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6년 만에 부커상 다시 거머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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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친근한 동물인 토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이야기에서 등장하죠. 거북이와 경주를 하는 토끼부터, 자라와 용왕을 속이는 토끼, 그리고 이상한 나라로 이끄는 토끼까지. 그중에서 위협적이거나, 으스스한 토끼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제 기억 속에는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화제가 된 소설 『저주 토끼』에서는 소름 끼치게 무서운 토끼를 만날 수 있답니다!
『저주 토끼』는 정보라 작가의 단편 소설집으로, 2022년도 부커상 국제 부문의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어요.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인정받는 상입니다. 부커상이라는 이름에는 익숙하지 않더라도 2016년에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받았던 상이라고 하면 ‘아하!’하고 떠올리실 분도 많을 거예요. 과연 올해도 한국 문학이 부커상 수상의 쾌거를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데요, 그렇다면 『저주 토끼』는 대체 어떤 소설인지 한 번 알아볼까요?
『저주 토끼』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저주 토끼』를 세상에 보여준 정보라 작가는 공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어도, 국내 SF와 판타지 문학계에서는 이미 저명한 인사입니다. 정 작가는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이후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그리고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어요. 슬라브 문학 박사라니,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 수도 있는 영역인데요. 정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는 슬라브 문학의 영향이 있다고 밝혔을 뿐만 아니라, 슬라브 문학의 자유로움이 본인 작품의 창의적 발상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도 말했어요. 함께 부커상 수상 후보에 올라 있는 ‘올가 토카르추크’ 또한 슬라브 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라 정 작가에게는 더욱 뜻깊은 일일 듯합니다. 정 작가는 부커상 최종 후보로 영국에 초청된다면 올가 토카르추크 작가의 책을 가져가 직접 사인을 받고 싶다는 귀여운 이야기도 전해왔어요.
부커상 국제 부문은 작가뿐만 아니라 번역가에게도 상을 준다는 특징이 있어요. 영어 사용자인 심사위원들에게 평가받는 만큼,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의 역할도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주 토끼』의 작가와 함께 번역가도 함께 말씀드리려고 해요. 『저주 토끼』를 영국에 보여준 안톤 허 번역가는 스웨덴 출생으로, 해외 근무를 많이 하신 아버지를 따라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허 번역가가 『저주 토끼』의 문학성과 아름다운 문장에 반해 먼저 번역을 제안했고,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은 그의 섬세한 번역으로도 잘 드러납니다. ‘토끼’를 흔히 쓰는 단어인 ‘Rabbit’이 아니라 더 귀여운 표현인 ‘Bunny’로 옮겨 역설적으로 표현했고, ‘엄마’라는 단어도 우리말 고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소리 나는 그대로 적었어요. 안톤 허 번역가가 옮긴 다른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도 이번 부커상 1차 후보에 올라 놀라운 실력과 안목을 또 한 번 증명했죠.
“마술적 사실주의, 호러, SF의 경계를 초월”한 소설🌀
『저주 토끼』에는 총 10편의 호러 판타지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어요. 어딘가 으스스한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왠지 모르게 찝찝한 결말을 맞이하곤 합니다. 도시 괴담 같기도 하고 잔혹 동화 같기도 한 것이, 나에게도 이런 거짓말 같은 일들이 생길 듯한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원래 무서운 이야기가 제일 재밌는 법이잖아요? 혼자 있는 조용한 방에서 책을 펼쳐 들면 어느새 10편의 이야기가 휘리릭 지나가고 작가의 말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렇다고 순전히 재미만을 위한 소설은 아니에요.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비유적으로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작가는 일상의 장면과 사물에서 느꼈던 감정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이야기를 최대한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당사자가 모욕이나 상처받지 않도록 애썼어요. 그 덕에 현실의 논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매력적인 설정이 나올 수 있었죠. 부커상 측에서도 이런 부분을 높이 평가하며 “마술적 사실주의1), 호러, SF의 경계를 초월했다”, “현대 사회 속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매우 현실적인 공포와 잔인함을 다루기 위해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들을 사용한다”는 평을 남겼어요. 실제로 이야기들을 읽어 나갈 때마다 일상에서 흔히들 겪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껴 공감과 이입이 잘 이뤄지면서도, 비현실적인 설정 덕에 스트레스 없이 오락처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효과적으로 나타난 것 같죠?
