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출구까지 몇 마일(Miles)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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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저는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것들이 생각나요. 창문을 닫아도 귓가에 맴도는 매미 울음소리, 다채롭고 쨍한 색깔들, 파도가 철썩철썩 부서지는 바다처럼요! 한편으로는 에어컨 빵빵한 가게에서 먹는 냉면과 빙수, 쾌적한 영화관에서 보는 공포 영화와 같이 물리적, 심리적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도 생각나고요. 이러한 여름의 분위기와 딱 어울리는 전시가 있습니다! 바로 8월 28일까지 진행되는 <컬러 픽쳐스 마일즈 알드리지 사진전 2000-2022>인데요. 강렬한 색감과 영화적 미장센, 그리고 아날로그적 인화 방식의 결합으로 탄생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사진전이에요. 요약하자면 사진의 영화화, 영화의 사진화가 이루어진 전시라고 할 수 있죠! 이에 대해 사진전의 주인공인 마일즈 알드리지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의 사진을 보면서 아름다우면서도 불안하다고 느끼길 바란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컬러 픽쳐스? 마일즈 알드리지? 알려드리지!

  1964년 런던에서 태어난 마일즈 알드리지는 ‘컬러의 제왕’, ‘영화적 미장센의 대가’라고 불리는 사진가예요. 그는 패션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졸업 후 여자 친구의 프로필을 찍은 것을 계기로 패션 사진계에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답니다. 현재도 아날로그 방식인 필름 작업을 고수하여 희소성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요. 알드리지는 60-70년대 흑백 영화, 90년대 팝과 사이키델릭 문화, 서양 미술 등 여러 미술 사조에서 영감을 받아 정교한 미장센으로 작품화하는 데 탁월해요.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답니다.

“실제로 제 작품에는 회고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저는 제 어린 시절, 우리 집, 어머니를 자주 떠올립니다.”

  알드리지의 말처럼 그가 컬러와 영화적 연출에 심혈을 기울인 데에는 성장배경이 큰 영향을 끼쳤어요. 알드리지는 어렸을 적 60-70년대 이탈리아 흑백영화를 좋아했어요. 학창 시절 영화감독을 꿈꾸기도 했고요. 10살 무렵에는 아버지로부터 카메라를 선물 받아 사진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도 있었죠. 아버지인 알랜 알드리지는 싸이키델릭 레코드 커버를 디자인한 유명한 디자이너이자 무대 예술감독이었어요. 덕분에 알드리지는 존 레넌, 에릭 클랩튼, 엘튼 존과 같은 셀럽들을 자주 접하며 자랐답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인지 알드리지가 어릴 적에 살던 집도 예술적으로 꾸며져 있었어요. 벽은 오렌지색이고 팝아트 작품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죠.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불안정한 관계로 이혼했고 어머니 혼자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때의 기억은 그에게 상처로 남았고요. 이처럼 알드리지는 화려한 듯하면서도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요. 다행히 그는 자신의 아픔을 사진예술로 승화하게 되었어요.

 

마일즈 알드리지 ©milesaldridge.com

 

  이번 전시는 알드리지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여러 키워드 중 ‘컬러’와 ‘영화’를 주제로 기획되었습니다. 전시 제목인 ‘컬러 픽쳐스’는 알드리지의 스튜디오 이름인데요. 그만큼 압도적이고 다채로운 색의 향연을 감상하실 수 있을 거예요. 작년에 시작되어 큰 인기를 누렸던 <요시고 사진전>이나 <우연히 웨스 앤더슨>에서처럼요.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알드리지의 단독 사진전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관람 포인트는 알드리지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일 텐데요. 그는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영화와 사진 사이의 그 어딘가, 그게 제가 원하는 작품의 위치입니다.”

“제 작품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대체로 냉소적이고 풍자적입니다.”

  이처럼 그의 세계관은 ‘움직임이 있는 영화’와 ‘멈춰 있는 사진’의 경계를 허물고 만들어졌어요. 그 결과 화려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지닌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죠. 또한 그는 관람객들의 불안감을 유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확실히 미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예술가는 아닌 듯하네요.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이번 전시는 영화 장르와 등급을 테마로 하여 여덟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그의 작품 세계에 크게 영향을 주었던 불안한 가정환경은 ‘히로인’과 ‘전체관람가’ 섹션에서 두드러집니다. ‘히로인’의 원뜻은 영웅으로 묘사되는 남자 주인공 옆 여자 주인공이라는 의미였어요. 그러나 현재는 ‘여자 주인공’ 그 자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죠. 때문에 히로인 섹션에서는 어머니로서 여성의 모습들이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얘기되는 어머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어요. 마일즈 알드리지의 사진 속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의 어머니를 오마주한 여성상’인데요. 부모님의 이혼으로 불안정했던 시절, 그가 봤던 어머니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랍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을 함께 살펴볼까요? 

