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사진에 자수를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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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저는 단연코 ‘푸른 바다요!’, ‘아테네요!’라고 외칠 겁니다. 사실 저와 같은 답을 외치신 분들을 모아본다면, 손 잡고 지구촌 한 바퀴를 강강술래 해야 할지도 모르죠. 평화로워 보이는 푸른빛과 흰색의 향연, 장엄함이 물씬 나는 문화유산이 가득한 것을 보면 때로는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머나먼 나라처럼 느껴지는 그리스와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제법 비슷하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그리스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여러 외세 침탈을 겪었고,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어요. 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공산주의 세력과 내전이 벌어지고, 이후에는 군사정권이 들어섰다가 민주주의 정권으로 교체되었답니다. 열강의 다툼부터 민주주의까지, 우리나라와 정말 닮지 않았나요? 
 

🧵사진에 영혼을 수놓다

 서로 똑 닮은 두 나라. 작년에는 그리스와 한국 수료 60주년을 맞이하기도 했어요. 더불어 그리스의 독립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죠. 이를 기념하여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주한그리스대사관에서는 함께 전시회를 개최했는데요. 바로, 3월 25일부터 6월 3일까지 KF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영혼을 수놓은 초상 - 그리스의 의복> 이랍니다.

  그리스 국립역사박물관은 포토그래퍼 반겔리스 키리스(Vangelis Kyris)와 자수 장인 아나톨리 게오르기에프(Anatoli Georgiev)에게 특별한 프로젝트를 의뢰합니다. ‘무엇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두 아티스트는 고심했죠. 그러던 중,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보물, ‘전통 의복’을 발견하고 큰 영감을 받게 됩니다. 키리스는 그리스 헬레니즘1)이 존재했던 지역의 18, 19세기 의복들을 현대인들에게 다시 입히고 그들의 초상을 찍었어요. 게오르기에프는 그 초상을 금속, 견사, 면사를 사용한 자수로 재창조했죠. 이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의 역사, 전통문화가 현대와 만나는 경험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답니다. 3차원을 2차원에 담는 사진과 2차원에 3차원의 입체감을 부여하는 자수의 조합을 통해 탄생한 작품을 보면 자연스레 이 전시회의 주제를 느낄 수 있어요.  작품 속 인물이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면, 과거의 인물과 현재 ‘나’의 영혼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을 하게 되죠. 바로, 영혼을 수놓은 초상들을 통해서 말이에요.

1) 헬레니즘은 ‘그리스와 같은 문화’라는 뜻이에요. 헬레니즘 시대에는 동방과 서방의 문화가 어우러졌고, 개인의 행복을 말하는 철학과 학문으로는 수학, 과학이 발전했답니다!

 

