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답니다. 앤솔러지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뉘는데요.
- 1️⃣ 한 명의 다양한 작품을 한 데 수록한 것
- 2️⃣ 여러 명의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수록한 것
때문에 문학과 음악에서 많이 쓰일 수밖에 없는 개념이죠. 두 분야에서의 쓰임새는 조금 달라요. 그럼 먼저 문학에서의 앤솔러지가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볼까요?
문학상 수상 작품집은 대표적인 앤솔러지예요.『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시리즈,『소설보다』시리즈,『올해의 문제소설』시리즈 등이 있답니다. 독특한 주제에 따라 여러 작가의 작품을 묶는 소설집도 있는데요. 스테디셀러 소설의 뒷이야기를 주제로 한『두 번째 엔딩』, 가성비 높은 합리적 선택을 주제로 한『코스트 베니핏』 등이 있어요. 장르 소설집도 앤솔러지의 형식을 자주 따라요. 특히 SF(Science Fiction, 과학소설) 장르에서 앤솔러지가 꾸준하게 출간되고 있답니다. 김초엽, 천선란, 심너울 등 젊은 SF 작가의 두드러진 활동이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기술의 발전으로 매일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우리에게 SF 앤솔러지는 상상과 현실의 화합을 도울 매개체가 아닐까 싶어요.
앤솔러지 소설이 작가마다의 고유한 상상력으로 무장했다면, 에세이 앤솔러지는 다양한 주제와 생각으로 독자들을 즐겁게 합니다. 주된 주제는 취향이에요. 탐스럽지만 쉽게 무르는 ‘복숭아’처럼 자신의 숨기고픈 약점을 꺼내놓는『나의 복숭아』, 왜 자신이 싫어하는 음식을 그토록 싫어하는지 풀어낸『싫어하는 음식: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 등 음식을 다룬 다양한 에세이 앤솔러지가 있죠. 음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둔 앤솔러지도 있어요! 『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은 각자의 첫 음악, 첫 영화를 다루었고요.『케이팝의 역사, 100번의 웨이브』는 24명의 평론가와 전문가가 케이팝 100대 명곡을 리뷰한 음악 앤솔러지죠. 이외에도 시의성 있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앤솔러지가 많아요. 창비교육에서는 노동, 사랑, 재난, 생태, 여행, 팬데믹 등을 주제로『땀 흘리는 소설』, 『가슴 뛰는 소설』,『기억하는 소설』,『숨 쉬는 소설』,『여행하는 소설』 등을 꾸준히 내고 있고, 다산책방에서는『엄마에 대하여』,『나의 할머니에게』를 통해 여성 서사를 시리즈물로 출간하는 중이랍니다.
💽앤솔러지가 음반의 형태로 만들어지면?
이제 음악에서의 앤솔러지를 살펴볼까요? 사실 음악에서 작품을 테이프나 CD에 정리했을 경우엔, 일반적으로 앤솔러지보다는 컴필레이션 앨범(Compilation album)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곤 합니다. 한 음악가 또는 여러 음악가의 노래를 특정 분류에 따라 모은 음반으로, 편집 음반이라고도 불리죠. 컴필레이션 앨범의 종류 역시 두 가지 정도로 나뉘어요.
1️⃣ 한 음악가의 베스트 음반 혹은 싱글 콜렉션
2️⃣ 여러 음악가의 주제/장르/히트 컴필레이션
후자의 경우는 주로 특정 장르 모음집, 히트곡 모음집, 특정 음반사 창립 및 활동 n주년 기념 편집반, 특정 힙합 레이블 소속 가수 참여 앨범 등의 형태로 나타나죠.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가장 유명한 가수는 바로 전설의 밴드, 비틀즈(The Beatles)예요! 비틀즈는 발라드곡만 담은 The Beatles' Ballads, 사랑 노래만 담은 Love Songs, 로큰롤 음악만 담은 Rock'n' Roll Music, 영화 주제곡을 몇 곡씩 추려 담은 Reel Music, 라이브 공연곡들만 담은 The Beatles at the Hollywood Bowl, Live At The BBC처럼 하나의 명확한 기준 아래 선정한 곡들을 모아 컴필레이션 앨범을 다수 발매했죠. 컴필레이션 앨범을 통해 비틀즈의 수많은 명곡을 주제별로 만나볼 수 있으니, 참 고마운 앨범인 듯해요.
