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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중 낭만주의! 진정한 로맨티시즘, 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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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주의 사조가 유행하던 시기, 그중에서도 진정한 낭만주의 음악가로 불린 사람이 있습니다. 로맨티시즘 대표 작곡가이자 평론가,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인데요. 한 때 문학 소년이기도 했던 슈만은 시와 음악을 결합하여 오늘날 널리 불리는 가곡을 탄생시키기도 했어요. 그런데 음악에 본인의 삶을 모두 바쳤기 때문일까요? 그는 파가니니, 라흐마니노프, 베토벤처럼 신경이 굉장히 미약한 사람이기도 했답니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늘 고통에 시달렸죠. 그런 사람이 어떻게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남게 되었는지 함께 알아볼게요.

 

👶생각보다 육아난이도 상이었던… 어린 시절의 슈만

  슈만의 아버지는 출판사와 서점을 운영하던 소설가 겸 편집자였어요. 그래서 슈만은 어려서부터 책을 끼고 살았죠. 14살에 글을 써서 출판하고, 16살에는 소설을 완성할 정도였답니다. 피아노도 7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접했는데요. 어렸을 적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는 비르투오소1) 피아니스트를 꿈꾸게 돼요. 슈만의 연습 방법과 관련해 유명한 일화가 답니다. 그는 연주자로서 빨리 성공을 거두기 위해 상자와 와이어를 이용해 특이한 연습 장치를 만들었는데요. 손가락 힘을 강화하고 손가락 각각의 독립성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죠. 하지만 연습 강도가 너무 격렬했던 걸까요? 슈만은 자신이 직접 만든 장치를 사용하다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에 부상을 입었고, 평생 그 손가락을 쓰지 못하게 되었어요. 훌륭한 연주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은 그렇게 좌절되고야 맙니다. 하지만 손가락 부상을 계기로 작곡에 전념하게 되었고, 이로써 슈만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죠.

1) 비르투오소(virtuoso)는 ‘덕이 있는’, ‘고결한’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예요. 표현기술이 탁월한 기악 연주자를 이르는 경칭이죠.

 

슈만이 고안했을 형태로 짐작되는 연습 장치의 모습 ©더굿북

 

✨음악가 슈만의 요모조모!

  슈만은 화려한 기교에 치우치거나 쉽게 대중의 흥미를 끄는 선율에 만족했던 당대 음악적 경향을 거부했어요. 일반적인 흐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본인만의 순수한 예술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죠. 그는 인간의 감정이 항상 변하듯, 음악에서도 감정의 변화가 즉흥적으로 연주된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그래서 슈만의 음악은 감정적 표현이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보다 주관적이고는 합니다. 격정적인 감정과 내면의 불안함을 한꺼번에 표현하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리듬이 복잡하고 악센트의 사용이 잦아 다른 낭만주의 음악에 비해 리듬이 특이한 편이에요. 감정적 표현이 매우 주관적이었던 슈만의 피아노곡은 당대 동료 작곡가들에 의해 난해하다고 평가받기도 했어요. 

  이러한 감정 표현을 위해 슈만은 변주곡, 연습곡, 소나타, 성격 소품 등 다양한 형식을 활용해서 작곡했어요. 성격 소품2)을 단일적인 요소로 사용하거나, 이러한 소곡들을 연결시켜 대곡으로 만들기도 하고,  각각의 제목이 붙은 짧은 성격 소품들을 모아 연가곡3) 형식으로 만들기도 했죠. 본인만의 음악적 기술을 사용해 매우 유연하게 여러 형태를 구현한 거예요. 동시대에 작곡가들이 하나의 대규모 곡을 여러 개 작곡한 것과 달리, 다양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소곡을 사용한 것을 보면 섬세하고 즉각적인 감정에 집중한 슈만의 음악적 세계관을 알 수 있답니다.

2) 성격 소품(Character piece)은 19세기 음악 중 특정한 분위기나 사상을 담은 짧은 음악작품을 말해요.

3) 연가곡은 여러 개의 곡들을 악상이나 곡의 성격상 관련이 있는 전체적인 내용에 따라 체계적으로 엮어낸 큰 가곡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책과 친했던 슈만은 문학적 내용을 본인의 작품과 연관 지어 작곡하기도 했어요. 그 어느 낭만주의 음악가보다도 문학이라는 음악 외적 요소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작곡가죠. 당연히 문학과 관련한 내용이 그의 음악에 직간접적으로 나타나는데요. 소설의 제목이나 주인공의 이름을 인용해 곡 제목을 짓기도 했어요. 소설 주인공과 같은 가상의 인물을 곡에서 활용하기도 했고요. 슈만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본인 음악의 예술적 가치와 순수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성격 소품집 중 하나인 <카니발>은 실제 슈만 주변 인물들을 제목으로 쓴 작품인데요. 특정 인명이나 지명의 스펠링을 음정화해서 곡 주제로 삼기도 했답니다! 그의 공식적인 첫 번째 작품 아베그 변주곡(Abegg Variation)4)이 바로 그것이죠.

