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순을 틔운 뿌리 깊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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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is the best’라는 말이 있어요. 누군가는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도 하고요. 아무리 최신의 것이 좋아 보여도, 아무리 무언가에 장식을 더해 이리저리 꾸며보아도, 결국에는 고전·기본을 찾게 된다는 것 말이에요. 이 말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진리는 아니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고전들을 생각하면 좋은 이유가 있겠지 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요. 정작 왜 좋은지는 모르고 넘어가 버리면 조금 찜찜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이들은 고전이 왜 좋은지, 뿌리가 왜 중요한지 몸소 보여준답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발자취를 따라
파르티타. 기악 작품을 뜻하는 음악 용어예요. 기악 작품 중에서도 16세기 말에서 18세기 중기까지, 약 150여 년간 바로크 시대에 쓰였던 음악 형식을 이야기한답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가 6곡의 하프시코드1) 파르티타와 3곡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를 작곡하며 예술적으로 완성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죠.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것에는 파르티타와 같이 하나의 음악 형식을 크게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주된 이유로 꼽을 수 있는데요. 시대를 앞서 나간 바흐, 그리고 그런 그를 본받고자 하는 피아노 듀오가 있습니다. 바로 피아니스트 김희재와 최현아의 단합으로 결성된 ‘피아노 듀오 파르티타’죠.
1) 하프시코드는 14세기 이탈리아 혹은 벨기에의 플랑드르 지역에서 고안된 건반악기예요. 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독주 및 합주 악기랍니다. 피아노보다 가볍고 금속적인 소리가 나요!

피아니스트 김희재는 반세기의 역사와 권위를 가진 영국의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 및 오케스트라 특별상을 수상했어요. 부산예술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교육기관을 졸업한 후에는 독일의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까지 수석으로 석사과정을 졸업했고요. 뿐만 아니라, 음대 개교 이래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최고연주자 과정에 입학·졸업하기도 한 그는 귀국 이후 후학 양성에 힘을 쓰면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청중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화하는 피아니스트”라는 설명이 쓰여 있어요. 자신의 연주에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는 마음으로 대화하듯 연주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피아니스트 최현아 역시 서울예술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높은 권위를 가진 국내 교육기관을 거쳐 독일 하노버 국립음악연극미디어대학교의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했어요. 지난 2015년과 2017년에는 각각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개최되는 국제콩쿠르로부터 심사위원 초청을 받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도전은 비단 솔리스트의 영역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베를린의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악대학교에서 예술가곡2) 전공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실내악3)의 영역까지 폭넓게 탐구했거든요. 대중들로 하여금 피아노라는 한 악기 안에서도 두루 다채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하는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겠죠.
2) 예술가곡은 성악곡 중 하나인 ‘가곡’과 같은 말로, 문학작품을 음악에 붙인 것을 말해요.
3) 실내악은 실내, 혹은 작은 규모의 연주장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뜻해요. 기악을 중심으로 5명에서 10명 안팎으로 편성하는데, 일반적으로는 기악 연주만을 의미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독창과 같이 사람의 목소리가 추가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니까! 두 배 멋있다!
저마다 훌륭한 이력을 지닌 두 사람이 만나 듀오를 결성했다니 어떤 연주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아마 어떤 분은 궁금해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한 대의 피아노로 같은 건반 위에서 두 사람이 네 개의 손으로 연주하는 것일까? 아니면 각각 하나씩 두 대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일까? 피아노를 듀오로 연주한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 왜 피아노라는 한 종류의 악기를 굳이 두 사람이 연주하는지에 대해서요.
사실 듀오 공연은 채택하는 합주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매력 포인트도 다양하다는 것을 장점으로 들 수 있는데요. 전자의 경우 하나의 피아노를 공유하기 때문에 두 연주자의 케미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이 흥미롭지만, 동시에 역시 하나의 피아노를 공유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칠 수 있는 음역대가 넓지 못하다는 한계점이 있어요. 후자의 경우에는 소리는 더욱 풍성하게, 음역대 역시 동시에 다채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요. 피아노 듀오 파르티타의 경우 두 대의 피아노를 사용하여 관객에게 바흐의 웅장하고 위엄 있는 음악을 전달하는 데에 힘쓰고자 합니다.


