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만 주인공 하라는 법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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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7일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공연을 중단한 지 1년 6개월 만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공연을 재개했어요. 오랜만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전용 극장인 허 마제스티 극장(Her Majesty's Theatre)은 관객들로 북적이고, 공연을 향한 객석의 설렘이 가득했어요. 더군다나 이날 공연은 더욱 특별했는데요! 최초의 흑인 크리스틴이 탄생한 날이기 때문이죠.
🌟최초의 흑인 크리스틴 탄생
1986년 초연 이후 34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역사상 최초로, 주인공 크리스틴 역에 흑인 배우가 캐스팅되었어요. 그 주인공은 바로 루시 세인트루이스(Lucy Saintlouis)예요! 지난 2016년 브로드웨이에서 필리핀계 미국인을 크리스틴 역으로 캐스팅하며 첫 유색인종 크리스틴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흑인 배우가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는 경우는 세인트루이스가 처음이에요. 최근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상황 속, 뮤지컬 분야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에서 흑인 배우를 주인공에 캐스팅했으니 그 화제성은 어마어마했어요!
👀NEW 크리스틴은 누구?

세인트루이스는 2012년 웨스트엔드에 데뷔했어요. 데뷔 당시만 해도, <라이언 킹(The Lion King)>의 암사자 ‘날라'나 <드림걸스(Dreamgirls)>, <컬러피플(Color People)> 등의 흑인 캐릭터 정도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배역이라 생각했다는데요. 모두 훌륭한 뮤지컬이지만, 피부색 때문에 배역이 제한되는 상황에 대해 자신도 고민이 많았다고 해요. 그러나 그녀는 한계를 두지 않고 실력을 보여주기 위한 무대를 계속하죠. 특히, 2015년 뮤지컬 <모타운(Motown: The Musical)>의 초연 당시 다이애나 로스 역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는데요. 뮤지컬 <모타운>은 흑인이 설립한 미국 최초의 음반 회사로 성공을 거둔 베리 고디 (Berry Gordy, 1929~)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60, 70년대를 풍미한 음악들로 웨스트엔드에서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에요. 이렇게 여러 작품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온 그는 2019년 영국 국립오페라의 <라만차의 사나이(Man of La Mancha)>에서 안토니아 역으로 출연하면서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덕분에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 역으로 캐스팅되며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는 내년 2월 예정된 콘서트 버전의 뮤지컬 <기네비어(Guinevere)>에서 기네비어 왕비로도 캐스팅된 상태예요!
그는 현지 인터뷰에서 이번 캐스팅에 대한 뜻깊은 소감을 전했는데요. “어릴 적 오페라의 유령 넘버를 처음 듣고 난 순간부터 이 작품과 사랑에 빠졌다. 훗날 내가 크리스틴을 연기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른 유색 인종 여배우들에게 문을 열어주게 되어 특별하다”라고 말이죠. “흑인 여성이 아름다움, 힘, 우아함을 보여주면서 두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역할을 맡긴 어려웠다는 점에서 크리스틴 역할은 의미가 크다”라면서 이번 캐스팅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했어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궁금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의 추리작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 1868~1927)가 1910년에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1948~)가 곡을 써서 완성했어요. 1986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 후 전 세계 39개국 188개 도시에서 17가지 언어로 공연되었으며, 1억 4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세계적인 고전 작품이에요. 1925년 영화로 먼저 각색되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자, 뮤지컬,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장르로 재구성되었어요. 그중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불리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죠.
