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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패니즈 드림, 파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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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파친코는 「」 로, 드라마 파친코는 <>로 표기합니다.

 

  책을 구매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책 냄새가 좋아 발품을 팔아 서점에 가기도 하고, 처음 보는 책과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중고 서점에 갈 수도 있겠죠. 직접 서점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아무래도 편하고 빠른 것으로는 온라인 서점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재고가 있는지 걱정할 필요도 없고, 요즘에는 종이로 된 실물 책보다 전자책을 더 선호하시는 분도 많이 계실 테고요. 그만큼 현대인의 책 소비에는 온라인 서점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당연히 있으리라 예상한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쩐지 기운 빠지지 않을까요?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데 이 안타까운 가정이 현실이 되었어요. 이민진(Min Jin Lee, 1968~) 작가의 장편소설 「파친코」가 온라인 판매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란을 일으키고 있거든요. 이민진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한국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 기업 변호사로 근무했다는 남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로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글 쓰기를 시작하게 된 그는 2004년부터 단편소설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2008년에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을 발표했죠. 그는 예일대학교 역사학과에서도 수학했는데, 이때 일본에서 온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재일교포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훗날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을 따라 약 4년간 일본에서 거주하게 된 그는 한국계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경험을 다수 겪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그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는데요. 그는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본격적으로 재일교포와 그 주변 인물들을 만나 수많은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렇게 2017년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파친코」가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파친코」 1권 표지 ©문학사상사
「파친코」를 집필한 이민진 작가 ©중앙일보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동포들의 생활을 담은 작품이에요. 주인공 선자의 부모부터 선자의 손자들에 이르기까지, 무려 4대에 걸친 이야기를 장대하면서도 촘촘하게 풀어낸 대하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은 재일교포가 겪는 차별, 한계 등을 그려내 세계의 주목을 받았어요. 뉴욕타임스는 미국 ‘올해의 책(National Book Award)’ 후보에 오른 「파친코」를 언급하며 ‘자이니치1)’를 사회적인 이슈로서 다루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파친코」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에는 애플TV+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애플TV+가 지난해 한국에 상륙하며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져있었는데요. 영화 <미나리>와 같이 한국인의 역사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미국 시리즈라는 점을 비롯해, 배우 윤여정과 이민호가 동시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거든요. 원작 「파친코」 역시 드라마 공개 이후 높은 관심을 받으며 교보문고, 예스24를 비롯한 온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했고요. 그런데 돌연 주요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에 13일 오전 10시 이후 온라인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온 거예요! 한창 잘 나가고 있는데 무슨 일인가 싶으시겠죠?  「파친코」의 한국어 판권은 출판사 문학사상사에서 가지고 있는데요. 판권 계약일은 21일까지인데, 판권을 재연장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받지 못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해왔어요.

1)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즉 재일교포를 일본어로 이르는 말이에요.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PACHINKO)> 포스터 ©애플TV+

👀전 세계가 우릴 주목해!

  물론 하나의 책이 영화화되거나, 드라마화되었을 때 역주행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까지 「파친코」처럼 ‘오프라인 재고 다 나갔음, 온라인은 판매 중단! 언제 재고 들어올지 모름!’하고 품귀 현상을 빚은 적은 없었거든요. 도대체 「파친코」의 어떤 점이 이토록 많은 이들을 매료시킨 걸까요?

  먼저 원작 「파친코」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관점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한국, 미국, 일본. 일생에 걸쳐 세  국가를 터전으로 삼았던 이민진 작가는 일본에서 생활하게 된 이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데요. 바로 한국계인 자신의 핏줄이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다르게 작용한다는 점이에요. 그의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그가 바라본 재미교포들은 성공에 대한 높은 열망을 가지고 아메리칸드림을 쫓아 이를 실현해나가는 이들이었어요. 하지만 일본에서 만난 재일교포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듯 경제적 안정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었고요. 이민진 작가 역시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계라는 이유로 ‘당신네 한국인들은~’와 같은 말로 시작되는 차별적 언행을 경험했다고 전했죠. 재일교포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기회는 몇 없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파친코였어요. 작가는 일본 거리에 심심치 않게 보이는 파친코 업장을 통해 파친코 업자라는 직업을 둘러싼 배경, 재일교포의 삶까지 조명했는데요. 현실에서 명백하게 존재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가 집중하지 않았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을 관계성이죠.

 

파친코 업장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또,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의 화제성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출시되기 전부터 배우들의 인터뷰와 해외 반응 등 여러 이슈가 뜨거웠다니까요. 배우 윤여정은 몇십여 년 만에 오디션을 봤다며 생경한 감상을 담은 인터뷰를 전해왔는데요. 때문에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있어 미국과 한국의 관행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이 대두되기도 했죠. 우리나라에서 오디션이란 주로 신인 배우가 치러야 할 것으로 여겨지고, 경력을 가진 배우에게 대본이 들어오면 배우가 작품에 함께 할지 말지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에요. 반면 미국에서는 아무리 오랜 경력을 지닌 배우라 할지라도 작품에 적합한지 알아보기 위한 오디션을 관례처럼 치르고요.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PACHINKO)> 스틸컷 ©애플TV+

  또 다른 지점의 이슈도 존재해요. <파친코> 시리즈가 발표된 이후, 일본 대중으로부터 실제 역사와 다르다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애플 홈페이지와 출연 배우의 공식 SNS까지 찾아가 역사 왜곡 주장을 이어가기도 했고요. 껄끄러운 한일 관계가 다시금 주목 받는 지금, 원작을 쓴 이민진 작가의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는 “한 나라의 힘은 과거에 대해 투명하게 말할 수 있을 때 드러난다”라고 이야기했어요. 과거의 어떤 피해를 외면하지 않고, 투명하게 말할 수 있도록 회복을 돕는 일에 전 세계가 한 마음 한 뜻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Editor’s Comment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소설 「파친코」의 유명한 구절입니다. 저도 이 문장을 어디선가 접해 기억하고 있었는데요. 「파친코」의 구절이라는 것, 그리고 이 소설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에 대해 알게 된 후에는 왠지 울컥하더라고요. 담담한 문장을 통해 오히려 굳센 기세를 확인한 것 같았거든요. 현재에 이르러서까지, 먼 훗날 역사로 남을 일은 개인의 삶에 개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역사에 의해 망쳐지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ㅇ참고자료

  • - 문학사상사 홈페이지
  • - 경향신문(김진호). [김진호의 세계읽기] 재미동포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힘.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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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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