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 연극이 되는 마법, 무용가 피나 바우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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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세요? 표정이나 손짓, 글로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말’일 거예요. 그런데, ‘말문이 턱 막힌다’고들 하죠. 가끔은 어떤 말도 나오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무용가 피나 바우쉬는 이를 몸으로 표현했어요. 그는 “도저히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말도 뭔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어요. 그렇게 때문에 춤이 필요한 거죠”라고 말했는데요. 그는 무대 위에서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있는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현해내는 ‘탄츠테아터’를 선보였어요. 오늘은 20세기의 현대 무용사에 있어 ‘혁신’이라 불리는, 피나 바우쉬와 ‘탄츠테아터’에 대해 알아볼게요.
피나 바우쉬(Pina Bausch), 혁신의 시작
피나 바우쉬(Pina Bausch, 1940~2009)는 독일의 졸링겐(Solinge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부모님은 식당이 딸린 여관을 운영했었고, 그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어요. 그는 늦은 시간까지 식당의 손님들을 가만히 지켜보곤 했었는데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즐거움과 슬픔을 나누는 모습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죠. 이렇게 만들어진 피나 바우쉬만의 감성은 훗날, 그의 작품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어린 피나 바우쉬는 식당에서 뛰어놀면서 가벼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했는데요.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오던 졸링겐 극장 관계자들의 눈에 띄게 된 그는 극장에 있는 어린이 발레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후 에센의 폴크방 스쿨에 진학했어요. 그곳에서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아버지라 불리는 쿠르트 요스(Kurt Jooss)로부터 무용을 배우게 되었죠.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개성과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지도했는데요. 표현주의에 근거한 무용이론만이 아니라 연극, 음악과 결합하는 등, 모든 예술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총체예술교육을 지도했어요. 이때 그는 독일어로 춤을 뜻하는 ‘탄츠’와 연극을 뜻하는 ‘테아터’의 조합인 탄츠테아터(Tanztheater)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접했다고 해요.


피나 바우쉬는 폴크방 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줄리아드 스쿨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폭넓은 무용 세계를 만났어요. 당시 미국은 발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죠. 재능이 남달랐던 그는 이때의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어요. 이 시간들은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시기로 꼽힌다고 해요.
독일로 돌아온 피나 바우쉬는 스승인 쿠르트 요스의 폴크방 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안무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어요. 두 번째 안무작인 <시간의 바람 속에서>가 쾰른 안무 경연대회에서 안무상을 받았고, 이는 안무가로서 가능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죠. 그 후로 1973년,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예술감독으로 임명이 되며 본격적으로 안무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요. 그의 안무작들은 충격과 놀라움의 연속이었어요.
인간을 탐구하는 몸의 움직임
그는 탄츠테아터(tanztheater), 즉 음악, 미술, 연극 등 모든 예술을 융합하여 자신만의 공연을 만들었어요. 당시 발레 스타일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이런 형태의 안무는 난해하고 충격적인 무대였죠. 기존 발레가 갖고 있던 어떤 규칙도 없었고, ‘만들어진 서사’도 없었어요. 대신, 그는 인간의 본질을 주제로 하여 일상에서의 다양한 감정과 문제들을 몸으로, 가감 없이 표현했어요. 그는 ‘나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다는,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라고 자주 언급하곤 했는데요. 언제나 주제는 ‘인간의 삶’이었습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 가운데에서도, 인간의 욕망과 모순, 여성에 대한 차별 등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감정들이었죠.
그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대사를 통해 바로 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는데요. 관객들은 너무 나도 사실적인 주제와 표현방식에 당혹감을 느꼈고, 이에 화가 난 관객들은 야유를 퍼붓기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가치는 당대 예술가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고,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쌓기에 이릅니다. 탄츠테아터는 그에 의해 하나의 예술 사조로 확립되었고요.
피나 바우쉬를 대표하는 작품들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이러한 주제의식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는, <봄의 제전>을 꼽을 수 있어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봄의 제전>은 스트라빈스키의 원작을 파격적으로 해석한 작품이에요. 이 작품에서는 질서와 무질서, 삶과 죽음 등의 대립을 표현하면서, 희생의 의미로 ‘빨간색’을 사용했어요. 빨간색 천이 여성 무용수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 다니다 제물로 희생될 여성이 선택되는데요.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강렬한 춤을 추죠.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바로, 무대미술입니다. 예를 들어, 작품 <카네이션>에서는 잔디와 수많은 꽃, 흙과 물, 살아있는 동물 등을 활용했어요.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획기적인 무대 장치들로 관객들은 공연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고, 공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죠. 어떻게 보면, 의아할 정도로 공연 무대에 흔히 사용되지 않는 소재들도 많은데요. 그의 실험적인 작품 주제를 드러내기엔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삶과 내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죠. 그래서인지, 피나 바우쉬의 작품은 초연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어요. 그의 전 레퍼토리가 아직도 무수한 무대 위에 오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죠. 무용과 연극을 넘나들며 그가 표현해 내는 독특한 스타일은 아직도 신선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 세계를 그린 영화, 빔 벤더스 감독의 <피나(Pina,2011)>를 보시는 것도 추천해요. 그를 대표하는 네 개의 작품들과 함께 피나 바우쉬의 생전 모습들과 동료들의 인터뷰까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인데요. 3D로 구현되어 마치 관객석에 앉아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류한울·조주연 공동 작성
ㅇ 참고자료
- 요헨 슈미트. 『피나 바우쉬 : 두려움에 맞선 춤사위』, 서울: 을유문화사, 2005.
- 심정민. 『무용 비평과 감상 』, 서울: 레인보우북스, 2020.
- 제환정. 『우리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춤춘다』, 서울: 버튼북스, 2017.
- 배소심·김영아. 『세계무용사』, 서울:혜민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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