<오페라의 유령>은 작가가 파리 오페라 극장의 구조와 지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인 만큼, 오페라 극장을 배경으로 하죠. 19세기 후반 신인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은 비밀스러운 음악의 천사로부터 수업을 받은 후, 프리마돈나로 성장하게 돼요. 그 천사의 정체는 극장 지하에 사는 오페라의 유령이죠. 천재적인 재능이 있으나, 흉측한 얼굴을 한 유령은 극장에 숨어 살며 극장을 조종하죠.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갈구하지만, 크리스틴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인 라울이 있었어요. 이에 분노한 유령은 결국 크리스틴을 납치하게 되는데요. 과연 크리스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논하면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죠. 그는 뮤지컬 음악의 거장이라 불리는데요. 대표작으로 <캣츠(Cats, 1981)>, <에비타(Evita, 1976)>, <스쿨 오브 록(School of Rock, 2015) 등이 있어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파이프 오르간을 활용해 작품의 웅장함과 김장감을 더해준 ‘The Phantom of the Opera’가 큰 사랑을 받았어요. 이 곡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모르는 이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명곡으로 인정받은 곡이죠.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colorblind casting)이란 영화나 드라마, 공연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을 캐스팅할 때 인종, 민족, 출신 국가에 제한을 두지 않고 캐스팅하는 것을 말해요. 최근 예술계에 불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 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요.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은 화이트 워싱(Whitewashing), 블랙페이스(blackface) 논란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예술계의 인종 비하 논란은 오래된 아픔인데요. 이 논란이 문제로 지적되기 시작한 건 1830년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에서부터예요. 당시 이 쇼는 백인 배우가 흑인 역할을 맡아, 얼굴을 검게 칠하고, 입술을 두껍게 그린 후 과장된 연기를 선보였는데요. 큰 인기를 얻으면서,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시켰다는 비난을 받아요. 그리고 이러한 블랙페이스는 1960년 흑인 인권 운동이 일어나면서 금기시되었어요.
1989년 <미스 사이공(Miss Saigon)> 초연 당시, 백인 배우가 동양인 캐릭터를 맡았는데, 보조도구를 활용하여 눈을 양옆으로 찢어져 보이게 만들었어요. 동양인은 눈이 찢어졌다는 비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관객들에게 선보인 것인데요. 이 외에도 타이 왕국을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왕과 나(The King and I)>와 중남미계 이민자들의 이야기인 뮤지컬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에서도 유색인종 캐릭터를 모두 백인으로 캐스팅해서 논란이 됐어요. 이렇게 공연계는 암묵적인 전통으로 주인공도 백인, 유색인종도 백인이 연기하는 경우가 보편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백인들은 유색인종의 특징을 딴 분장을 했고 이것이 인종차별적 행동으로 논란이 되어왔죠. 화이트 워싱은 이렇게 유색 인종 캐릭터를 백인이 연기하는 공연계 관습을 꼬집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에요.
백인 위주의 캐스팅은 공연계의 나쁜 관습으로 여겨지며,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유색인종이 무대에 오를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공연계 현실이에요. 대다수의 작품이 기획 초기부터, 캐릭터를 백인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고 유색 인종 배우에게 기회를 제공하고자, 백인 캐릭터라도 유색인종을 캐스팅하는 시도(컬러 블라인드 캐스팅)가 일어나고 있어요!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 올바름과 함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죠.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을 실천한 작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이 확산되는추세예요. 특히 뉴욕 브로드웨이는 전통 있는 작품들에서 적극적으로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을 실천하며 공연계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데요. 2008년 뮤지컬 <위키드(Wicked)>의 여주인공 엘파바, 2014년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2015년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장발장 등의 역할을 흑인이 맡았어요. 이러한 브로드웨이의 움직임에 따라,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도 2016년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Harry Potter and the Cursed Child)>에서 헤르미온느 역에 흑인을 캐스팅해 화제가 되었죠.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은 공연계를 넘어 드라마, 영화로 확대되고 있어요.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브리저튼(Bridgerton)>에서도 주인공 캐릭터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해서 화제가 되었는데요. <브리저튼>은 리아 퀸(Julia Quinn)의 <브리저튼 시리즈>의 첫째 권인 『공작과 나(The Duke and I)를 드라마화한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영국 19세기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파란 눈이 매력적인 백인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죠. 그러나 드라마 제작진은 배우 채용에 인종적 기준을 두지 않고, 남자주인공과 영국 여왕 캐릭터에 흑인 배우를 채용하는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을 시도했어요. 캐스팅 당시에는 원작을 무시했다며 논란이 되었으나, 공개 후에는 우려와 달리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흑인이 주인공 하면 원작이 훼손된다?
