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엄마 말 안듣는 <고집쟁이 딸>, 시집 보내기 프로젝트!

  • 1,205
  • 0
  • 글주소

  각종 SNS에서 짧은 영상으로 공유되고 있는 핫한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아시나요? 베테랑 육아 전문가들이 모여 부모들에게 육아법을 코칭하는 프로그램인데요. 다양한 고민과 눈물나는 사연으로 현재 우리나라 부모님에게는 필수 시청 프로그램이 되었어요.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제목 중 ‘금쪽’은 아주 귀하지만 말 안 듣는 사람을 부르는 일상용어로도 사용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죠. 금쪽이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엄마 말 안 듣는 고집쟁이 딸도 언제나 있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한 옛날 옛적 금쪽이의 코믹한 고군분투, 한번 들어보실래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금쪽이 연애 방해 대작전

  오늘의 주인공, 금쪽이 ‘리즈’는 그의 연인인 ‘콜라스’와 결혼하려고 해요. 하지만 리즈의 어머니는 딸을 부유한 토지 소유자의 아들에게 리즈를 시집보내려 콜라스와의 관계를 방해하죠. 하지만 리즈는 궂은 방해 속에서도 어떻게든 연인과 만나 남몰래 깊은 사랑을 나누는데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과연 리즈는 콜라스와 결혼할 수 있을까요?

  리즈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발레 <고집쟁이 딸>이에요. 제목과 내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초지일관 쾌활한 분위기예요. 발레 작품에서는 흔하지 않은 코믹 형식이죠. 총 2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무려 1789년에 초연되었어요. 오늘날까지 공연되는 발레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죠. 원작 제목은 <La Fille mal gardee>로 ‘다스리기 힘든 딸, 계속 지켜봐야 하는 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보다 매끄럽고 직관적인 <고집쟁이 딸>로 번역되었어요.

  작품에는 재밌고 독특한 장면이 많아요. 먼저 1막 1장에 나오는 ‘암탉과 수탉의 춤’에서 무용수들은 닭으로 분장해 흉내를 내요. 실제로 살아있는 닭이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생생하죠. 1막 2장의 ‘나막신 춤’은 리즈의 어머니인 시몬이 중심이 되는 경쾌한 장면인데, 영국의 민속 나막신 춤을 인용해서 만들었어요. 화려한 장식으로 눈을 사로잡는 ‘메이폴 춤’은 많은 인원과 메이폴이라는 소품이 동원되어 축제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답니다.

 

국립발레단이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국내 초연한 애슈턴 안무 버전 발레 &#039;고집쟁이 딸&#039; /국립발레단 제공
암탉과 수탉의 춤 ©국립발레단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고집쟁이 딸 송태형의 현장노트 | 한경닷컴
나막신 춤의 한 장면 ©국립발레단

 

💥<고집쟁이 딸>, 발레계의 대혁명이 되다!

  이 작품이 초연된 시점, 1789년 7월 1일은 프랑스 대혁명 2주 전이에요. 프랑스 대혁명은 전 국민이 자유와 평등을 위해 일으킨 시민혁명이죠. 이는 무능한 절대왕정에 실망한 파리의 민중들이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를 습격한 사건으로 시작됐어요. 혁명이 몇 년간 이어짐에 따라 프랑스 왕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크나큰 사건이었죠.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지던 사회 분위기는 발레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고집쟁이 딸>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발레는 프랑스 왕실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즐기던 궁정 문화 중 하나였어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럭셔리한 세트나 반짝이는 보석으로 치장한 귀족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요. 결국 <고집쟁이 딸>은 왕실의 문화였던 발레가 소박한 서민의 오락거리로 바뀌던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에요. 

 

프랑스 대혁명 ©Wikipedia

 

  당시 프랑스에서 나타났던 두 가지 사회 현상이 있어요. 첫째는 귀족이 아닌 부르주아들이 공연의 주요한 관객층이 되었다는 것, 둘째는 프랑스가 농업을 중심으로 사상적·경제적 정책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즉, 국제적인 무역 발달로 경제적 성장을 이룬 부르주아들과 프랑스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농민을 위한 정책이 <고집쟁이 딸>이 만들어지던 당시에 등장했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이제껏 억압받던 사람들이 평등한 인권과 자유를 외치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귀족이 아닌 서민들의 발레, 왕실이 아닌 지방 농가 생활을 담은 발레! 격동하던 당시 시대적 배경처럼, <고집쟁이 딸>은 발레계의 대혁명인 듯하네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현대까지 사랑 받는 작품의 이유!