  먼저 사진 속 아이와 엄마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지 않아요. 표정은 굳어있고요. 또 아이 손엔 화장품이, 엄마 손에는 아이스크림 또는 풍선이 들려 있죠. 물건을 든 주체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만,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그는 이러한 균열과 부조화를 통해 불안과 낯섦을 유발하려 했던 것 같아요. 그의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삶 속에 스며든 좌절과 절망을 표출한 것이죠. 사진이 구도적 조형미를 갖추어서 그런 설정들이 더욱 생경했던 것 같기도 해요. 사이키델릭한 백색 벽과 컬러풀한 사진들의 대조도 낯선 기류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어색하고 불안정한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히로인’이라는 주제로 전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머니의 위치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여성은 히로인이다’라는 의미로 감상할 수도, 섹션명과 작품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불일치시켜 불편함을 자아내는 것이 목적이었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히로인’ 섹션 <A Family Portrait #13 (2011)> ©아트앤컬쳐

 

  '전체관람가' 섹션에는 어떤 분위기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을까요? 보통의 전체관람가 영화는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따뜻한 인상이지만, 이번 전시의 전체관람가 섹션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작품 속 여성은 가스레인지로 담뱃불을 붙이거나 어질러진 주방 용품 사이에 갇혀 있어요. 깨진 그릇들 가운데서 절규하기도 하고요. 구도적으로만 보면 인물과 그 주변 물체들은 안정적이에요. 그러나 사진의 서사는 섬뜩했죠. 인물들의 행동이 매우 위태로워 보였거든요. 알드리지가 어린 시절 느꼈던 불안이 반영되어 있는 듯했어요. 그래서 '전체관람가'라는 섹션명이 더욱 거슬렸어요. 불안해졌고, 불편했지요. 아마 저의 찝찝함도 의도적 불일치의 결과였겠죠?

 

‘스릴러’ 섹션 <Chromo Thriller #3 (2012)> ©아트앤컬쳐
Venus Etcetera (after Titian), 2021
‘전체관람가’ 섹션 <Venus Etcetera (after Titian) (2021)> ©아트앤컬쳐
 

 

 😏밀당의 달인

  불안, 공허, 알 수 없는 내면, 부자연스러움. 많은 이들이 마일즈 알드리지의 작품을 감상한 뒤 떠올릴 만한 단어들이에요. 저의 경우에는 심지어 영문도 모른 채 작가에게 당하고 있다고 느끼기까지 했을 정도였죠. 사진 속 매력적인 인물과 영화적 연출에 시선을 빼앗기면, 이내 불안감이 엄습해 작품과 거리를 두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관람 후에야 이 모든 것들이 알드리지의 세계관이었음을 알게 되고요.

“저는 깊이 있는 통찰은 일상적인 상황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를 때, 모호함과 불확실함이 어떤 면에서 작품을 훌륭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빨리 파악할 수 있는 사진은 쉽게 지나치기 쉽거든요.”

“저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이처럼 알드리지는 일상에 주목하였고, 불안함과 불확실함을 작품 속에 담고자 했어요. 불편한 감정이 사람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동력이 된다고 믿는 것 같은데요. 더불어 그는 아름다움의 이면과 이상화된 행복을 탐구하며 의문을 던집니다. 특히 그의 작품 속 인물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 독특한데요. 심지어 남성은 대부분 손이나 상반신 등 신체 일부만 등장하죠. 알드리지의 사진 속 인물들은 아름다운 여성 하면 떠오르는 고정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작품 속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창백한 피부톤에 화려한 화장을 했고, 머리카락은 백금발 또는 쨍한 컬러거든요. 하지만 알드리지는 이처럼 마네킹 또는 바비인형을 연상케 하는 모습들을 통해 오히려 그 반대의 가치를 전하고자 합니다. 인물들의 극단적인 무표정은 내면 심리를 알기 어렵게 하죠. 자연스럽지 않은 피부 표현과 강렬한 색감이 대조되어 불편하기도 하고요. 마치 사람과 흡사한 외양의 로봇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결국 화려하게 치장된 인물들은 모두 부자연스러웠고, 속이 텅 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알드리지가 던지는 메시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상화하는 미와 행복이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런 것들에 대한 나의 내재화된 인식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마일드 알드리지는 “현실을 기록하는 것보다 때로는 허구의 미장센이 더 진실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어요. 일상을 치밀하게 짜인 허구적 미장센으로 재조립하여 비현실적인 현실을 만들어내고, 여기서 발생된 기묘한 에너지를 통해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바로 그의 작품관인 것이죠.

 

전시  <컬러 픽쳐스 마일즈 알드리지 사진전> 내부 ©노루페인트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 여러 가지 오브제와 소품 활용으로 전시에 재미를 더했어요.
  • - 알록달록한 벽의 컬러가 작품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어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 작가의 세계관이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충분히 다루어졌다면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작가의 예술적 측면보다는 인스타 감성용 사진을 얻기 위한 상업성 강한 전시처럼 보이기도 했거든요.

- 섹션명과 작품이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구간들이 있었어요. 영화 장르와 등급이라는 테마 안에 기존의 작품들을 넣으려다 보니 발생한 부분인지 의문이에요.

 

💬Editor's Comment

  마일즈 알드리지는 명성에 비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진가입니다. 출구 없는 그의 작품처럼, 알드리지의 세계관을 알게 되면 그의 출구 없는 매력에 빠지게 되는데요. 이번 전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올라갈 것 같아요. 올여름, 밝고도 어두운,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불편한 즐거움을 느껴보는 건 어떤가요?

 

 

 

ㅇ참고자료

- 이채영, 신혜영. “고정관념적 여성 이미지의 비판적 재현 - 마일스 알드리지의 패션 사진을 중심으로.” 한국패션디자인학회지 16 (1): 151–6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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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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