이런 부분을 모르고 읽어도 흥미진진하지만, 알고 읽으면 두 배로 재밌다는 사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무서운 게 딱 좋아!’를 읽던 기분으로 한번 읽고, 책이 주는 또 다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며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은 독서 방법일 듯합니다. 부커상에서 제공하는 리딩 가이드를 참고하는 것도 추천해요. 처음 읽을 때는 오싹하기만 했다면, 두 번째 읽을 때는 씁쓸하고, 어쩌면 슬프기까지 하답니다.
혹시 책의 다른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느껴져도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세요. 정보라 작가도 특별한 생각이나 의도 없이 그냥 글이 나오는 대로 썼다고 하니, 우리 독자들도 마음 가는 대로만 읽어도 책을 충분히 소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1) 마술적 사실주의란 전통적 사실주의의 합리성과 인과의 법칙을 넘어서서 환상과 리얼리티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학적 서사의 유형을 의미해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토끼, 그런데 저주를 내리는…🙄
10편의 단편을 모두 이야기하기는 어려우니, 대신 표제작2)인 『저주 토끼』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해볼까 해요.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이 단편의 첫 문장입니다. 어떤가요, 첫 문장부터 호기심이 자극되지 않나요? 이 이야기 속에는 가업으로 저주 용품을 만드는 일을 하는 할아버지가 등장해요. 할아버지는 억울한 친구를 위해 저주 토끼를 만들고, 그 사연을 손자에게 들려준답니다.
다른 동물도 아니고, ‘토끼’로 어떻게 무서운 저주를 내리는 걸까요? 정보라 작가는 “통념을 뒤집어야 독특한 이야기가 생겨요, 토끼는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최대한 무섭게 만들어 보기로 했죠.”라고 말합니다. 소설 속의 토끼가 저주 토끼라고 해서 흉측하거나 위협적인 외양을 가지지는 않아요. 스스럼없이 손을 대고 옆에 둘 수 있도록, 우리가 아는 온순한 토끼의 모습 그대로죠. 호랑이 같은 맹수가 아니라 작고 깜찍한 토끼가 저주의 매개체가 된다는 점 때문에 더 초현실적이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두려움까지 느껴집니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 또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정보라 작가는 ‘과거 쓰레기 만두 파동으로 억울하게 파산한 회사 이야기와 군사독재 시절 쌀 자급자족을 위해 쌀로 전통주를 빚는 양조장의 맥이 끊길 뻔한 실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고 밝혔죠. 뉴스로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접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 세상에는 억울한 일이 너무 많고, 수많은 악인이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는 것 같아요. 이런 아쉬움에서 시작한 듯한 이야기가 바로 『저주 토끼』인데요, 인간 세상의 법칙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초자연적인 힘으로 해소합니다. 하지만 끝이 아름답지만은 않아 마냥 통쾌한 권선징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점까지 현실 세계의 변하지 않는 쓸쓸함 같아요.
2) 표제작이란 어떤 소설집이나 시집의 책 제목으로 정해서 전체의 대표로 내세울 만한 소설이나 시를 뜻해요.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 정신 차려보면 책이 끝나있을 정도로 흡입력 있는 단편들의 모음이에요. 기묘하고 스산한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싫어할 수가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 비유의 정도가 다양해서 더 재밌어요. 노골적으로 주제를 드러내는 비유도 있고, 독자가 직접 생각을 확장하게 돕는 은근한 비유도 있어요. 그 덕에 작가의 의도대로, 또 독자 주체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답니다.
ㅇ요건 쫌 아쉬운데
- - 단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아직 이 이야기가 더 궁금한데 분량이 많지 않아 금방 끝나버리기도 한답니다. 흥미로운 설정들이 나오는 소설인 만큼,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만 더 길게 이야기를 풀어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나네요.
💬Editor’s Comment
이번 기회에 멋진 작품이 재조명받아서 저까지 기뻐요. 토끼가 내리는 저주가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나요? 2017년도에 나온 초판본은 현재 구하기 어렵지만 더 강렬한 표지로 재출간되었으니 호기심이 생기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부커상은 최종 후보로 선정되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영광이죠. 정보라 작가와 안톤 허 번역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SF, 판타지 문학 팬들 모두에게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끝이 없는 게 바로 사람 욕심 아니겠어요? 자꾸만 수상에 대한 기대가 생기네요. 5월 26일에 있을 수상작 발표가 손꼽아 기다려집니다. 다들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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