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우리가 몰랐던 차디찬 겨울의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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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제주’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한라산과 감귤, 돌하르방을 생각하진 않으셨나요? 우리는 흔히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자연의 섬으로 제주를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제주는 차디찬 유배지의 역할을 했어요. 그러나 겨울에도 꽃이 피듯, 유배의 섬 제주에서 조선 최고의 문인화 <세한도>가 탄생했답니다. 17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세한도를 다룬 전시 <세한도, 다시 만난 추사와 제주>를 소개합니다. 

 

❄매서운 추위 속 탄생한 그림

  김정희는 1786년(정조 10년)에 태어나 1856년(철종 7년)에 사망한 시ㆍ서ㆍ화에 능했던 천부적인 학자였습니다. 조선의 명문가 경주 김씨 가문에서 태어나 문과에 합격하여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역임할 만큼 뛰어난 선비였죠. 대사성은 조선시대의 정 3품의 벼슬, 이조참판은 이조에 속한 종 2품의 벼슬로 모두 높은 위치에 있는 관직인데요. 하지만 김정희는 정쟁에 휘말려 정적이었던 안동 김씨의 탄핵으로 무려 8년 동안이나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돼요. 그가 받은 형벌은 유배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위리안치형’이었고요. 위리안치형은 가시울타리로 죄인을 가두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도록 한 벌로, 주로 중죄인에게 내려졌어요. 8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고립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거예요. 더군다나 아내와 친구도 보지 못하고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낸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세한도는 이런 힘든 시기에 그려진, 위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김정희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랍니다.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도중 완성한 작품으로 ‘세한’은 설 전후의 매서운 추위를 뜻합니다. 그는 죄인의 신분이 된 자신을 잊지 않고 변함없이 귀한 책을 보내며 위로해준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어요. 세한도는 추운 겨울에도 푸르른 송백을 소재로, 시련 속에서도 신의를 굳게 지킨 변치 않는 마음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답니다.

  세한도는 거친 종이 위에 메마른 붓질로 사물을 간략하게 그리고, 공간을 비워 쓸쓸한 분위기를 강조했는데요. 원근법이 잘 맞지 않는 등 기교적으로 뛰어난 그림은 아니지만, ‘사의’를 잘 나타낸 그림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문인화는 화가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인데, 사의는 문인화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그림 자체보다 그림에 담긴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즉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과정과 그 감정을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유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담겨있는 마음은 따뜻해

  이후로도 이상적과 김정희의 교류는 쭉 이어졌어요. 이상적은 김정희가 보낸 서화를 청나라 문인들에게 보여주어 감상하게끔 했고, 문인들의 감상 글을 다시 김정희에게 보내 주었어요. 그렇게 세한도는  청나라 문인 16인과 우리나라 문인 4인의 감상 글과 함께 두루마리로 꾸며졌고, 김정희는 이를 읽고 매우 기뻐했다고 하죠. 그의 귀양살이는 4년간 더 이어지긴 했습니다만, 벗들의 따뜻한 마음은 세한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위로가 되었어요.

 

  어렵사리 구한 귀한 책들을 한낱 유배객에게 보내 주는 등 귀양 전이나 후나 똑같이 자신을 대하는 이상적의 마음 씀씀이는 큰 감동이었을 것 같아요. 세한도는 그런 고마운 마음을 나타낸 동시에, 떨어져 있어도 이상적과 김정희의 마음을 이어주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힘든 일이 있을 때도 곁을 지키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을 이야기하자면 김정희와 벗들의 우정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독특하게 작품에 후대의 예술가들이 감상평을 남겼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네요.  

 

💭또 다른 감상을 낳은 작품들

  이번 전시는 세한도와 추사 김정희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세한도와 관련된 자료들, 세한도를 모티브로 삼은 다른 작품들까지 함께 만나볼 수 있어요. 작품에 후대의 예술가들이 감상평을 남겨 꾸몄던 것처럼, 세한도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 역시 또 다른 감상평이 된 듯한데요.

  전시회장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작품은 <세한의 시간>입니다. 이는 제주에 유배된 김정희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과 성찰 과정을 제주도 풍경에 은유적으로 녹여낸 짧은 영상이에요. 장 줄리앙 푸스 감독 또한 고독한 이방인이자 예술가로서 작품에 담긴 김정희의 마음을 헤아리며 ‘세한의 시간’을 제작했어요. 영상을 본 후 본 전시를 보면, 천천히 세한도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배 중이던 김정희가 쓴 편지와 그림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요. 다른 작품들도 함께 감상한다면 김정희와 세한도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될 거예요.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있으니 큰 어려움 없이 전시를 즐길 수 있어요. 전시회장 밖에서는 국립제주박물관이 출판한 세한도 책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답니다.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세한도와 김정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작품과 함께 구성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어요.

- 세한도와 김정희의 유배 시절을 영상화한 작품도 있어 몰입감을 줘요.

- 작품에 대한 영상자료를 통해 쉽게 전시를 이해할 수 있어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전시 주제가 세한도인 만큼, 김정희가 유배를 오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은 다소 부족했어요.

 

💬Editor’s Comment

  이번 전시는 세한도가 178년 만에 고향인 제주로 돌아오게 되어 큰 의미를 갖습니다. 사람이 아닌 작품이 오랜만에 다시 고향을 찾아온다는 것도 인상적인데요.  저는 추사관에 다녀와 세한도를 본 적이 있지만, 실제 그림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더 신기하고 흥미로웠어요. 또한 잘 몰랐던 역사를 작품을 통해 들여다보면서 단순히 책을 읽었을 때보다 훨씬 기억에 잘 남기도 했고요. 전체적으로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역사적 인물의 여담을 재미있게 알아갈 수 있었던 전시였습니다. <세한도, 다시 만난 추사와 제주> 전시는 5월 29일까지 진행돼요. 그동안 몰랐던 제주도의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세한도를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척박해 보이지만 분명 그 속에서 따뜻함 역시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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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5-19

키워드

#미술 #세한도 #제주도 #추사 #추사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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