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남 부러울게 없었던 남자,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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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태어나고 싶나요? 부유한 집안? 잘생기고 예쁜 외모? 천재적인 머리? 뛰어난 언변 실력? 여기, 이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어요. 190cm의 큰 키와 잘생긴 얼굴,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화려한 블라우스와 망토. 거기에 재치 넘치는 화술로 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사람! 제2의 셰익스피어라고도 불리는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Fingal O'Flahertie Wills Wilde, 1854~1900)를 소개할게요.

 

✨인생은 아름다워!

  1854년 영국, 오스카 와일드는 의사인 아버지, 시인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비교적 부유하게 자랐어요. 오스카 와일드는 어릴 적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고전학에는 관심이 많았죠. 태생부터 천재적이었던 걸까요?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해 고전문학과 시를 전공했고, 대학생 시절부터 작가로서 이름을 날렸어요. 또한 행동이 과장되고 재주가 뛰어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는데, 잘생기기까지 해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답니다. 말도 굉장히 잘했어요. 그의 주변은 빌 틈이 없었죠.

  오스카 와일드의 화려한 모습은 그가 예술을 바라볼 때도 드러나요. 그는 자신의 화려한 모습처럼 미의 기준을 아름다움 자체로 보았어요. 쉽게 말해 예쁜 게 최고라는 거죠. 예술도 마찬가지였어요.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의 미학적 기준은 오로지 아름다움 그 자체라며 유미주의적 예술관1)을 펼치게 됩니다. 유미주의가 곧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인생은 아주 극적이고 화려했는데요. 오스카 와일드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요? 

1) 유미주의는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를 추구하는 문예 사조를 뜻해요.

 

오스카 와일드. 1882년 뉴욕, 나폴레옹 사로니 촬영.
20대 시절 오스카 와일드의 모습 ©Wikipedia

 

😒사교계 다 필요 없어

  오스카 와일드는 시, 동화, 희곡, 소설 등 다방면으로 글을 쓴 작가예요. 그중에서도 <이상적인 남편>은 그의 극작가로서 시대 풍자를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이에요. 당시 오스카 와일드는 빅토리아 시대를 비판하며 그 내용을 작품에 담았어요. 영국 상류사회는 귀족계급 중심으로 사교계가 이루어지고, 이 속에서 정치, 경제, 결혼, 사랑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오스카 와일드는 작품을 통해 귀족과 통치계급을 희화화하고 조롱했어요. 사교계는 사실 향락과 사치로 이루어진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말이죠. 실제로 극 속에서 “사교계는 전적으로 아름다운 바보와 재치 있는 미치광이들 그대로이다”라고 말하며 상류계층에 대한 가치를 떨어트렸어요.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유머를 이용해 영국 상류사회의 위선, 부패, 용서 등을 탐구했어요.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비평가들은 오스카 와일드의 비판을 거세게 비난했어요. 귀족계급이 갑이 되는 영국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네요.

 

제임스 티소의 &#039;너무이른&#039;© 뉴스1
빅토리아 시대의 사교계를 자주 그렸던 제임스 티소의 작품 <너무 이른> ©파이낸셜뉴스

 

😭젊음, 그거 다 한순간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중에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희곡이 대표적이에요. 늙는 것에 대한 인간의 저항을 보여주는 작품인데요. 읽다 보면 자연스레 오스카 와일드가 떠오른답니다.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는 오스카 와일드 본인을 그려 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오스카 와일드와 닮아 있거든요. 도리언 그레이는 젊음이 곧 아름다움이라 생각하며, 젊음이 영원하기를 바라요. 하지만 젊음을 얻게 되자 타락하여 쾌락주의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18년이 지난 뒤 그의 모습은 처참해요. 더 이상 쾌락이 쾌락으로 느껴지지 않아 피폐한 삶을 살고 있죠. 실제로 오스카 와일드도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았어요. 어린 나이부터 작가로서 크게 성공하여 사랑을 받았지만, 지나치게 오만한 태도 때문에 전성기에 추락을 맛보았죠. 도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도 많이 했고요.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를 통해 사치와 쾌락, 아름다움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18] 정치인의 도리언 그레이 증후군 - 조선일보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표지 ©조선일보

 

🥰자기애로 가득한 천재

  오스카 와일드는 아주 독특한 사람이에요. 낙천적이고 여유로우며 게으른 성격이었는데, 화려한 말솜씨와 잘생긴 얼굴, 천재적인 필력 덕분에 늘 주목받았죠. 그를 사랑하는 팬도 많았고, 젊은 나이에 부와 명성을 모두 얻었으니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고요. 실제로 그는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했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거만한 사람이었답니다. 1882년 뉴욕에 도착한 그에게 세관 신고할 것이 없냐고 묻자, “나의 천재성 말고는 없다 ”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죠.

  그만큼 자기 확신과 자기애로 가득 찬 사람이었는데요. 때문에 그는 강연가로도 활동하며 자신의 확고한 사상을 자신 있게 말하고 다녔어요. 작가로서는 최초로 강연 여행을 떠나 뉴욕과 파리에서 정체성을 알렸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말하기와 글쓰기에 모두 재능이 있었던 만큼, 수백 개에 달하는 명언을 남긴 걸로도 유명해요.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명언들이 바로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속 문구들이랍니다.

인간의 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함께 있다.

삶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첫째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다.

결혼에 성공하려면 서로를 오해해야 한다.

 

오스카 와일드 동상 - Monument to Oscar Wilde, 더블린, 아일랜드의 리뷰 - 트립어드바이저
아일랜드 더블린에 위치한 오스카 와일드의 동상 ©Flickr

 

  제2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과 개성을 뽐내며 사랑받았던 오스카 와일드.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는데 화려한 말솜씨와 잘생긴 얼굴까지 겸비했으니, 소위 말하는 ‘난 놈’이었죠. 자신이 잘난 것을 너무 잘 알았던 탓일까요? 거만하다며 비난받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해 공분을 사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그가 뛰어난 작가였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영국 사회를 풍자하여 당시 힘들게 살았던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위로를 주었어요. 그가 남긴 수많은 명언과 아름다운 문장들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고요. 작가 경력이 그리 길지 않지만, 워낙 독보적인 신념과 작품 세계를 보유했기에 유명한 작가로 기억되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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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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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오스카와일드 #도리안그레이의초상 #빅토리아시대 #영국 #셰익스피어 #유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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