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일인극이 무대를 삼키면 벌어지는 일

  • 1,503
  • 1
  • 글주소

  막이 오릅니다. 한 배우가 등장합니다. 30분이 지나도, 1시간이 지나도 배우는 무대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100여 분이 지납니다. 그 배우는 막이 내리기까지 한 번도 퇴장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한 명의 배우만이 무대 위를 뛰고 걷고 눕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연출이 익숙하신가요? 이렇게 한 명의 배우로만 진행되는 극을 일인극이라고 해요. 배우 한 명이 혼자서 수십 분을 연기한다고 하니, 왠지 지루할 것 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일인극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고요! 일인극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이 글을 읽으며 함께 일인극 매력행으로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안전띠 단디 매셨나요? 자 그럼, 출발!
 

💨뛰는 코로나 위에 나는 일인극

  코로나 시기, 공연예술계는 큰 타격을 입었어요. 이를 보완하여 공연을 지속하기 위해 공연예술계가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온라인 플랫폼과의 결합, 1인 관람객만을 위한 연주, 배우와 관람객 모두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드라이브 스루 극장 등 실험적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죠. 특히 일인극은 코로나 시기와 어우러지는 면들이 있어 더 빛을 발했는데요. 먼저 일인극 프로덕션은 규모가 작아 방역지침을 지키기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지금은 처음에 비해 많은 부분이 완화되었지만, 작년과 재작년에만 해도 인원수와 실내 면적 등이 엄격하게 규제되었었죠. 심지어 실내 연습실을 구하지 못해 공연이 무산된 경우들도 있었답니다.

  또한 일인극은 한 사람이 등장하는 극의 특성상 배우가 인간의 내면을 더듬어 가는 서사가 많아요. 한 사람을 깊이 파악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보다 일인극이라는 요소가 더욱 두드러지는 방법이니까요. 이는 또한 코로나 시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과 맞닿는 면이 있죠.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는 코로나 19가 자아성찰의 과정과 연결된다며, 이런 흐름이 일인극의 속성과 맞물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일인극의 가능성을 믿는 제작자들이 많아진 것 같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귀띔하기도 했고요. 이처럼 코로나19로 막힌 공연계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공연예술의 여러 가능성과 작품성을 고민할 때, 일인극은 대규모 프로덕션보다 실험적 시도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코로나 시기에 무대에 오른 일인극으로는,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각색한 <데미안>, <전락>, <일리아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그리고 <그라운 디드>,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콘트라바쓰> 등이 있어요. 4시간 동안 원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간다거나(연극 <데미안>), 관객보다 배우가 먼저 무대 위에 서 있다거나(연극 <일리아드>),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 없이 원형으로 의자를 갖다 놓고 배우가 관객 옆에 앉거나 사이를 돌아다니며 연극을 하는 (연극 <전락>) 등 한 명의 배우만이 등장한다는 것이 무색하게도 절로 몰입을 불러오는 흥미로운 연출을 선보였죠. 오늘은 그중에서도 2019년 초연에서부터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포스터 ⓒKtN

 

😋소설 먹는 일인극

  프로젝트 그룹 일다의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뇌사판정을 받은 19살 소년 시몽 랭브르의 이야기예요. 죽음, 삶, 심장이식 그리고 이식되는 과정에 연루된 인물들을 24시간의 기록으로 그린 모노극이랍니다. 현대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베스트셀러 소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각색한 연극이죠. 

  사실 소설을 일인극으로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고민들이 있었다고 해요. 결과적으로는 그 고민들 덕분에 빛나는 연극이 존재하게 되었지만요. 손상규 배우는 여러 사람의 삶이 한 사람의 몸으로 표현되면서 발생하는 복합성이 매력적이라고 전했어요. 민새롬 연출가는 일인극 배우의 역량을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는데요. 배우는 텍스트만을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고, 주도성을 가지며 작가나 연출의 영역까지 소화할 수 있다고요. 동시에 그는 배우가 무대와 만나 일어나는 화학적 작용(케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연출가로서 기술적으로 접근하며 텍스트와 형식에 고무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 일인극 연출을 함으로써 배우들을 인식하고 만나는 경험이 달라졌다고도 밝혔어요. 이처럼 일인극은 전통적인 연극의 틀에서 벗어난 실험의 장으로서 연출가, 배우, 관객 모두가 ‘가능성’을 경험케 해요. 저도 관객으로서 일인극의 폭발성을 경험했는데요. 장경진 칼럼니스트가 말한 화학적 작용이 어떤 의미인지 공감하게 되었답니다. 무대 위 소품이라고는 전자시계 장치, 책상, 의자 그리고 파도와 심장을 보여주는 거대한 미디어 화면밖에 없었지만, 그것들이 배우와 만나 불꽃 튀는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꽉 찬 무대를 만든다는 사실이 퍽 놀라웠습니다. 

