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코난, 탐정... 아니 작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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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난, 탐정이죠!”
명탐정 코난 극장판에는 매번 소년 탐정이자 주인공인 남도일이 작은 아이 코난이 된 경위를 알려주는 오프닝이 흘러나옵니다. 하루아침에 몸집이 작아진 남도일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이름도 신분도 숨기는데요. 이름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당황한 그는 마침 옆에 있던 ‘아서 코난 도일 전집’을 쓱 보고 자신의 이름을 코난이라 소개하죠. 이 장면에서 책장에 가득 꽂혀있던 아서 코난 도일 전집은 말 그대로 아서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 1859~ 1930)이 저술한 소설을 모은 것인데요. <셜록 홈즈>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코난 도일, 작품이 워낙 유명해서 작가 이름도 이미 익숙하실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추리 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그가 원래는 의사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럼 강령술에 빠져서 2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했었다는 사실은요?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비하인드 스토리, 지금부터 들려드릴게요!
🩺내 이름은 코난, 작가… 아니 의사죠!
의과대학으로 유명했던 에든버러 대학교를 졸업한 코난 도일은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안과 병원을 개업했어요. 하지만 환자가 없었던 탓에 그는 시간이 남아돌기 일쑤였고, 그 시간마다 틈틈이 글을 썼죠. 몇 편의 단편을 발표하고 나름대로 좋은 평을 받자 코난 도일은 장편소설을 쓰기로 다짐해요.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 때였어요. 추리소설을 구상하던 그는 주인공을 맡을 멋지고 유능한 탐정을 창조해야 했어요.
바로 그때! 한 사람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의과대학 시절 은사였던 조셉 벨이었죠. 빅토리아 여왕의 외과 주치의이기도 했던 벨은 진단 과정에서 꼼꼼한 관찰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어요. 이를 시범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종종 낯선 사람을 지목하여 외모나 흔적 등을 면밀히 관찰한 뒤 직업과 최근 활동 등을 알아맞히곤 했죠. 범죄 수사에 과학적 기법이 널리 쓰이지 않던 때에 그러한 방법을 구사했던 벨 교수는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주인공으로 아주 적합했어요.
주인공을 설정한 코난 도일은 열정을 쏟아 거침없이 써 내려갔어요. 1887년, 3주 만에 완성된 소설은 탐정 셜록 홈즈가 탄생한 첫 소설 <주황색 연구>로 발표되었고요. 뒤이어 1890년 두 번째 장편소설 <네 개의 서명>이 발표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당시 출간을 준비하고 있던 영국 잡지 편집장의 눈에 띄어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단편들을 연재하게 되는데요. 이때 상당한 원고료를 약속받아 본업이었던 안과 의사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시대를 풍미한 추리 소설, 그 시작에는 아서 코난 도일이 있었다!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두어요. 그렇다면 이 작품은 왜 인기를 끌었을까요? 명탐정 셜록 홈즈의 탄생을 다룬 <주황색 연구> 출간 1년 뒤 많은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한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가 등장하는데요.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자, 현장의 사소한 증거도 놓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는 가상 인물 홈즈에 대한 시대적 열광이 일어난 거예요. 과학 수사가 발전한 시대에 사는 지금도 홈즈의 관찰력과 추리력을 보면 감탄하게 돼요. 100년 전의 사람들에게는 훨씬 놀라웠겠죠?
코난 도일이 작품을 발간한 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는 크게 발전했어요. 영미뿐만 아니라 동양, 유럽까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죠. 다른 장르에 비해 뒤늦게 발전했음에도 지금은 잘 차려진 뷔페처럼 다양하게 즐길 수 있으니, 코난 도일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네요.
“작가들의 ‘범죄의 발견’이라는 엄청난 결과에는 그의 역할이 지대했기 때문이므로 그의 덕으로 돌려야 한다. 작가들 각자가 스스로 약간의 발전을 도모할 수는 있겠지만,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힘, 절제된 표현, 빠르고 극적인 요소라는 무척이나 경이로운 주된 기량은 뒤팽 씨의 감탄할 만한 이야기까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_이다혜 저 <코넌도일: 셜록 홈스를 창조한 추리소설의 선구자>

![이트레블뉴스_E-TRAVELNEWS] 익산예술의전당, 뮤지컬 잭더리퍼 공연](https://www.momonews.com/imgdata/etravelnews_kr/202202/2022020804082905.jpg)
👀실화를 추리 소설로? 정의의 수호자가 된 아서 코난 도일
대작인 홈즈 시리즈 중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내용도 있습니다. 코난 도일은 당시 수많은 팬레터를 받았는데요. 그중 특별한 편지 한 통이 그의 눈길을 끌었어요. 바로 스코틀랜드 교도소에 수감된 오스카 슬레이터의 편지였죠. 코난 도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어요. 자신은 종신형을 받았지만,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주장했죠.
