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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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문학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나도 누군가의 편지 글 하나에 구원을 받기도 하는데.”

  여러분에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가족, 친구, 취미… 여러 존재가 있을 거예요. 하루예술을 찾아주신 분들이니, 문화예술에서 힘을 얻는 분들도 계시겠죠?  오늘은 ‘글’이 삶의 원동력이었던 한 작가에 대한 뮤지컬을 소개하려 해요. 서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는 7-8월 인천, 익산, 부산, 그리고 고양에서 우리를 다시 맞이할, 뮤지컬 <팬레터>입니다.

 

💌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이야기

  <팬레터>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작품에는 편지가 굉장히 중요한 소재로 등장해요. 소설가 ‘김해진’은 아름다운 문장을 짓기로 유명한 인물인데요. 어느 날, 그를 동경하는 작가 지망생 ‘정세훈’이 ‘히카루’라는 이름으로 팬레터를 보내면서 극이 시작됩니다. 해진은 편지에 큰 감동을 받고 이에 의지하게 돼요. 당대 최고의 소설가와 그를 감동시킨 작가 지망생이 주고받는 편지라니. 정말 아름다운 작품일 것 같죠? 맞아요. 대사 하나하나, 가사 하나하나가 문학적이라 음미해보는 재미가 있답니다. 아! 이들과 함께 등장하는 순수예술 추구 문인회 ‘칠인회’도 관전 포인트이니 주목해 주세요.

  작품의 묘미는 이뿐만이 아니에요. 사실 뮤지컬 <팬레터>는 팩션 장르에 속하는데요. 팩션이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친 단어로, 실존 인물이나 실제 있던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더하는 것을 의미하죠. 그래서 우리는 <팬레터>라는 작품 속에서 당대 시대상까지 읽을 수 있답니다. 소설 읽을 때도 시대적 배경을 알고 나면 더 재밌게 느껴지잖아요. 뮤지컬도 마찬가지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럼 우리 함께 1930년대 경성으로 떠나볼까요? 

 

2021-2022 뮤지컬 <팬레터> 포스터 ©콘텐츠제작사Live라이브

 

🖊 ‘김해진’이 소설가 ‘김유정’이라고? ‘이윤’은 천재시인 ‘이상’이라고?

 

소설가 김유정 ©이투데이
시인 이상  ©한국일보

 

  뮤지컬에는 ‘칠인회’라고 불리는 단체가 등장하는데요. ‘칠인회’는 일제 강점기 실존했던 단체, ‘구인회’를 모티브로 해요. ‘구인회’는 1930년대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단체예요. 계급주의 문학1)과 공리주의2) 문학을 배격하고 순수문학을 추구했죠. 문학은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며 존재의 이유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답니다. 그래서 이들은 순수히 문학을 사랑하고 연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작품을 다독다작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어요. 멤버로는 김유정, 이상, 정지용 등이 있었고요.

1) 계급주의 문학은 모순과 불평등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문학을 활용하고자 했어요. 문학은 계급 혁명의 이념을 전달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죠.

2) 공리주의는 모든 일의 목적이나 선악 판단의 기준을 이익과 행복이 증가하는 데에 두는 실리 중심적인 사상을 말해요. 

  그렇다면 극 중 칠인회 회원들도…? 맞아요. 칠인회 회원들도 실존 인물들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이에요. 김해진은 소설가 김유정을, 이윤은 시인 이상을, 김수남은 시인 김기림을 모티브로 했지요. 소설가 이태준과 문학평론가 김환태도 마찬가지고요. 재미만을 추구한다면 스토리를 온전히 만들어 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어요. 픽션이나 판타지처럼 말이죠. 하지만 실존 인물이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거기서만 느낄 수 있는 다른 차원의 감동을 가져요. 누군가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때 눈물이 나는 것처럼요. 때문에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일수록 감정 이입이 쉬워지기도 하죠. 따라서 김유정 작가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수록 해진 선생님의 이야기에 더 공감하고 눈물 흘릴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시인가 대사인가

“산골에는 초목의 내음새까지도 특수하다.”
“더욱이 새로 튼 잎이 한창 퍼드러질 임시하야 바람에 풍기는 그 향취는 일필로 형용하기 어렵다.”
“뻐꾹이도 이 내음새에는 민감인 모양이다. 이때로부터 하나 둘 울기 시작한다.”
“우울한, 그리고 구슬픈 그 울음을 울어대이던 가뜩이나 한적한 마을이 더욱 느러지게 보인다.”