😮다양한 감각을 통해 느끼는 장엄함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깜깜한 어둠 속에서 그 초상들이 빛을 내고 있어요. 마치 무덤 속 역사적 인물들이 고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 말이죠. 넓게 펼쳐진 어둠 속,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두려움과 그 안에 발을 내딛고 싶은 이끌림이 동시에 느껴져요. 무겁게 한 걸음 내딛고 나면, 삼면은 어두워지고 핀 조명을 받고 있는 작품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직 하나의 핀 조명에만 의지해서 빛나는 작품 말이에요. 일반적인 종이가 아닌, 면으로 프린팅 된 사진 위에는 촘촘히 수놓아진 자수가 눈에 띄는데요. 빛을 받는 범위가 줄어들수록 표현도 함께 희미해집니다. 이러한 표현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만 같이 작품에 입체감과 사실감을 부여해줘요. 자연스럽게 옆으로 이동하며 작품을 멍하니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같은 포즈를 취해 몰입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찰칵, 찰칵, 찰-카악, 탁. 그때, 몰입을 깨 버리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스피커에서 셔터 소리가 나오네요. 마침 홀린 듯이 사진을 찍고 있던 카메라를 왠지 모르게 조심스레 내리게 됩니다. 뒤이어 아주 굵은 선을 쥐어뜯는 듯한 소리가 콱- 들리며 몸에 긴장감을 주죠. 엄숙한 분위기의 음악은 작품을 더 이상 낭만적으로 보게 두지 않는데요. 경각심과 현실감을 주는 그 소리는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를 결코 가볍게 보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심장을 울릴 정도로 소리가 크게 들리는 스피커 쪽으로 이동해봅니다. 어디선가 상쾌한 향이 코를 스치고 지나가죠. 자세히 보니 스피커 위에 한 병의 디퓨저가 놓여있네요. 천천히 다가가 향을 맡아봅니다. 산토리니가 보이는 듯한 아쿠아향, 상쾌한 시트러스와 그린 향, 그리고 무겁게 베이스를 잡아주는 발삼2)과도 같은 향이 느껴져요. 상쾌하고 쾌적하게 느껴지는 현재 그리스의 이미지에 그들의 무거운 역사를 한 스푼 얹은 듯합니다. 그리스의 다양한 면모를 이야기하는 이 향은 전시장 전체를 감싸지 않고 드문드문 향을 퍼트리고 있는데요. 마치 ‘직접 가까이 와서 우리의 문화를 하나하나 알아가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이렇게 시각, 청각, 그리고 후각까지,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게끔 합니다. 때문에 전시를 매우 다채롭게 느낄 수 있는데요.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감각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상을 주기 때문이죠. 또 전시 공간 자체가 이러한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되어 있어요. 차분한 공간 속, 초상들은 진중한 태도로 관람객에게 슬쩍 말을 걸어옵니다. 그 사이를 거닐다 보면, 어느새 하나같이 개성 있는 초상들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2) 침엽수에서 분비되는 끈적한 액체로, 살짝 달달하면서도 깊은 숲 향이에요!

 

🤫초상 속에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

  전시장 밖으로 나오면 아티스트의 다른 작업물들도 살펴볼 수 있는 부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초상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함께 볼 수 있죠.

  두 아티스트는 현대의 사람들에게 과거의 모습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세계화된 현대에 맞추어 다인종 모델을 선정했다고 해요. 또,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모델을 구하는 과정의 어려움까지 진솔하게 담겨 있었는데요. 그 시대의 인물과 비슷한 체형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과거에는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체형이 작은 편이었으니까요. 오랜 기간에 걸쳐 어렵게 선정된 모델들은 저마다 자신이 각 의복의 주인인 것처럼 몰입해서 촬영을 이어갔어요. 이렇게 세심한 과정을 거치다 보니 아무래도 작업 기간이 꽤나 긴 편인데요. 키리스는 1년 1개월 동안 100명의 사진을 찍었고, 게오르기에프는 1년 동안 자수를 놓았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니었다면 이들의 꼼꼼한 작업 과정을 알 수 없었겠죠? 초상 하나에 담긴 두 아티스트의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에, 그리고 과정을 차근히 기록한 애정 어린 작업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핀 조명만 사용하여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한 전시 공간! 빨려들어갈 듯한 장엄함을 느낄 수 있어요.

- 시각, 청각, 후각을 동반한 공감각적 체험을 통해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를 다방면으로 느끼게 해줘요!

- 사진에 자수를 새긴 독특하고 색다른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각 지역의 전통 의복 및 자수 방법에 대한 설명이 없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조금 어려울 수 있어요.

 

💬Editor’s Comment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 문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된 문화운동을 뜻해요. 하지만, 정작 그리스인들은 뼈아픈 역사와 함께하면서 이를 경험해보지 못했죠. 어두운 배경에 비친 장엄한 초상과 옷을 담은 초상은 그리스의 역사에 집중하며 그들의 잃어버린 유산을 되돌리는 르네상스를 이루어냈어요. 작가는 과거의 옷 위에 현재의 실을 이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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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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