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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나비부인, 전쟁 속 피어난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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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미오와 줄리엣>, <레미제라블>, <렌트>... 아주 익숙한 뮤지컬들인데요.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절망 속에 피어난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에요. 작품 속 사랑은 가문의 반대 속에서, 또는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삶 가운데서 피어나죠. 너무 절절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적 에너지가 크게 소모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만약, 이 가슴 아픈 사랑이 실제 이야기라면 어떨까요?

 

🤔전쟁 속에 피어난 사랑, 익숙한데?

  전쟁은 언제나 불안하고 폭력적이며 잔인합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죠. 하지만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납니다. 어쩌면 더욱 애절하고 간절하게요. 베트남 전쟁 시기 피어난 사랑을 뮤지컬로 조명한 작품 하나를 소개해 볼게요. 이름에서부터 어떤 전쟁인지 알 수 있어요. 바로 <미스 사이공>입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70년대 사이공, 한 나이트클럽에서 주인공 킴과 미군 크리스가 만나게 돼요. 이들은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과 베트남 여인이 사랑을 약속하면서 시작되는 비극을 보여주는 이야기예요.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 문제들도 곳곳에 녹아 있죠. 고문, 굶주림, 고아, 부도덕한 사회상 등 전쟁 때문에 발생한 아픔들 말이에요. 

  실제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만큼 많은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기도 해요. 아시아계 일부 단체들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미화하고 아시아 여성에 대한 옐로 피버를 정당화한다는 이유로 공연을 중지시키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어요. 반면 일부 미국인들은 작품이 미국을 비판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죠. 전쟁 후유증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고, 무엇보다 전쟁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미스 사이공>하면 여전히 양측의 주장은 팽팽하게 이어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 사이공>은 저명한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Cameron Anthony Mackintosh, 1946~)의 4대 뮤지컬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이는 국경을 초월한 사랑, 화려한 무대와 군무, 중독적인 음악들 때문이에요. 거대한 스케일의 무대 세트 역시 빼놓을 수 없고요. 미스 사이공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손꼽히는 부분이 바로 사이공 함락 장면인데요. 무려 실물 크기의 헬리콥터가 무대에 등장한답니다. 실제 포스터에도 석양을 배경으로 헬리콥터들이 날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뮤지컬 <미스 사이공> 공연 포스터 ©더뮤지컬

 

  전쟁 속에 피어난 사랑, 왠지 익숙한 주제죠? 사실 <미스 사이공>은 오페라 <나비부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나비부인>은 1904년에 초연된 푸치니의 오페라랍니다. 두 작품은 구성이 매우 유사한데요. <미스 사이공>을 현대판 <나비부인>이라고 이를 정도죠. 우선 이야기 전개와 배경이 굉장히 비슷합니다. 두 작품 모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키워드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해요. 푸치니의 <나비부인> 역시 미 해군 사관과 일본 매춘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답니다. 인물 구성 역시 비슷한데요. <나비부인> 속 아버지의 자살로 가세가 기울어 매춘부가 된 주인공 초초상은 <미스 사이공>에서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생계를 위해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베트남 소녀 킴으로 이어져요. 두 여주인공 모두 미군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되고요.

 

뮤지컬 <미스 사이공> 공연 장면 ©파이낸셜 뉴스

 

📷세계적인 뮤지컬을 탄생시킨 단 한 장의 사진!

  초연 당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스 사이공>은 신문 기사 속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85년 영국 신문에 실렸던 흑백 사진인데요. 사진 속 베트남 여인은 공항에서 슬픈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고, 아들은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울기 직전의 표정을 띠고 있죠.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작곡가인 미셀 쇤베르크와 알랭 부빌은 신문 기사 속 이 사진을 보고 큰 영감을 얻었어요. 이들은 원래 <나비부인>을 현대판으로 리메이크하려고 계획했었지만, 이 사진을 본 후 전체적인 플롯은 유지한 채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죠. 정말 기막힌 타이밍 아닌가요?

  작곡가와 연출가 모두 유럽인이었던 <미스 사이공>은 유럽에서 제작되었어요. 베트남과 미국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작품을 유럽인들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이 작품은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수많은 오해를 낳기도 했어요. 서양인의 관점에서 전쟁을 미화시킨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고요. 그러나 <미스 사이공>은 전쟁의 옳고 그름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그저 다양한 인간의 현실, 사랑, 생존을 그리고 있죠.

