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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가 날 버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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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ㅇ이는 여기서 살아! 엄마는 집에 갈 거야.”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던 이 밈,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며 떼를 쓰는 아이를 묘사한 밈인데요. 웃기고 귀여운 상황이지만, 엄마들의 고충이 느껴져 안쓰럽기도 하죠. 엄마들은 단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큰 고생을 당연하게 겪어야 했던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 희생하지 않으면 모성애가 없다며 비난받기도 하죠. 만약 저 밈 속의 대사가 홧김에, 아니면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뱉은 말이 아니라 진심이라면..? 엄마 혼자 집에 간 것도 아니고 아예 엄마가 집을 나가버렸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 정말 집을 나가버렸던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있어요. 바로 엘레나 페란테의 <잃어버린 사랑>입니다. 주인공은 어린 두 딸을 버리고 3년이나 떠나 있는데요. 소설은 아이들이 다 자란 후 주인공 홀로 떠난 휴가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리고 이 소설을 영상화한 <로스트 도터>가 올 7월 개봉했답니다. 

 

🤱딸, 아내, 엄마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이야기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저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예요. 하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베일에 싸여 있죠.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조차 필명이고, 이탈리아 나폴리 출생에 고전 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없답니다. 작품만이 작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부러 사적인 모습을 숨긴다고 하는데요. 작가에 관한 정보가 없는 덕에 독자들도 아무런 편견 없이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듯합니다.

  <성가신 사랑>으로 데뷔한 엘레나 페란테는 이어서 <버려진 사랑>과 <잃어버린 사랑>을 출간하며 ‘나쁜 사랑 3부작’을 완성했어요. 이 책들은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인 딸, 아내, 엄마의 의무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인물의 이야기예요. 세 소설은 각각 다른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독립적인 소설인데요. 이들은 모두 대부분의 여성이 공통으로 부여받는 보편적인 역할을 다루고 있기에, 여성들이 한 번의 생애에서 동시에 경험하는 연대기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죠. 영화 <로스트 도터>의 원작 소설 <잃어버린 사랑>은 엘레나 페란테가 지은 ‘나쁜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책이에요. 홀로 휴가를 떠난 중년 교수 ‘레다’가 딸뻘인 젊은 엄마 ‘니나’와 그의 딸 ‘엘레나’를 만나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여유로울 것만 같은 휴가지에서 만난 첨예한 감정들이 휴가를 극단적으로 끌고 가면서 상상 이상의 일이 벌어진답니다.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잃어버린 사랑> 표지 ⓒ한길사
영화 ‘로스트 도터’ 포스터 ⓒ네이버 영화

 

🎥사랑받는 배우, 사랑받는 감독이 되다?!

  영화 <로스트 도터>는 원작의 명성에 더해 감독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었어요. 제작을 맡은 신인 감독은 대중에게 꽤 알려진 얼굴인데요. 바로 배우 매기 질렌할입니다. 매기 질렌할은 영화 <다크나이트>의 히로인 역으로 친숙한 배우죠. 또 영화 <조디악>의 주인공, 그리고 마블 시리즈의 빌런 <미스테리오>를 맡았던 배우 제이크 질렌할의 누나로도 유명하고요. 오랜 기간 사랑받은 배우지만 감독 역할을 잘 이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텐데요. 놀랍게도 <로스트 도터>는 매기 질렌할의 감독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뉴욕 비평가 협회상 신인작품상, 그리고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고 아카데미 3개 부문의 후보가 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입증한 것이죠.

 

2021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는 매기 질렌할 감독 ⓒAFP

 

  주연 배우를 향한 극찬도 빼놓을 수 없죠. 이미 수차례 공인된 연기력을 지닌 올리비어 콜맨이 주인공 ‘레다’를 연기했는데요. 이번에도 자그마치 여덟 곳의 후보에 오르고 그중 런던 비평가 협회상의 여우주연상과 뉴포트비치 영화제의 연기 우수상을 받았답니다. 사실 레다는 소설이나 영화 등 매체를 통해 흔히 보던 ‘엄마’와는 꽤 다른 모습의 인물이에요. 하지만 명배우 올리비아 콜맨이 보여주는 복잡 미묘하고 예민한 연기를 따라가다 보면 캐릭터에 공감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네이버 영화

 

  또한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로 유명한 다코타 존슨이  딸을 사랑하면서도 신경질적인 모습을 숨기지 못하는 젊은 엄마 ‘니나’를 연기했어요. 스크린 데뷔작인 영화 <비스트>로 여러 상을 거머쥐었던 차세대 배우 제시 버클리가 과거의 젊은 레다를 연기했고요. 이들의 연기 덕분에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답니다.

 

🙏소설 영화 둘 다 봐주세요 제발…

  사실상 영화와 원작 소설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저는 두 가지 모두 감상하시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는 묘사의 차이입니다. 책은 주인공 ‘레다’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돼요. 그렇기 때문에 레다의 감정선이 구체적이고 직관적이죠.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보이는 감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 감정을 정의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서술이 흥미로워요. 쉽게 느껴보지 못한 감정인 듯하지만, 책을 읽으면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영화에서도 레다의 감정을 글로 드러낼 수는 없겠죠. 독백이나 일기 등의 수단을 이용해야 할 텐데, 그랬다가는 너무 지루해질 테니까요. 그 대신 영화가 선택한 것은 바로 청각의 힘이에요.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맡은 딕컨 힌크리프(Dickon Hinchliffe) 음악 감독은 테마곡 하나를 중심으로 하되 씬마다 알맞은 변주를 넣어서 노래를 제작했어요. 덕분에 전체 색깔이 통일되면서도 장면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서 영화 감상에 큰 도움을 준답니다. 

  두 번째는 세부적인 각색을 확인하는 재미예요. 이야기의 결말이나 큰 흐름은 그대로였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섬세하게 바뀌었더라고요. 소설에서 레다가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했던 언행들이 영화에서는 생각에 그치기도 하고요. 물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답니다. 레다가 인물들의 첫인상을 평가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외양 묘사 역시 묘하게 달라졌더라고요. 단순히 글과 영상이라는 매체의 차이 때문에 변화가 생긴 부분도 있겠지만, 감독이 어떤 해석을 덧붙였기에 주인공이 원작과 다른 생각, 다른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고민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원작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영화화되는 것은 새로운 작품이 하나 더 만들어진다는 뜻이잖아요? 멋진 이야기를 또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게 해주는 콘텐츠가 나와 기쁘네요!

 

💬Editor’s Comment

  원작이 있는 이야기를 영화로 재해석한다는 건 얼핏 보면 쉬워 보이지만, 오히려 더 부담되고 어려운 일인 것 같기도 해요. 다행히 책 <잃어버린 사랑>과 영화 <로스트 도터>는 원형 스토리의 주제와 장점을 지키고, 서로의 아쉬운 점을 보완해주며 성공적인 원작-파생 콘텐츠 관계를 이룬답니다. 멋진 각색을 보여준 ‘감독’ 매기 질렌할의 다음 행보도 기대되네요. 책과 영화를 통해 레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사회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엄마의 역할에 의문이 생기실지도 몰라요. 모성애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경험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분명 좋아하실 두 작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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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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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영화 #문학 #엘레나페란테 #올리비아콜맨 #모성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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