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대표하는 극작가는 셰익스피어? 이 사람도 잊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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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중의 천재를 보면 ‘몇백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라 말하곤 하죠. 세계적인 극작가 셰익스피어도 ‘몇백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적인 극작가’로 불리고요. 존재 자체가 새로운 장르로 인정받았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그런데 만약, 셰익스피어만큼 재능 있고 유능한 천재가 같은 곳에서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셰익스피어는 몇백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여기, 자신의 작품만큼이나 극적이고 강렬한 인생을 산 극작가가 있어요. 크리스토퍼 말로에 대해, 함께 알아볼까요?
🔥짧고 강렬한 삶을 살았던 극적인 극작가
르네상스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가 태어난 해, 어느 가난한 집에서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 1564~1593)가 태어납니다. 그는 29년이라는 아주 짧은 생애를 산 작가예요. 동시에 아주 다사다난하고 극적인 생애를 산 것으로도 유명하죠. 케임브리지 대학을 다녔던 말로는 라틴어와 고전 문학에도 능했어요. 꽤 재능 있고 인기 있는 극작가였답니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항상 논란이 따라다녔어요. 폭력으로 고소당하거나, 화폐 위조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고, 엘리자베스 여왕 권력에 스파이 역할을 했다고도 전해지죠. 신을 부정해 체포당한 적도 있고요. 당대 기독교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아주 중대한 죄였답니다. 작가라는 타이틀과는 어울리지 않은 강렬한 인생이죠? 때문에 대중들은 그를 재능 있는 극작가임과 동시에 타락한 죄인으로 생각하기도 했어요.
작가로서는 어땠는지 볼까요? 29년 인생 중 말로가 작가로 활동한 기간은 고작 9년이에요. 그러나 그가 영국 문학계와 무대에 끼친 영향은 상당했답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을 보여주었어요. 르네상스 정신을 강조하며 영국 무대에 근대적 인간을 최초로 소개하기도 했고요. 천재적인 극작가 또는 위험한 인간. 양면성을 띠는 그의 인생은 1593년 의문의 사고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의 나이 29살 때의 일이었죠.

🇬🇧영국이 쏙 담긴 말로의 작품
크리스토퍼 말로는 영국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극작가예요. <파우스트 박사>, <몰타의 유대인>, <탬벌레인 대왕> 등 다양한 희곡을 써내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죠.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크리스토퍼 말로와 잘 어울리는 말인데요. 그의 작품을 보면 르네상스 시기 영국의 모습이 아주 많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당시 영국 사회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랍니다. 그렇다 보니 정치 및 종교와 관련된 부분도 진하게 드러나는 것이 말로 작품의 특징이에요.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이러한 주제를 작품에 녹여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살았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정치와 종교는 국민들에게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에요. 정치는 종교의 힘을 이용해 영향력을 발휘했고, 종교 역시 정치의 지원을 받아 사람들의 신념을 지배했죠. 그러니까 말로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했던 거예요. 영국 사회는 말로의 생과 죽음 역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했어요. 그의 비도덕적이고 음탕한 행동 때문에 하나님이 죽음이라는 벌을 내리신 거라고 말이에요. 한편, 어떤 독자들은 그의 글이 절대적인 정치적, 종교적 이념을 훼손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그런가 하면 당대의 지배 종교에 회의감을 느끼고, 문제점을 인식한 사람들도 있었고요. 이렇듯 말로는 생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작가랍니다.

😤단순한 이야기 속 담긴 인간의 욕망
<탬벌레인 대왕>은 1587년에 쓰인 것으로, 말로의 대표작이에요. 런던 로즈 극장에서 초연된 후 곧바로 속편이 제작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죠. 양치기에 불과했던 티무르가 몽골의 제왕에 오르는 이야기인데요. 작중 인물의 권력욕과 권력 갈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에요.
극중 티무르는 제왕이 되기 위해서라면 협상이든 전쟁이든 물불을 가리지 않거든요. 심지어 그는 우정을 등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차 없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몽골인이 무서운 인종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몽골 제국의 번영을 이끈 티무르가 주인공의 모델이기도 하거든요. 이 영향으로 중세 유럽 문학에서 동방인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표현되기도 했답니다.
말로는 다른 작품에도 물욕, 지식욕, 정복욕 등의 욕망에 휘말리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어요. 주제는 간단해 보이지만, 인간의 다양한 내면과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이죠.

👀크리스토퍼 말로와 셰익스피어, 무슨 관계야!
크리스토퍼 말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 윌리엄 셰익스피어예요. 말로와 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 시대 연극계를 대표하는 작가로 어깨를 나란히 했는데요. 사람들은 이 둘이 라이벌 관계였다고 말해요. 1564년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시기에 활동하고, 희곡이라는 같은 장르를 집필했는데, 두 사람 모두 관객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니 라이벌이라고 할 만하죠.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서 크리스토퍼 말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답니다.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이 그의 작품 <헨리 6세>에서 말로의 흔적을 발견한 거예요. 말로가 사람의 신체 부위를 수식할 때 사용하는 ‘dainty(앙증맞은, 얌전한)’라는 단어가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에 등장했는데, 이 표현은 동시대 작가들 중에서 말로만 사용했던 표현이라고 전해지고 있거든요. 때문에 옥스퍼드 대학출판부는 2016년 <헨리 6세> 3부작을 재출간하며 말로를 공동 저자로 기재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500여 년이 지난 지금, 말로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셰익스피어에 비해 작품 세계가 단순하고 폭넓지 못하다는 점,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와 종교, 욕망만 담아냈다는 점 등이 그 원인으로 언급되곤 하죠. 그의 부도덕한 모습 때문에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것도 큰 이유가 될 수 있겠고요.
하지만 말로는 어떤 작가들보다도 그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작가예요. 그의 작품들 속에는 정해진 틀과 규칙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인물이 느끼는 도전, 욕망, 투쟁, 두려움 등의 감정이 섬세하게 드러나요. 이것은 바로 중세에서 근대로 가는 과도기에 놓인 인간이 느끼는 혼란스러움과도 같아요. 그것이 곧 르네상스이고요. 그래서 말로는 영국 근대극의 시초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또한 짧은 생애 동안 발표한 몇 안 되는 작품들이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오늘날 대중들은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셰익스피어에게 뒤지지 않는 극작가로 성장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한답니다.

너무나도 짧은 생을 살았지만 몇 안 되는 작품만으로도 영국 연극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 전 세계인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존경받는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에게도 영향을 준 인물, 크리스토퍼 말로를 알아봤어요. 영국 무대 최초로 근대적 인간상을 보여주고, 동시에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적, 종교적 모습을 잘 담아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작가죠. 29년이라는 시간은 그의 능력을 발휘하기에 상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가치와 천재성은 절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만약 크리스토퍼 말로가 더 긴 인생을 살았더라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작품들이 후대에 전해졌을지 궁금합니다.
ㅇ참고자료
- 강석주, 『크리스토퍼 말로: 정치, 종교 그리고 탈신비화』, 한국문화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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