추운 겨울, 스코틀랜드의 어느 자택에서 부유한 여성이 살해된 채로 발견됐어요. 값비싼 다이아몬드 브로치도 도둑맞은 상태였죠. 피해자와 같은 동네에 살았던 오스카 슬레이터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뽑혔고, 그는 이틀 뒤에 뉴욕행 선박을 예매했어요. 이는 경찰의 레이더망에 걸릴 법한 수상한 행동이었죠. 슬레이터를 심문하던 경찰은 다이아몬드 브로치를 팔았던 전당포 영수증을 발견하면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게 돼요. 너무나 명확한 증거라 수사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거죠. 재판에 참석한 목격자들은 사건 당일 밤에 대해 증언하며 살해된 여성 집에서 슬레이터가 나왔다고 주장했어요. 여기까지 보면 슬레이터는 당연히 범인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슬레이터는 오해 때문에 감옥에 수감되었다며 코난 도일에게 편지를 써요. 살해된 여성을 만난 적도 없을뿐더러 도둑질이나 살인을 저지를 이유도 없다고 말이죠. 뉴욕행 표를 예매한 건 휴가를 위한 것이었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가 있다고도 덧붙였어요. 이 편지를 본 코난 도일은 흥미를 느끼며 사건을 조사하기로 결심했고, 브로치에 주목했어요. 슬레이터는 브로치를 훔친 뒤에 되팔았다는 의심을 받았지만, 증거로 제출된 영수증은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작성된 것으로 자신의 브로치를 판 것이었거든요. 또 슬레이터는 사건이 일어난 날 밤에 친구들과 함께 있었고 증언은 모두 일치했어요. 그런데 왜 목격자들은 재판에서 선서를 하고도 거짓말을 했을까요?
수사가 시작된 뒤 주요 지역 신문에는 사건의 내용과 함께 슬레이터의 사진이 실렸어요. 목격자들은 신문을 통해 슬레이터의 사진을 자주 접했고, 범인을 보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기억이 왜곡되었죠. 결국 코난 도일은 사건의 전말을 다 알게 되었어요. 그는 이 사건을 공론화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해요. 1912년 8월 출판한 <오스카 슬레이터 사건>이 그 결과물인데요. 재심에서 슬레이터가 살인사건 무죄 판결을 선고받으며 코난 도일은 ‘정의의 수호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한 방황
1885년 26세의 코난 도일은 병원 환자의 여동생이었던 루이자와 결혼하고 딸과 아들을 각각 한 명씩 얻게 되었어요. 하지만 아내 루이자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두 번째 아내 진과 재혼합니다. 심지어 재혼 여성과 3명의 자녀들까지 낳게 되죠. 당시 <셜록 홈즈> 시리즈는 최고의 절정기였지만 그의 두 번째 아내는 썩 기뻐하지 않았어요. 코난 도일이 사망하게 되면 그의 재산과 저작권료가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상속되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결국 진은 전 부인의 아이들과 남편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을 엄마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며 아이들을 강제로 전학시키고 기숙사 생활을 하게 만들었죠. 또 아이들이 코난 도일에게 보낸 편지를 가로채어 ‘더 이상 아빠를 보고 싶지 않다’고 꾸며내 자녀의 학비까지 끊게 만들었어요. 결국 전 부인의 아이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가정부 생활·군입대를 자처하며 힘들게 살아가게 되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들은 결국 부상으로 사망했죠.
아들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어요. 강령술이 발전하면 죽은 아들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국제심령학회’ 연구비로 오늘날 220억 원에 달하는 돈을 기증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그 열의가 대단했던지, 한 인터뷰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심령술에 점점 더 관심이 생깁니다. 내 남은 생은 아마도 글쓰기보다 심령술 연구에 더 많이 투자할 겁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이성과 논리를 내세워 추리 소설의 대작을 집필했던 전적과는 사뭇 다른 길로 여겨지는데요. 19세기에 강령술이 대단히 유행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강령술에 무척이나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 그는 결국 죽은 아들의 영혼을 만났다고 전해져요. 강령술로 소환된 아들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슬피 부르고 코난 도일은 울며 사과했다고 하는데, 그 진실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죠?

청소년 시절 <셜록 홈즈>를 몰랐던 학생은 거의 없을 거예요. 저 역시 홈즈의 섬세함과 치밀함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40년 동안 ‘셜록 홈즈’라는 하나의 캐릭터로 4편의 장편과 56편의 단편을 쓰다니, 정말 장대한 세계를 가진 작가 아니겠어요? 그런 그의 비하인드를 알게 된 지금, 여러분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여러분에게 코난 도일은 여전히 천재적인 작가인가요? 정의의 수호자, 아니면 나쁜 아버지인가요?
ㅇ참고문헌
- 이다혜, “코넌도일: 셜록 홈스를 창조한 추리소설의 선구자”, 아르테, 2020.
- 유형준, “의사로 활동하다 전업작가 된 코난 도일”, 의학신문, 2020.
- “필요 없을 땐 내치고 죽으니까 영혼을 만난다는 아버지 | 아서 코난 도일”, MBC 서프라이즈 비밀의방, 20220427 방송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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