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예쁨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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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 특히 소설을 읽을 때 활자들이 종이 위에서 춤을 춘다는 생각을 해요. 종이 위에 세세하게 쓰인 인물, 사건, 배경과 감정들을 눈으로 훑는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소설을 읽을 때 상상의 나래를 펼치시나요? 대부분의 상상은 오롯이 혼자의 일처럼 여겨지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상을 살펴볼 수도 있답니다. 바로 무대로 올라간 소설들을 보면서 말이죠.
__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 💭
이미 해외에서는 고전 소설들이 무대화된 경험이 많지만, 국내에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 공연들은 최근에서야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요. 메리 셸리 원작의 <프랑켄슈타인>,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90년대생의 학창 시절 필독 도서였던 이금이 원작의 <유진과 유진>, 뮤지컬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구병모 원작의 <파과> 등이 그 예시에 포함 되죠. 이 외에도 웹툰이 공연으로, 드라마가 공연으로, 반대로 공연이 영화로, 공연이 드라마로 재탄생 되는 경우를 만나보셨을 거예요.
그렇다면 앞에서 이야기 한 A 장르가 B 장르로 새로이 만들어 지는 것을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요? 바로 ‘OSMU’예요. ‘OSMU’는 ‘One Source Multi Use’의 약자로 한 가지 콘텐츠를 여러 장르로 개발하여 선보인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와 동명의 뮤지컬이, 웹툰 ‘신과 함께’와 서울예술단의 가무극이, 뮤지컬 ‘로기수’와 영화 ‘스윙키즈’, 연극 ‘날 보러 와요’와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같은 서사 전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언젠가 이 작품들을 또 다른 플랫폼을 통해서 접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더라도 장르가 다르면 인물을 구현하는 방식, 서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달라진답니다. 마치 밤, 호두, 땅콩, 피스타치오가 같은 견과류이지만 생김새도 맛도 모두 다른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는 모두 아몬드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
하지만 같은 <아몬드>라도 조명, 온도, 습도…에 따라 모두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요? 오늘은 소설, 연극, 뮤지컬 다양한 맛으로 즐길 수 있는 <아몬드>를 소개하려고 해요. 그 중에서도 코엑스 아티움에서 한 달 동안 고소하면서도 씁쓸한 맛을 선보인 뮤지컬을 말이죠.
뮤지컬 <아몬드>는 2017년 출간된 손원평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요. 콘텐츠 제작사 ‘라이브’가 뮤지컬 <팬레터>를 이어 코엑스 아티움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품의 제목 ‘아몬드’는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고 있는 부분의 별칭이에요. 다른 사람들보다 뇌 속의 편도체가 작아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오히려 관객은 작품이 전개될수록 깊은 감정의 골짜기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죠.
먼저 윤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괴물’이라고 불리지만 엄마와 할멈에게는 잔뜩 사랑을 받는 윤재. 그들은 윤재에게 감정에는 무엇이 있는지, 감정마다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서 ‘행복’을 느끼기 바라는 가족들의 사랑인 셈이죠.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윤재는 특정한 사건으로 인하여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돼요. 더이상 “아몬드를 먹으면 윤재의 아몬드가 커질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엄마와 “사랑은 예쁨의 발견”이라고 알려주는 할멈은 곁에 없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바라는 본인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하여 윤재는 학교에 나가고, 이웃이자 엄마의 친구인 심박사와 대화를 나누죠. ‘괴물’이라고 불리는 소년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지만 간극은 영영 좁혀지지 않을 것만 같아 보였습니다. 다른 이방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곤이와 도라를 만난 윤재는 감정을 학습하지 않고 깨닫기 시작합니다.
“돌덩이가 내려 앉은 기분이었다.” (윤재의 나레이션 中)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곤이와, 즐거움과 열정이 가득한 도라는 윤재가 일평생 느껴보지 못한 무언가를 안겨 주었어요. 곤이와 도라의 아몬드는 윤재에게 돌덩이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윤재 스스로 극한이라고 칭한 사랑을 여러 형태로 만나게 된 것이죠. 가족, 친구, 이웃, 연인의 사랑을 말이에요.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들의 마음을 조명 효과가 직관적으로 그리고 또 은유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희노애락애오욕’의 형상화, 윤재와 곤이, 도라 사이에 얽힌 감정들을 나타내는 거미줄 같은 조명 디자인과 색상, 주요 배경과 사건을 그림자로 나타내는 등의 표현은 대사로 전달하지 못하는 속마음까지도 드러내요. 또, 이는 곧 윤재의 성장을 나타내기도 하죠.
숨 참고 러브-다이브 💘
아몬드가 작아서 괴물이라 불리던 소년은 또 다른 괴물을 만나서 새로운 것을 느끼고, 경험하면서 크고 단단한 아몬드를 얻었어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괴물일지도 모르고, 그 괴물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해주는 사람들의 애정 어린 눈길이 성장의 영양분이 되죠. 관객들은 윤재의 변화와 성장을 따라가면서 스스로를 톺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몬드> 창작 초연은 인터파크 씨어터 소속 공연장으로 재탄생한 코엑스 아티움에서 진행되었어요. 새로운 공연장의 시작, 그리고 뮤지컬로서 <아몬드>의 시작. 시작과 시작의 만남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어 많은 관객들에게서 공감과 눈물을 불러왔고 이제는 다음을 기약해야 할 때가 왔어요. 3년의 제작 기간을 걸쳐 마침내 무대 위에 오른 아몬드는 한 시즌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뮤지컬 <아몬드>의 메인 카피는 “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인데요. 여러분께 아몬드는 어떤 존재일까요? 저에게는 역시 ‘사랑’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아몬드의 등장, 그리고 다음 시즌이 돌아오기를 함께 기다려 보아요!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원작 소설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연출가의 이야기처럼, 청소년 문학의 묵직하고 깊은 메시지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어요.
- 임팩트 있는 텍스트들을 넘버에 잘 녹여내어 나도 모르게 명대사를 흥얼거리고 있는 마법이 일어났답니다.
- - 다양한 조명과 세트 전환! 지루하다고 느낄 틈 없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어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 윤재 위주의 서사 전개이지만 인물 소개, 상세페이지에 기재해둔 곤이와 도라의 이야기는 두드러지지 않았어요. 두 인물의 과거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슨 일이 그들을 지금처럼 만들었는가에 대한 내용이 언급 되었다면 인물과 더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Editor’s Comment
감정은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지 않고, 과학 이론처럼 증명해내기 어렵지만 우리의 아몬드는 늘 표현하기를 바라고 있을 거예요. 관객들에게 여러 가지 이유들로 덮어두기 바빴던 감정들을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노라. 그것이 죄가 될지, 독이 될지 영원히 알 수 없더라도 나는 이 항해를 멈추지 않으리.” - <아몬드> 中
그리고 사랑이라는 극한의 감정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을 감싸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들의 사랑을 지키고 보살펴 줍시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말로 “사랑해.” 표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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