변화와 도전에는 늘 우려의 시선이 따라요.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 역시, 긍정적인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특히, 원작에 대한 훼손이라는 부정적 시선과 역사 왜곡, 캐릭터와의 이질감 등이 언급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흑인 여배우 노마 드메즈웨니(Noma Dumezweni, 1969~)는 웨스트엔드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의 헤르미온느 역에 캐스팅되었을 당시, 기존 캐릭터와 다르다며 팬들에게 온라인상에서 몰매를 맞은 사건이 있어요. 당시 그를 향한 비난이 지속되자, 원작자 조앤 K 롤링((Joan K. Rowling, 1965~)은 “공식 설정은 갈색 눈, 곱슬머리, 영리함이었지, 헤르미온느를 백인으로 특정한 적은 없다”라는 의견을 전하며 사건을 진정시켰죠.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원작이 훼손되고, 역사가 무시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어요. 2017년 미국에서 연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캐스팅 당시 ‘닉’ 역할에 흑인 배우를 쓰려고 했으나, 원작자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1928~2016) 재단 측의 반대로 무산되는 사례가 있었어요. 이는 작가 에드워드 올비가 생전에 자신의 작품 속 캐릭터가 지닌 특성들, 성별, 나이까지도 의미가 있다며 확고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에서인데요. 이렇게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작품 속 인물의 묘사, 인종, 출신이 의도가 있다면,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이 작품과 작가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전해지고 있죠.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작품도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원작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의견의 대립,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컬러 블라인드를 넘어, 젠더 프리로!
이제 공연계는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을 넘어, 성평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어요. 배우의 성별과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젠더 프리(gender-free)’(혹은 ‘젠더 블라인드(Gender-blind)’), 기존의 성을 뒤바꾸는 ‘젠더 벤딩(gender-bending)’ 캐스팅이 등장한 것인데요. 2015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에서 남성들만 맡아 왔던 헤롯 왕 역할을 여성 배우가 맡으면서부터 시작되었어요. 게다가 2018년 미투 운동이 확산하면서, 공연계의 남성 중심적 사고가 변화하기 시작해요. 그 영향으로 젠더 블라인드가 자연스럽게 반영되는 상황이죠. 대표적으로 <오펀스(Orphans)>, <햄릿(Hamlet)> 등 다수의 작품에서 여성 배우가 남성 역할에 캐스팅되어, 여성 배우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어요.
국내에서는 배우 차지연(1982~)이 <아마데우스(Amadeus)>, <더 데빌(Musical THE DEVIL))>, <광화문연가> 등에서 남자 캐릭터를 연기하거나, 성별이 중요하지 않은 캐릭터를 맡으면서 젠더 프리 배우로 주목받고 있죠. 이러한 그의 작품 선택에 대해, 그는 배우로서는 큰 행운이지만 관객들이 아직 성별에 대한 편견이 있기에, 선을 잘 지키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어요.
💬Editor’s Comment
국내 공연계에서도 유색인종 비하 장면과 블랙페이스 논란이 있었는데요.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낸 창작 뮤지컬 <빨래>는 한국 배우들이 외국인 노동자의 서툰 발음을 연기해서 비하 논란이 있었어요. 그리고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와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에서는 ‘블랙페이스’ 분장이라는 지적을 받아, 해당 분장을 바꾸었어요. 외국인 역할에 외국인 배우를 쓰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표현 방식에서 좀 더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해요. 블랙페이스가 백인만 조심해야 할 문제가 아닌, 전 세계가 모두 타민족을 위한 배려와 인권 평등을 위해 주의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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