그런데 비틀즈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구성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Anthology 1>, <Anthology 2>, <Anthology 3> 라는 이름으로 세 장의 앤솔러지 앨범을 발매한 건데요. 이 앨범들은 무엇이 다르길래 ‘앤솔러지’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앤솔러지는 편집앨범이라는 점에서 컴필레이션 앨범에 속하지만, 일반적인 컴필레이션 앨범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져요. 1995년 발매된 <Anthology 1>의 경우 비틀즈의 1958년부터 1964년까지의 곡들과 미발표곡 및 미발표 버전을 담고 있는데요. 이전까지는 공개되지 않았던 퀴리멘 시절, 즉 정식 데뷔 이전의 곡들을 담았어요. 무엇보다 70년대 이후 25년 만에 비틀즈의 신곡 ‘Free as a Bird’가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죠.
자, 컴필레이션 음반과 앤솔러지 앨범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히트곡이나 특정 장르의 곡들을 모아둔 앨범에 가까운지, ‘시간성’을 가지고 특정 시기를 정리한 것인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데요. 분류와 선정에 가까운 컴필레이션 앨범과 달리 앤솔러지 앨범엔 보다 통합적인 서사가 담겨 있죠. 컴필레이션 앨범은 앤솔러지 문학처럼 특정 주제에 따라 분류되지만, 앤솔러지 앨범은 한 아티스트가 쌓아온 작업물의 서사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아티스트의 시간성을 담은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방탄소년단은 왜 앤솔러지를 선택했을까?
그렇다면 방탄소년단의 앤솔러지 앨범은 어떨까요? <Proof>는 방탄소년단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한데 모은 앨범으로, 총 48곡이 담긴 3장의 CD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CD 1에는 역대 앨범 타이틀 곡들을 모두 모아 두고, 새 타이틀 곡 ‘Yet to come’을 수록했어요. 이는 “Our best moment is yet to come”, 즉 우리의 화양연화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여기서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뜻의 과거 앨범명이에요. 이전에 그려온 서사에 빗대어 결국 자신들의 미래야말로 가장 찬란할 것이라 선언하는 것이죠. 한편 CD 2에는 7명의 멤버들의 솔로곡과 유닛곡이 수록되어 각자의 이야기와 개성을 잘 느낄 수 있고요. CD 3에는 기존에 발매한 곡의 데모 버전 또는 미공개 버전이 담겨있습니다. 이렇듯 방탄소년단은 이번 앤솔러지에서 지금까지 지나온 대장정의 서사를 쭉 정리하고, 공개되지 않은 버전의 곡들을 함께 모아 구성했어요. 마치, 비틀즈처럼요!