4) 아베그 변주곡(Abegg Variation)의 이름을 잘 들여다봐요. 알파벳 A, B, E, G, G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는 각각 음 A(라), B-flat(시-플랫), E(미), G(솔), G(솔)을 주제 멜로디로 삼아 만든 곡이랍니다.

 

 

  슈만은 시기별로 특정 매체에 집중해서 작곡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초기에는 주로 피아노 음악을 작곡했고, 이후 가곡과 오케스트라, 실내악의 순서로 주 작곡 분야가 변화했답니다. 그의 첫 작품인 작품번호 1번부터 23번까지는 모두 피아노 음악이에요. 이는 이루지 못한 피아니스트의 꿈을 피아노 작품으로 대신 풀려고 한 것이라 해석되기도 합니다. 가곡에 전념했던 해는 ‘가곡의 해라고 불려요. 이후는 ‘오케스트라의 해’, ‘실내악의 해’로 구별하고요. 특히 슈만은 가곡으로 유명한데요. 그가 아내 클라라와 결혼한 1840년부터 그의 대표적인 가곡들이 다수 작곡되었죠. 그렇다면 슈만의 가곡은 다른 작곡가들의 가곡과 무엇이 다를까요? 바로 서주, 간주, 후주를 사용해 피아노의 역할을 확장시켰다는 점입니다. 작곡 인생 초반에 피아노 작품에 주력했기 때문에 피아노의 표현 범위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 그 차이를 만들어 냈죠. 이에 더해 슈만은 음악적 창조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시인들의 예술성 높은 시를 선택해 가사로 사용했답니다. 여기에는 피아노 반주에 문학인들의 시를 결합하고자 했던 슈만의 음악적 사상이 반영되어 있어요. 그래서 슈만의 가곡은 성악가의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 혹은 목소리가 첨가된 피아노 소품이라고 소개될 만큼 피아노의 비중이 상당히 크답니다.

 

😮평론가로도 활동했다고?

  슈만은 작곡가로서의 활동에 그치지 않고, 음악 평론 분야를 개척해 나갔어요. 그는 연주가의 꿈을 포기한 대신 작곡으로, 그리고 평론으로 높은 평판을 얻은 사람이기도 하죠. 문학적 재능이 탁월했던 그는 ‘순수한 음악’을 당시 음악계에 알리고자 수많은 평을 남기기 시작했어요. 24살에 슈만은 동료 작곡가들과 음악 분야 첫 정기 간행물인 <음악 신보>를 창간하고, 출간과 편집을 맡았는데요. 이후 <음악 신보>를 통한 활발한 활동으로 자신의 음악관을 피력하고 당시 음악계의 상업주의를 비판했어요. 또, 브람스와 같이 젊고 유망한 음악가를 발굴 및 후원하는 데에 큰 힘을 쓰기도 했는데요. 프랑스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베를리오즈와 슈베르트, 그리고 무명이었던 쇼팽을 세상에 알린 사람 역시 슈만이었답니다. 슈만이 슈베르트, 쇼팽, 멘델스존 등 주요 작곡가와 작품을 평론한 것은 지금도 음악계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자료로 쓰이고 있어요.

 

1834년에 발행된 <음악 신보> 이미지 ⒸWikimedia

 

🎭열정과 우울을 동시에 가졌던 음악가 

  슈만은 어렸을 적부터 불안증과 환청, 환각, 조울증 등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어요. 그의 정신병은 집안 내력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의 아버지가 신경쇠약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누이도 같은 해에 자살했다고 전해지고 있거든요. 이때 슈만의 나이는 겨우 16살이었죠. 슈만 역시 20살부터 우울증과 환청, 신경쇠약 등의 정신 불안을 앓았어요. 평생을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던 슈만은 결국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증세가 나빠지자 라인강에 뛰어들고야 맙니다. 다행히 그는 곧 어부들에 의해 구출되었으나, 이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2년 뒤 세상을 떠나게 되죠. 그가 평론가로 활동할 당시 사용했던 두 개의 필명을 살펴보면, 그의 자아가 분열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플로레스탄’은 명상적이고 우울한 인물을, ‘오이제비우스’는 열정에 넘치는 사람을 뜻한답니다. 굉장히 극과 극의 느낌이죠?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썼다고 알려진 악보 ©웨일북

 

  슈만의 음악은 문학과 순수 예술에 대한 사랑이 극히 주관적 감정으로 승화된 낭만주의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로서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재능과 문학적 재능을 결합해 음악으로 구현하고자 했죠. 그만큼 음악을 사랑했지만 활동하는 시기 동안 그의 삶은 녹록지 않았어요. 조울증과 환각, 환청이 머릿속을 지배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그 자체를 음악에 녹여냈어요.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글쓰기 실력을 바탕으로 당시 음악계를 기록하는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고요. ‘슈만’이라고 하면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 온갖 사투를 벌인 로맨티시스트 음악가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오늘부터는 그의 음악적, 인간적 삶이 평탄치만은 않았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하기로 해요!

 

 

 

ㅇ참고자료
- 민은기, “서양음악사2”, 음악세계, 2016.
- 박미정, “낭만 피아노 문헌”, 동덕여자대학교출판부, 2014.
- “5 Things you never knew about Schumann”, NPR Deceptive Cadence,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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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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