  대사 한 줄 한 줄이 굉장히 아름답죠? 극중에서 세훈이 김해진의 작품을 읽고 감동을 받는 장면인데, 실제로 김유정의 소설 <오월의 산골작이> 의 문장들을 활용한 것이랍니다. 이렇게 뮤지컬 <팬레터>의 대사나 가사에는 1930년 당시 문인들의 실제 작품이 녹아 있어요. 대사일 뿐인데, 마치 문학작품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죠. 

 

<건축무한육면각체>, 이상  ©파이낸셜뉴스
이상의 시에 등장하는 1930년 미쓰코시 백화점  ©조선일보

 

“이번에 발표하신 시에서, 어, 그… 발광어류라는 표현!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자동차를 본 광경이라고 하셨죠?”

  극 중에서 세훈이 이윤을 만나, 그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에요. 실제로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에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하고요. 중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한 번쯤은 보았던 작품이죠? 이상은 당시 동경에 있던 미츠코시 백화점의 천장을 바라보면 마치 사각형이 무한히 겹쳐져 있는 듯하고, 발광어류의 군집 이동이 떠오른다고 표현했어요. 

 

🎭 한국판 지킬앤하이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지킬의 두 인격, 지킬과 하이드 ©OD COMPANY
뮤지컬 <팬레터>에서 세훈의 두 인격, 세훈과 히카루  ©엑스포츠 뉴스

 

  <팬레터>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선스 뮤지컬 중 하나인 <지킬 앤 하이드>가 떠올리실 수도 있겠어요. 작품의 배경도, 인물 구성도, 분위기도 전혀 다른데 왜냐고요? <지킬 앤 하이드>에는 지킬박사가 ‘지킬’로서의 인격, 그리고 ‘하이드’로서의 인격을 가지죠. 지킬박사는 따뜻하고 선량하여 ‘선’을 상징하는 반면, 하이드는 폭력과 살인을 행하는 ‘악’을 상징해요. 마찬가지로 <팬레터>에서는 세훈이 두 가지의 인격을 가집니다. 그러나 ‘세훈’으로서의 자아와 ‘히카루’로서의 자아는 명확한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않아요. 단지 세훈은 ‘해진’ 그 자체에, 히카루는 ‘해진의 글’에 집중할 뿐이지요. 

  이렇게 뚜렷한 선인과 악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듯해요. 실제 인물들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과도 연결되고요. 원래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완벽히 선하지도, 완벽히 악하지도 않은 법이잖아요?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 감동이 두배로, 마치 시 한 편을 읽는 듯한 기분이에요. 아름다운 표현들을 곱씹어보는 재미가 있어요.
  • - 이번 시즌부터 라이브 밴드가 음악을 연주해요. 생생한 음악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연기에서 정적을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관객 입장에서도 배우의 연기에 숨죽여 집중할 수 있게 돼요.
  • - 원고지를 활용한 연출이 정말 멋져요. 바닥에 그려지는 원고지 조명, 그리고 무대 위에 눈처럼 흩뿌려지는 수백 장의 원고지들!

ㅇ요건 쫌 아쉬운데

  • - 무대 전환이 대극장처럼 화려하지는 않아요. 화려하고 웅장한 뮤지컬을 즐기시는 분들은 조금 아쉬울 수 있어요. 

 

💬 Editor’s Comment

  <팬레터>는 아름다운 우리말과 우리 문학 작품을 담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 창작 뮤지컬이에요. 아름다움을 음미함과 동시에, 당시의 역사 속으로 스며들어갈 수 있기도 하죠. “그대의 한 줄로 내가 나날을 버티었소.” 해진이 ‘글’에 구원받고 ‘글’ 때문에 살아갔듯, 우리 역시 우리 각자의 삶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나는 팬레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7월 27일, 에디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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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7-27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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