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중세의 타이타닉, 바사호가 있는 ‘바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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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킹의 후예’로 대항해 시대의 패권을 쥐었던 나라. 스웨덴이 떠오르시나요? 스웨덴은 17세기에 북아메리카까지 항해 길을 확보한 강력한 해상 국가였는데요. 하지만 이 화려한 전성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으니, 바로 17세기에 일어난 ‘바사(Vasa)호 침몰 사건’입니다. 유럽 최대의 전함이었던 바사호가 침몰한 세기적 사건이었죠. 놀랍게도 바사호는 박물관으로 재탄생해 현재까지도 남아있다는데요! 세계 유일의 17세기 전함을 전시하고 있는 스웨덴의 ‘바사 박물관(Vasa Museum)’, 그리고 바사호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만나러 가보시죠.

 

 

중세의 타이타닉, 바사 박물관

  스웨덴의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스톡홀름은 14개의 섬과 57개의 다리로 구성되어 있어, ‘북방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데요. 이 많은 섬 중에서도 ‘박물관의 섬’이라 불리는 유르고덴(Djurgarden)이 있습니다. 이곳은 과거 국왕의 사냥터였고, 현재는 바사 박물관(Vasa Museum)을 포함한 놀이공원, 세계 최초의 야외 민속박물관 ‘스칸센(Skansen)’, 세계적인 팝 그룹 아바(ABBA)를 기념한 ‘아바 박물관(ABBA Museum)’ 등이 들어서 있는 복합 문화예술 공간입니다. 그중에서도 해안가에 위치한 ‘바사 박물관’은 그 외관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끕니다. 마치 바사호를 상징하듯 큰 배 모양의 건물이 우뚝 서있기 때문이죠. 자, 그럼 이 커다란 배, 아니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바사 박물관 외관 ⓒAd Meskens

 

  1층으로 들어서자마자 17세기 유럽 최대 규모의 전함, 바사호의 위용에 압도되실 텐데요. 바사호는 당시의 웅장한 모습 그대로 마치 출항 준비를 마친 것처럼,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선체의 크기를 비교했을 때, 바사호는 중세의 ‘타이타닉’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길이 69m, 높이 48.8m의 크기로 실제 타이타닉호와 비슷하죠. 그 규모가 한눈에 감상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에, 홀 내부는 4층까지의 층계를 오르내리면서 바사호를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바사호의 모습 ⓒINSTAGRAM@vasamuseet
바사호의 모습 ⓒINSTAGRAM@vasamuseet

 

  웅장함뿐만 아니라 섬세한 장식과 설비 역시 최대의 규모였습니다. 선박 곳곳에 수많은 예술품들이 조각되어 있었는데요. 바사호가 인양될 당시, 1만 4000개 이상의 목조품과 700여 개의 조각상이 발견되었다고 하죠. 바사호는 출항 당시에도 이미 바다 위 미술관이었던 겁니다. 또한 배수량 1210t, 적재 대포 64문, 탑승 가능 인원 450명이라는, 당시 어떤 면에서든 ‘최대’의 수식어가 붙는 화려한 전함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작비가 스웨덴 국민 총생산의 5%를 넘었다고 하는데요. 국왕 구스타브 2세의 명으로 건조된 만큼, 왕실의 위엄을 과시하기에 충분한 전함이었습니다.

 

바사호의 조각상들 ⓒINSTAGRAM@vasamuseet

 

 

바사호 침몰사건

  안타깝게도 이 화려한 위상은 빛날 틈도 없이, 바닷속 어둠 안에 갇혀 버리고 맙니다. 1628년 8월 10일 스톡홀름 부두에서 처음 출항했던 바사호. 하지만 출발하자마자 돌풍과 함께 침몰하고 말았던 것이죠. 침몰의 명확한 이유는 333년 뒤, 인양 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배의 안정을 위해서는 일정량의 바닥 짐이 필요한데 침몰 당시 바사호가 실은 바닥 짐은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좌우대칭의 불균형과 과도한 장식과 대포의 적재, 6년의 제작 공정을 3년으로 단축하며 있었을 부실공사 등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었죠.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빨리’를 요구했던 구스타브 2세의 욕심이 화를 불렀던 것입니다. 

 

바사호의 인양 모습 ⓒINSTAGRAM@vasamuseet
전시되어 있는 승무원 유골 ⓒMurat Özsoy


  바사호 박물관에서는 선체뿐 아니라, 내부 전체를 수놓은 조각상, 승무원들의 유골과 유품 등도 관람할 수 있는데요. 333년 동안 바닷속에 있었던 바사호와 그의 유물들이  어떻게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많은 전문가들이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꼽았는데요. 침몰 당시 바사호가 갓 만들어진 배였고 진흙층이 방부제 역할을 했으며, 목재를 못 쓰게 만드는 배좀벌레 조개가 해당 지역에서는 번식하지 못했던 덕분이라고 합니다. 처녀 출항에 침몰했던 불운의 바사호에게 남겨진 마지막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양 이후, 스웨덴은 9년간의 건조과정과 17년간의 보존제 처리과정을 거치는 등, 바사호 보존·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바사호 박물관은 이렇게 유물을 통해 바사호의 비극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95%의 실제 모습을 간직한 17세기 최대 전함. 그 선체를 눈앞에 두고 오디오 가이드에서 나오는 바사호의 사연을 듣고 있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북방의 사자’라 불렸던 구스타브 2세의 욕심으로 인해 처녀 출항에서 침몰하고 만 바사호. 하지만 바사호의 결말은 단지 비극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양 후 바사호에 쏟았던 스웨덴의 지속적인 노력과 함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스웨덴의 국민 의식이 바사호에게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이죠. 바사호의 유물과 남겨진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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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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