어떤 곡들을 연주하나요?
이렇게 큰 포부를 가지고 열린 피아노 듀오 파르티타의 창단 연주회! 이번 공연에서는 총 3개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요. 첫 번째는 기본에 충실하게, 바흐의 ‘마태수난곡’으로 시작합니다. 그 이후 레오 스미트(Leo Smit, 1900~1943)의 ‘디베르티멘토’,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의 ‘봄의 제전’으로 이어지죠.
세속 음악보다 교회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바흐는 궁정악장을 사임하고 독일의 라이프치히로 이주하게 됩니다. 1723년부터 1729년까지, 라이프치히에 살게 된 이후 6년간 그의 교회 성악곡 중 대다수가 작곡되었는데요. 그중 ‘마태수난곡’은 신약성경 중 마태복음의 26장부터 27장까지를 그리고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다루는 만큼 극적이고 엄숙한 분위기가 특징이랍니다. ‘마태수난곡’은 여러 곡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번 연주회에서는 가장 유명한 5곡을 뽑아 피아노 듀오 그렉 앤더슨(Greg Anderson, 1981~)과 조이 로(Elizabeth Joy Roe, 1981~)가 편곡한 버전으로 연주할 예정이에요.

바흐의 음악은 이후 여러 갈래의 음악 형식으로 발전하는데요. 그중 하나인 ‘디베르티멘토’는 기분전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음악 형식을 의미합니다. 뜻처럼 가볍고 쾌활한 느낌을 가진 곡으로 귀족들의 오락을 위해 작곡되었어요. 네덜란드의 작곡가인 레오 스미트는 바흐의 곡을 차용했지만 엄중하고 묵직한 느낌을 덜어내며 ‘디베르티멘토’ 형식으로 표현했죠. 날쌘 리듬과 경쾌하고 가벼운 멜로디들은 게임 혹은 애니메이션의 배경음악을 연상하게 만들기도 해요.

20세기에 이르러, ‘디베르티멘토’는 그 의미가 점점 확장되었어요.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에 의해 발레모음곡에까지 ‘디베르티멘토’라는 이름이 활용되기도 했죠. 이번 공연에서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하는데요. ‘이단아’, ‘혁신가’라는 별칭이 붙은 만큼 파격적이고 강렬한, 어쩌면 투박하리만치 세찬 피아노의 일면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바로 이전의 ‘디베르티멘토’에서 가볍고 통통 튀는 소리를 들려주었던 것과 똑같은 악기인데, 어쩜 이렇게 한순간 묵직하고 격렬한 음들을 자아내는 악기로 돌변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에요.

💬Editor’s Comment
바흐에서 스미트를 거쳐 스트라빈스키에 이르기까지. 그들 사이의 관계성에는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변화만 존재할 뿐,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세 가지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 공연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피아노 듀오 파르티타가 허영심 없이, 그저 담담하게 뿌리를 지켜나가고자 한다는 점이에요. 뿌리가 단단해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오래도록 회자될 새로운 고전이 탄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고전과 새로움은 양극단에 서 있는 존재 같지만 사실 서로 이어져있죠. 오늘날 고전으로 불리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개성 있는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고, 음악계의 이단아·새로운 시대의 음악가로 주목받았던 스트라빈스키는 고전과 전통을 매우 중요시했던 음악가였어요.‘고전이 최고야, 돌고 돌아 결국 순정이야’와 같은 말들은 언뜻 고전 외의 다른 가능성들을 차단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두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듀오 파르티타를 결성함으로써 고전을 소중히 하는 마음, 또 이를 통해 고전 역시 새로운 시도에서 파생되었음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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