방탄소년단이 정리하는 서사는 어떤 모습일까요? 사실 방탄소년단은 데뷔 후 지금껏 “시리즈물”을 기반으로 디스코그래피를 쌓아온 그룹이에요. 가장 먼저 발매한 학교 3부작 <2 COOL 4 SKOOL>, <O!RUL8,2?>, <SKOOL LUV AFFAIR>에서는 10대의 가장 큰 관심사인 꿈, 행복, 사랑을 각각의 앨범으로 풀어냈는데요. 꿈 없이 살아가는 10대들에게 주체가 되는 삶을 살자는 메시지를 전하죠. 남의 인생을 강요받고 불행마저 강요받는 세상에서 10대가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랍니다. 이후 <화양연화 pt.1>, <화양연화 pt.2>, <화양연화 Young Forever 스페셜> 앨범으로 풀어낸 청춘 3부작에서는 찬란함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청춘의 시간을 ‘화양연화(花樣年華)’로 표현했어요. 남들은 앞서가는데 왜 나만 여기 있는가라는 두려움이 엄습하지만, 그럼에도 꿈을 꾸며 나아간다는 포부를 담아낸 거죠. 그들은 이 시리즈를 통해 청춘의 불안과 위태로움을 모두 끌어안고 전력 질주하는 젊음을 노래했습니다. 이후 WINGS(성장) 시리즈에는 일곱 멤버 전원의 솔로곡을 수록하며 각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드러냈어요. 알을 깨고 나와 세상과 마주한 ‘데미안’과 같은 방탄소년단의 이야기가 담겨있죠. Love Yourself(사랑) 3부작에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임을 깨닫는 과정을 기-승-전-결의 흐름에 담았어요. 비뚤어진 사랑 때문에 이별의 상실을 경험한 뒤 자신의 사랑은 거짓이었음을 깨닫고, 진정한 사랑으로 발을 내딛죠. Map Of The Soul(영혼의 지도) 2부작은 자신의 영혼의 지도를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진정한 사랑으로 가는 길을 자신에게서 발견한 방탄소년단은 이제 자신을 향한 여정을 떠납니다. 자아의 탐색 끝에 ‘변하지 않는 나’를 찾는 것이죠. 그렇게 쭉 달려오던 방탄소년단은 ‘다이너마이트’, ‘버터’, ‘Life Goes On’ 등 싱글 및 스페셜 앨범을 발매하며 전세계에서 역사적인 기록과 행보를 남기게 됩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사는 차곡차곡 쌓였고, 마침내 앤솔로지 앨범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온 것이죠.
방탄소년단의 음반에서 우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학교를 다니며 꿈과 행복을 찾고 사랑을 하는 10대, 청춘으로서 불안을 느끼지만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는 20대, 사랑의 설렘과 파멸을 느낀 뒤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순간들까지. 방탄소년단은 지금까지 쌓아온 고민과 감정을 모든 음반에 꼭꼭 눌러 담았어요. 이 여정은 각 앨범의 이야기로 오롯이 표현되었고요. 앞으로 방탄소년단이 걸어갈 인생은 또다시 음악으로 표현될 거예요. 결국 이들은 인생에서 맞닥뜨린 고민과 생각들을 기록하고 청자와 나눕니다. 청자는 자신의 인생의 순간에서 그 음악을 마주하고 자신만의 경험들을 헤쳐나가는 데 힘을 얻고요. 그렇기에 약 10년간 그려온 서사를 하나의 앨범으로 정리해두는 일은, 단체 활동을 뒤로하고 각자의 자아를 다시 찾아 나서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적합한 형태가 아니었을까요?
💬Editor's Comment
지금까지, 방탄소년단의 신반과 함께 음반과 출판 분야에서 사용되는 앤솔러지에 관해 살펴보았는데요. 음악에서의 앤솔러지는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의식(ritual)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방탄소년단 역시 앤솔러지 형식을 선택함으로써 그들의 서사를 한 곳에 담아서 정리하고 보여줄 수 있도록 하죠. 그렇게 해서 또다시 새로운 서사로 나아갈 수 있기도 하고요. 앤솔러지에서 단정한 마무리를 보여준 방탄소년단의 새로운 챕터를 기대해 봅니다.
“난 변화는 많았지만 변함은 없었다 해. A new chapter, 매 순간이 새로운 최선.”
- 방탄소년단, Yet To Come 中
한편으로 문학에서의 앤솔러지는 작가에게 소소한 이벤트이자 큰 기회예요. 새로운 주제의 글을 써볼 수 있고, 그 결과 독자들에게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독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작가의 글을 한 번에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같은 주제를 각 작가가 어떻게 다루는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고요. 시의성 있는 주제를 빠르게 다루기도 적절하죠. 앞으로 앤솔러지 형식이 어떤 형태로 발전할지 기대됩니다. 여러분도 출판계 혹은 음악계에서 앤솔러지를 만난다면, 좀 더 반가운 마음으로 서사를 읽어 내려가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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