  <고집쟁이 딸>은 1789년 프랑스 보르도 대극장에서 초연한 이래 가장 오래된 전막 발레로 알려져 있어요. 당시 프랑스의 대중적인 노래 55곡에 맞추어 안무가 창작되었는데, 작곡자나 편곡자는 전해지지 않고 있죠. 이 작품의 원 안무자 장 도베르발(Jean Dauberval, 1742~1878)은 피에르-앙투안 보두앵 (Pierre-Antoine Baudouin, 1723~1769)의 그림을 조각한 판화「꾸지람/엄마에게 혼나는 어린 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판화는 어떤 내용이냐고요? 헛간에서 옷이 엉망인 채 울고 있는 딸과 야단치는 어머니, 그들 뒤로 살며시 도망치는 청년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현재 도베르발의 안무는 사라지고 러시아 볼쇼이 극장을 위해 안무한 알렉산드로 고르스키(Alexander Gorsky, 1871~1924) 버전(1903)과 영국 로열 발레단을 위해 안무한 프레데릭 애쉬튼(Frederick Ashton, 1904~1988) 버전(1960) 두 가지가 존재해요. 두 버전 중 좀 더 현대적인 프레데릭 애쉬튼 버전이 더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죠. 

 

국립발레단이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국내 초연한 애슈턴 안무 버전 발레 &#039;고집쟁이 딸&#039; /국립발레단 제공
애슈턴 안무 버전의 <고집쟁이 딸> ©국립발레단

 

  프레데릭 애쉬튼은 당시 맥밀런과 로열 발레단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 안무가 중 한 명이었어요. 그의 대표작 <신데렐라>는 전 세계에서 같은 버전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유명한 발레라고 할 수 있죠. 그는 <고집쟁이 딸>을 자신만의 버전으로 만들 때 기본적으로 도베르발의 대본을 고수하려고 했어요. 거기에 클래식 발레와 영국의 민속춤을 결합한 안무를 더해 프랑스의 농촌 생활을 보여주려 했고요. 애쉬튼의 버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면으로는 ‘파니 엘슬러 파드되’를 꼽을 수 있는데요. 파니 엘슬러는 이 작품을 통해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데뷔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 발라레나랍니다. 도베르발의 원작에는 남녀의 파드되가 없었지만, 애쉬튼은 파리 오페라 극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악보를 찾아내 그랑 파드되를 만들었죠. 그리고 이를 파니 엘슬러가 추면서 그 유명한 ‘파니 엘슬러 파드되’가 완성되었어요다. 그는 이 작품에서 안무를 하는 무용수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당시 기존의 발레 작품에 새로운 음악을 추가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때 파니 엘슬러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1832)의 음악을 추가해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인기 오페라의 일부를 가져옴으로써, 작품은 관객에게 발레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듣는 재미까지 선사하게 된 거예요.

 

국립발레단이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국내 초연한 애슈턴 안무 버전 발레 &#039;고집쟁이 딸&#039; /국립발레단 제공
파니 엘슬러 파드되 장면 ©국립발레단

 

  애쉬튼의 안무가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르사주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 작품은 다양한 안무가들이 자신의 버전으로 창작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버전 중 가장 성공한 버전은 애쉬튼의 안무이다. 정말 걸작이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아름다운 세트, 작품의 모든 요소들이 관객을 미소 짓게 한다.” 

 

  발레 작품 <고집쟁이 딸>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주인공, 어디서나 들어볼 법한 사랑 이야기, 유쾌하고 코믹한 분위기의 춤과 노래까지! 게다가 귀족들만 즐겼던 발레로서는 처음으로 서민들의 아기자기한 농촌 생활 풍경을 다뤄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했죠. 이 작품은 만들어진 당시에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웃음을 전달해주는 것 같아요. 일상에 치여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사랑스러운 그녀 ‘리즈’를 보면서 한 번씩 웃고 털어내는 건 어떨까요?
 


 

ㅇ참고자료

- 한지영 외 1명, 『발레 작품의 세계』, 플로어웍스, 2021.

- 이찬주, “두 편의 고전발레와 새로운 춤터”, 공연과 리뷰 제95호, 2016.

  • - 정옥희, “평범한 이들을 위한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 국립극장 블로그, 2022.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등록 : 09-14

키워드

#무용 #발레 #부르주아 #프랑스혁명 #파니엘슬러 #파드되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