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의상은 왜 점점 짧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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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주위를 한 번 둘러볼까요. 여성분들의 치마 길이가 어떤가요? ‘헴라인 지수’라는 것이 있죠. 경제가 호황일 때 여성들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불황기일 때는 치마 길이가 길어진다고 해요. 1920년대 경제학자인 조지테일러가 주장한 이론입니다. 발레에서도 치마 길이로 알 수 있는 것이 있어요. 바로, 발레 역사의 흐름입니다. 치마 의상의 길이만으로도 고전발레, 낭만발레 등의 사조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해요. 발레리나들의 무대 의상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께 접시처럼 펼쳐지는 짧은 튀튀가 먼저 떠오르시죠? 하지만 한때, 발레리나들은 긴 치마를 입었답니다.
바닥을 쓸고 다닐 만큼 긴 의상
발레가 ‘궁정 무용’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 같아요. 초기의 궁정 발레는 사교용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테크닉보다는 동선과 패턴이 중요했어요. 의상도 이런 목적에 맞춰졌죠. 당시 발레 무용수들은 대다수가 바닥을 쓸고 다닐 만큼 길이가 긴 의상을 입었습니다. 무용수들의 발을 꽁꽁 숨길 수밖에 없었던 그 긴 의상엔 화려하게 장식이 더해졌어요. 오버스커트를 덧입기도 했고요. 무용수들의 옷이라 하기엔 정말 과해 보이죠? 궁정 스타일을 반영하듯 무거운 가면과 가발을 착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복잡하고 무거운 의상은 무용수들의 동작에 장애가 될 뿐이었지만, 이러한 흐름은 18세기 초까지 이어졌어요.

발목을 드러낸 로맨틱 튀튀
그러다가 처음으로 무대에서 발목을 드러내는 무용수가 등장합니다! 엄격한 금기에 도전한 그는 바로 프랑스 출신의 발레리나, ‘마리 카마르고’였습니다. 카마르고는 긴 치마를 과감히 발목 위의 길이로 잘랐어요. 그 덕에 많은 여성 무용수들은 무겁고 치렁치렁한 의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죠. 그 결과, 남성 무용수들의 전유물이었던 화려한 점프와 발 동작을 여성 무용수들도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긴 치마에 가려 발을 사용할 수 없었던 여성 무용수들이 드디어, 카마르고의 치마를 입고 마음껏 뛸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러한 변화는 남성 중심으로 발전해 온 발레의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었어요.
한번 짧아진 치마의 길이는 계속해서 짧아지더니, 낭만주의 시대에는 발목과 종아리의 일부분이 드러나는 길이의 ‘로맨틱 튀튀(tutu)’가 탄생합니다. 로맨틱 튀튀는 낭만 발레의 상징 작품인, ‘라 실피드’에서 주인공 마리 탈리오니가 처음 입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튀튀는 디자이너 유진 레미(Eugene Lemy)가 낭만 발레의 특징인 ‘공기처럼 나풀거리는 몸짓’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그 길이와 풍성함으로 몸의 선을 감춘 듯하면서도, 발의 움직임에 따라 흐드러지는 튀튀가 신비감을 더해줍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무용수가 온몸을 사용해 동작할 때, 의상으로 인한 제약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발레 의상을 선보이게 되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던 ‘라 실피드(La Sylphide)’나 ‘지젤(Gieselle)’ 속, 발레리나들이 입었던 것이 로맨틱 튀튀입니다


점점 짧아지는 발레 의상
로맨틱 튀튀에 이어서 등장한 것은 ‘클래식 튀튀(tutu)’였습니다. 다리 전체가 드러날 정도로 확 짧아진 길이였는데요. 클래식 튀튀는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의 ‘마리우스 프티파’를 중심으로 발전한 ‘고전주의 발레’의 상징이 되었어요. 고전주의 발레의 핵심은 엄격한 규칙과 법도에 있었죠. 형식화된 안무, 특히 질서와 대칭을 중요시하는 고전주의 발레는 점점 더 어려운 테크닉을 구사하는 방식으로 발전했어요. 때문에 발레 의상 또한 테크닉에 방해가 되지 않는 길이로 변화해야 했고, 그 결과 짧디짧은 ‘클래식 튀튀’가 등장한 것이죠. 클래식 튀튀를 입으면 작은 실수와 결점까지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무용수로써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의상인데요. 반면, 관객 입장에서는 테크닉에 제약이 거의 없는 다채로운 안무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환영할만한 변화였죠. 클래식 튀튀의 인기는 현재까지 이어져서 고전발레 대표작인 ‘백조의 호수'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의 공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짧아지다 못해, 현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튀튀를 벗어던지기도 합니다. 현대 발레는 형식과 규칙보다는 무용수의 몸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발레 의상 또한 무용수의 신체를 잘 드러낼 수 있는 형태로 바뀌고 있습니다. ‘조지 발란신’이나 ‘모리스 베자르’ 등 현대 발레를 대표하는 안무가들은 정확한 라인과 안무의 의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용수들이 발레 연습복인 ‘레오타드'와 ‘타이즈'만 착용하도록 하기도 했고요. 화려한 장식 없이 몸의 선이 드러나는 평상복을 입고, 토슈즈 또한 벗어던진 채 맨발로 발레를 선보이는 공연도 있습니다.
짧게, 짧게, 더 짧게. 이것이 발레 의상의 헴라인이 기록한 발레의 역사입니다. 이는 발레리나들이 더 화려하고 섬세한 테크닉을 구사해 선보이게 된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죠. ‘헴라인 지수’는 이제 그저 속설로 남아있는데요. 발레리나의 헴라인이 가진 의미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여러 발레 공연 속 발레리나들의 헴라인을 유심히 본다면 작품의 시대적 분위기 정도는 선뜻 알아차릴 수 있을 거예요. 아, 궁정발레 시대 무용수들의 길고 과한 치마는 코미디의 한 장면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을지 모르겠습니다.
류한울·조주연 공동 작성
참고자료
- 제환정. 『불멸의 춤 불멸의 사랑』, 서울: 김영사, 202.
- 정재왈. 『발레에 반하다』, 서울: 아이세움, 2010.
- 캐서린 S, 워커. 『발레를 보는 눈』, 서울: 현대미학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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