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고 선을 넘나든 화가, 박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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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여행하다가 들린 한 미술관이었어요.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는데요? 현대미술에는 큰 관심이 없었음에도 그 작가가 궁금해졌어요. 그리고는 쓰여있는 한국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박서보. 그렇게 한국 밖에서 그의 이름을 처음 알았고 한국 미술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채 몇 달이 되지 않아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죠. 막 호기심을 가질 때였기에 더욱 안타까웠어요. 조금은 늦었지만 그의 발자취를 쫓아가며 그의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보려고 해요.
😰 선처럼 단순하지 않았던 시작
1931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그는 1950년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하였지만, 곧 6·25 전쟁이 터지면서 그만두어야 했어요. 이후 남아있던 서양화과로 전과하며 김환기(1913-1976) 선생 아래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죠. 박서보는 1956년 기존에 국가의 후원을 받아 열던 국전의 작가 선정에 반기를 들고 반(反)국전 운동을 열며 주목받았고, 사실주의 미학을 거부하며 1960년대 한국 미술계의 중심에 서게 된답니다.
그의 대표적인 초기 작품은 한국 최초의 앵포르멜1) 작품인 <회화 NO. 1(1957)>이에요. 캔버스에 펼쳐진 우연 및 행위는 기존의 이성과 질서, 합리주의에 대한 저항의 언어로 여겨졌죠. 그의 작품은 ‘세계 청년 작가 파리대회’ 참석을 위해 1년간 파리에 머물면서 변화하는데요? <원형질> 연작으로 불리는 이 시기의 작품은 일상의 오브제를 활용하여 그 재질감을 표현하는 작품들이에요. 그는 이 시기의 그림들이 대량 학살, 집단폭력으로부터의 희생, 정신적 핍박, 부조리, 불안과 고독 그리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담함 속에서 자폭하듯 결행한 실천의 산물이라고 말해요. 이어 그는 물론 사회에 묻어 있는 전쟁 체험에서 비롯된 작품들이었죠.
하지만 이후 70년대에 들어서며 급속한 경제 개발과 도시 환경의 변화로 이전 작품들의 소통이 미적 효력을 다했다고 여겼어요. 그는 다음으로 <유전질> 연작을 그리게 되는데요? 이 작업은 오방색과 같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현대 예술에 접목하기 위해 고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마치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유전질> 시리즈는 시대의 차가움과 허무함을 보여주는 듯해요.
1) 기하학적 추상을 거부하고 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전후 유럽의 추상미술
🖌 선을 찾아 선을 그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의 다섯 살 난 둘째 아들은 원고지의 네모 칸에 맞춰 글자를 쓰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펜을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갈겼어요. 그 모습에 영감을 받은 그는 아들이 보인 체념의 몸짓을 흉내 내려 했고 그것이 ‘묘법’의 탄생이 되었답니다.
초기 묘법은 캔버스에 하얗게 밑칠하고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수없이 반복되는 선을 그어가는 작업이었기에 연필 묘법으로 불려요. 그는 자신의 회화를 행위의 무목적성, 반복성이 이뤄낸 결과물이라고 말했죠. 리듬을 타면서 자신을 비우고, 행위 과정에서 연필의 필압으로 밀려난 안료와 유연한 선들은 일종의 수신 과정이었죠. 앞선 복잡한 작품들과 대비되는 듯한 그의 묘법은 사실 이전 작품과 동떨어져 있지만은 않아요. 그가 채택한 백색은 <유전질>의 오방색처럼 당대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차별화하는 방편임과 동시에 한국적 정서를 대변하는 색이었죠.
초기 묘법은 1980년대 작가가 닥종이를 발견하면서 변화를 맞이해요. 서양의 종이와 달리 안료를 흡수해서 일체화하는 한지의 특성이 자연과 하나 되는 민족의 정체성과 닮아있다고 여겼고 그는 이 한지를 이용해 묘법을 이어가요. 젖은 한지가 밀려 나가며 쌓는 응어리들은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하며 입체감을 주었어요. 그는 때때로 한지 위에 쑥과 담배, 먹물 등 자연의 색을 최대한 담아내기도 하며 전통성을 더욱 담아내었죠.
화가 박서보는 90년을 전후하여 연필이 아닌 막대기나 자를 들기 시작해요. 직선 모양의 선들이 표면보다 더욱 튀어나오게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죠. 이전 시기에는 즉흥적인 연필 드로잉을 하거나 지그재그 모양으로 구조화했다면 이제는 철저한 사전 계획에 의해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어요. 이 시기 작품에는 흑색이 자주 사용되는데요? 이는 과거 엥포르멜 시기에 사용하던 암울한 검정과 달리 우주의 기운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먹색으로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깊이감을 강조해요.
✨ 선으로 손을 내밀다
칠순, 인생의 황혼기. 그는 다시 한번 인상 깊은 경험을 하게 되어요. 일본에서 전시를 개최하며 방문한 후쿠시마의 단풍은 그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죠. 그에 따르면 “단풍이 새빨갛게 타서 나를 태울 것처럼 다가왔다”라고 해요. 자연으로부터 받은 강렬한 치유의 경험은 그의 예술 역시도 현대인의 번민과 고통을 치유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그는 자연으로부터 찾아낸 색들을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색에 그 이름을 담아요. 푸른 빛이 도는 색은 ‘숨 색’이라고 말하고, 쨍한 노란 빛깔은 ‘개나리색’이라고 말하는 등 위로와 안식을 제공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드러내죠. 더욱 다채로워진 그의 색상은 이전에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던 색채와 구분되며 색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중심에 둔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한 점의 그림이 위로와 안식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지속되었어요.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며 죽기 전까지도 손을 내려놓지 않았죠. 그가 그려낸 선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임과 한 시대의 사람들을 이어주는 선이기도 해요. 그는 이제 작품으로 남아 사람들을 잇는 선들을 넘나들며 숨 쉬고 있을 겁니다.
💬Editor’s Comment
자신의 작품을 연구하고 끈기 있게 단색화를 알려나가고자 했던 그의 열정은 예술에 대한 헌신과 꿈이 아니고서는 힘들었을 거에요.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그의 노력은 빛을 받았죠. 그가 삶에 바친 태도들은 많은 의미를 보여준다고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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