 

손상규 배우ⓒKtN

 

  소품이 적은 것은 상황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작품성을 돋보이게 한다는 장점도 있어요. 긴 책상은 처음에 서핑보드가 되어 거친 파도를 헤엄치는 데에 사용되었다가, 이어 시몽이 안치되는 판으로 바뀌는데요. 이처럼 이 작품은 같은 소품을 여러 도구로써 활용한답니다. 무대를 이런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삶과 죽음이 같은 선상에 있음을 암시하는 듯했어요. 그리고 그림자를 활용한 것은 예술적 표현인 동시에 일인극의 매력을 더욱 빛낸 장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삼면의 벽에 투영된 그림자는 인물들의 심리를 드러내는 듯했고,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심장이식의 과정은 경이로웠죠. 이런 무대가 완성되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2021년 공연 당시 손상규 배우의 인터뷰에 의하면, 이 작품은 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해요. 혼자 감당하기에 작품의 물리적 양이 많았고, 내용 전달에 고민도 필요해 준비 기간이 석 달 정도 되었다고 하죠. 배우를 비롯해 연극 관계자들의 진지한 자세와 노력이 있었기에 멋진 공연이 올려질 수 있었던 거겠죠?

 

🙄오늘의 답은?

‘어떤 것이 삶을 가장 왜곡하지 않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준비 기간을 관통하는 질문이에요. 공연 내내 이어지는 질문이기도 하죠. 배우들은 무엇이 맞는 해석인지, 무엇이 적합한 표현인지 계속해서 답을 찾기 때문이에요. 손상규 배우는 공연이 작품 혹은 무언가를 만나는 과정 중에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라고 했어요. 오랜 준비 끝에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공연만 생각하던 우리의 생각을 뒤집는 통찰이죠. 관객들은 연극이 안고 있는 질문의 답을 극을 관람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얻게 되는 거예요.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삶과 죽음이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다뤄요. 객관적이고 관조적이며 절제된 느낌으로요. 과장 또는 포장하거나,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연출은 관객들이 초연한 자세로 극의 질문을 맞이하게 해요. 덕분에 저도 삶과 죽음을 담담하게, 그러나 경외감을 느끼며 생각할 수 있었답니다. 연극이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주입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서술한 점이 인상 깊었어요. 

  이 극은 또한 심장이식 과정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죽음의 정의가 뇌 정지인지, 심정지인지 고민해보게 하고, 무엇을 진정한 죽음으로 볼 수 있을지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미 코마 상태에 들어간 시몽을 둘러싸고 그의 부모님에게 시몽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질문을 하며 심장이식 여부를 결정하는 장면이었어요. 시몽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시몽으로 이식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이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연극<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경향신문

 

  좋은 연극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극장 안과 밖에서 관객이 끊임없이 고민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무거운 주제를 적당한 톤으로 끌어가요. 덕분에 관객의 심장에는 부담을 주지 않고, 머리는 윙윙 돌아가게 해 주다니 참 고마운 작품입니다.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 1인 배우의 한계를 그림자 연출로 뛰어넘은 점이 인상 깊었어요. 
  • - 웅장한 사운드와 큰 스크린을 통해 메시지가 생생하게 전해졌고 몰입도도 높아졌어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프랑스어 원명으로 되어 있어 누가 어떤 인물인지 조금 헷갈릴 수 있겠어요!
  •  

💬Editor’s Comment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파도타기로 시작하여 심장이식으로 끝납니다. 막이 내릴 때 한동안 들려오는 웅장한 파도소리가 어느 순간 몸 안을 힘차게 순환하는 피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어요. 이후 파도와 심장, 삶과 죽음의 관계성에 주목하게 되었죠.  역동적인 파도는 다양한 생명을 품고 있는 동시에 일순간에 죽음의 문턱이 되기도 하잖아요. 고동치는 심장도 생명력 그 자체이지만, 아슬아슬한 죽음을 나타내고요. 이런 유사성을 떠올리니 작품이 더 매력 있게 다가왔어요.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여 새로운 것을 발견케 하는 것이 공연예술의 묘미인 듯해요. 그 묘미를 이 작품이 정말 멋지게 구현했답니다. 저만 느낀 게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극이 끝난 뒤 모든 관객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답니다! 코로나 유행에 큰 타격을 받았음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무대를 올린 공연예술계에 감사를 전하고 싶어지네요. 자, 어느새 하차할 시간이 되었어요. 종점에 도착했거든요! 여기는 바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공연 중인 ‘이해랑 예술극장’ 앞입니다!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등록 : 09-07

키워드

#연극 #살아있는자를수선하기 #이해랑예술극장 #프랑스 #문학 #일인극 #철학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