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발연기’를 찾아서, 뮤지컬 속 탭댄스
- 2,297
- 0
- 글주소
우리는 흔히 배우들이 형편없는 연기를 선보일 때 ‘발연기를 한다’고 표현하죠. 조악한 그림을 ‘발로 그린 그림’이라고 평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건 진정한 ‘발연기’를 몰라서 하는 말일 거예요. 정해진 박자를 놓치지 않는 현란한 발 놀음으로 흥을 돋우는, ‘탭댄스’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반짝이는 조명 아래 펼쳐지는 화려한 안무와 흥겨운 리듬은 ‘탭’소리에 맞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충분하죠. 탭댄스는 뮤지컬 무대 위에도 등장합니다. 현장감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뮤지컬답게, 탭댄스는 뮤지컬 무대 위에서 더 활력을 띠는 것 같은데요. 탭댄스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실어 뮤지컬 무대에 섰을까요?

탭을 두드리며 추는 탭댄스
탭댄스는 신발 밑창에 탭(tap)이라는 금속을 붙인 구두를 신고 추는 춤을 뜻합니다. 탭을 두드려 타악기처럼 소리를 내는 게 특징인데요. 신발 밑에 나무를 대고 마룻바닥을 두드리는 영국의 ‘클록댄스’와 아일랜드의 ‘지그댄스’ 등 유럽의 민속춤에서 비롯되었어요. 여기에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흑인 토속의 리듬이 어우러져 19세기 미국에서 탄생했죠.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인 1920~30년대에 소개되었는데요. 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이 대중음악과 사교춤을 탄압하면서 잠시 쇠퇴했다가, 1990년대 들어 뮤지컬의 성장과 함께 대중의 관심을 다시 받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탭댄스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인, 리듬 탭댄스(리듬 탭)와 시어터 탭댄스(시어터 탭)로 분류됩니다. ‘리듬 탭’은 복잡한 리듬 패턴을 바탕으로 발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은 편이예요. 리듬 탭을 추는 댄서를 ‘타악기 뮤지션’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죠. 반면 ‘시어터 탭’은 ‘브로드웨이 탭댄스’라고 불릴 정도로 뮤지컬에 최적화된 쇼댄스인데요. 리듬 탭과는 달리 전체적인 안무와 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덜 복잡한 리듬으로 구성됩니다.

탭댄스가 등장하는 뮤지컬
탭댄스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뮤지컬 작품으로는,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33년에 영화로 먼저 만들어진 후, 1980년에 뮤지컬로 제작되었는데요. 우리나라엔 1996년 호암아트홀에서 초연되었어요. 줄거리는 ‘프리티레이디(pretty lady)' 라는 대형 뮤지컬 제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공연 히트메이커인 ‘줄리안 마쉬'의 뮤지컬 제작 과정과 가난한 코러스걸 ‘페기 소여'가 배우로 성장해가는 과정과 사랑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이 작품이 처음 만들어졌던 1930년대는 ‘대공황’시기로 모두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죠. 때문에 관객은 성공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 ‘줄리안 마쉬’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대공황이 지나간 1980년대에는 ‘페기 소여’의 신데렐라 스토리와 로맨스가 더 각광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작품도 이 부분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배우들이 탭댄스를 추는 장면들이 다른 작품에 비해 많이 등장합니다. 오프닝에서부터 탭댄스의 군무가 일사불란하게 펼쳐지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죠.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탭댄스는 여주인공 페기소여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역할도 하는데요. 뮤지컬 초반부에서 페기는 소박한 모습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탭댄스를 추고요. 후반부에서는 성공한 배우가 되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앙상블들과 함께 여유가 묻어나는 화려한 탭댄스를 선보이죠. 페기소여가 그랜드피아노 위에서 솔로 탭댄스 추는 장면은 초연 이후 새로 추가된 장면이기도 합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탭댄스 구간이 워낙 많기 때문에, 배우들은 본 공연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탭 트레이닝’ 기간을 잡아 탭댄스를 집중 연습했다고 해요.

탭댄스가 등장하는 국내 창작 뮤지컬
우리나라 작품에도 탭댄스를 볼 수 있는 뮤지컬 작품이 있어요. 바로, <로기수>입니다. 이 작품은 2018년 영화 <스윙키즈>로도 제작되었죠. <로기수>는 국내 창작 뮤지컬로 2015년, 대학로에서 초연했어요. 이 작품은 <미스 사이공>처럼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독일의 사진작가 ‘베르너 비숍'이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북한군 포로들이 가면을 쓴 채로 춤을 추는 모습을 촬영한 적이 있어요. 이 사진을 본 김신후 작가가 상상을 더해 춤에 빠진 북한군 포로 소년 ‘로기수'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어요. 작품의 내용은 이념 전쟁이 극에 달해있던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시작하는데요. 이곳에 붙잡혀온 소년 공산포로 ‘로기수’가 미국 흑인 장교가 추는 탭댄스에 마음을 뺏기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시대상에 맞게 50년대 미국 팝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넘버와 탭댄스가 펼쳐지며 매력적인 서사를 뒷받침하죠. 특히, 이 작품에서 미국 장교인 ‘프랜'과 북한 포로 소년인 ’로기수'가 잼(Jam)을 하는 장면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 장면에서 '프랜'이 '로기수'의 천부적인 탭댄스의 재능을 알아보게 되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둘이 서로 주고받는 탭댄스는, 전쟁이라는 안타까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이뤄지는 화해와 교감을 상징합니다. ‘탭댄스’의 탭 소리와 흥겨움으로 전쟁의 긴장감과 희망을 동시에 표현해 낼 수 있었죠. 또한, 확실히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이기도 하고요. 우리에게 보는 재미는 더해졌지만, 탭댄스가 극의 중심 소재로 등장하다 보니 이를 소화해내기 위해 배우들은 피나는 연습을 거듭했을 겁니다.


‘탁탁-’하고 청명하게 울리는 탭 소리에 흥겨운 넘버, 배우들의 연기까지 곁들어진 탭댄스 뮤지컬은, 그야말로 최상의 ‘발연기’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다고 정말 ‘발’로만 연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박자에 맞춰 자유로우면서도 절도 있는 팔의 안무가 곁들여지거든요. 웃음을 머금은 표정 연기까지 더해져, 이로써 경쾌한 탭댄스 무드가 완성됩니다. 가끔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있으신가요? 내가 마치 꼬깃꼬깃한 빨래처럼 구겨진 것 같은 느낌말이에요. 이럴 때, 탭댄스가 있는 뮤지컬을 추천해요. 탭 댄서들의 탭 소리가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게 여러분의 마음을 다듬이질 해 줄 겁니다.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