 

<미스 사이공>의 영감이 된 실제 신문 기사 속 사진 ©의협신문

 

👯‍♂️믿고 보는 콤비, 또 하나의 대작을 탄생시키다!

  <미스 사이공>은 작곡가 클로드 미셸 쇤베르그(Claude-Michel Schönberg, 1944~)와 작사가 알랭 부빌(Alain Boublil, 1941~) 콤비가 함께 만들었는데요. 이 둘은 세계 뮤지컬 시장에서 제작사와 관객 모두가 인정하고 믿고 보는 환상의 콤비랍니다. 잠깐! 왜 이 둘을 보고 콤비라고 부르는지 짚고 넘어가 볼게요! 두 사람은 <미스 사이공>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인연이 깊었거든요.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통해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었죠. 이 외에도 1973년에 이 둘은 함께 록 오페라 뮤지컬 <프랑스혁명>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 경험도 있고요.

 

인터뷰 영상 속 클로드 미셸 쇤베르그와 알랭 부블리유 ©mirvishproductions

 

  이 둘은 신문 기사 속 사진을 발견한 후 <미스 사이공>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약 1년 동안 함께 고민하고 작업했어요. 그들이 만들어낸 음악의 힘은 대단합니다. 아리아 ‘I Still Believe’와 크리스와 킴의 듀엣곡 ‘Sun and Moon’은 작품과 별개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죠. 핵심이 되는 넘버들은 작품 후반의 다른 넘버에서 변주되어 부분적으로 사용돼요. 예를 들어 킴이 자살을 하기 전 탐을 크리스에게 보내며 부르는 ‘희생된 새’는 ‘널 위해 내 생을 바치리’가 편곡된 곡이랍니다. 이렇게 분위기나 편곡을 달리해 같은 곡을 반복하는 것을 리프라이즈(reprise)라고 하는데요. 전체적인 음악의 통일성을 주기도 하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극의 내용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죠. 극적 상황과 인물의 심리, 감정 변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도 하고요.

 

✨아시아계 배우에게 등용문이 되어주었던 무대

  <미스 사이공>은 1989년 런던 초연 이후 전 세계에서 15개의 언어로 28개국에서 공연하며 카메론 매킨토시의 4대 뮤지컬에 등극했어요. 세계적인 뮤지컬인 만큼, 무대에 서게 될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겠죠? 실제로 이 작품이 초연되기 전까지 사전 조사와 세계 순회 오디션이 수년에 걸쳐 이루어졌어요. 특히 아시아계 배우들에게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굉장히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요. 동양인이 미국 뮤지컬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했고, 무대에 서는 것조차 힘든 일이거든요. 때문에 동양인 배우가 주인공을 맡을 수 있는 이 작품은 자연스레 아시아계 배우들에게 주목을 받았죠.

  실제로 뮤지컬 <미스 사이공> 오디션에서는 킴 역에 누가 캐스팅될 것이냐가 최대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주역을 따낸 배우들이 있어요. 뮤지컬 배우 이소정은 한국 최초로 1998년 12월 킴 역을 맡아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입성했고요. 이후에도 2015년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에서는 배우 김수하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주역을 따냈어요. 실제로 김수하 배우는 당시 22살로 <미스 사이공>이 첫 데뷔무대였는데요.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의 프로덕션 오디션에 합격하여 실력을 인정받았답니다.

 

꿈의 무대&#039; 선 히로인, 알고 보니 한국인? …해외 무대가 먼저 알아본 뮤지컬 배우들 - 올댓아트 - 경향신문
‘킴' 역으로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서 데뷔한 배우 김수하 ©경향신문

 

  우연히 발견된 사진 한 장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뮤지컬을 만들어 냈어요.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것은, 실제 존재했던 가슴 아픈 역사를 사랑 이야기로 풀어내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는 이 뮤지컬을 통해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에 아파하고,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배우게 되기도 합니다.

 

 

 

ㅇ참고자료

- 김슬기, “[공연] 4년만에 돌아온 '미스 사이공'…알고보면 더 재미있다”, 매일경제, 2010

- 김기윤, “7년 만에 돌아온 ‘브로드웨이 여신’”, 동아일보, 2021

- 이승희, 「뮤지컬 <미스사이공>과 오페라 <나비부인>의 대본 비교를 통한 뮤지컬 콘텐츠의 장르적 특징 연구」, 문화산업연구 제16권 제2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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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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