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의 아버지, 어느덧 탄생 100주년!
- 2,343
- 0
- 글주소

지난 2014년 2월,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펼쳐졌던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무대 기억하시나요? 어두운 톤의 차분한 의상에 감성 가득 담긴 음악적 표현력까지.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여 은메달이라는 아주 값진 결과를 안겨주었죠. 이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 선곡된 <아디오스 노니노(Adiós Nonino)>의 작곡가는 바로, 탱고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antaleón Piazzolla, 1921-1992)입니다. 그는 고전적인 탱고에 클래식, 재즈를 더한 '누에보 탱고(Nuevo Tango)'의 창시자이기도 한데요.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까요?
🎵피아졸라를 논하려면, 탱고에 대한 이해가 필수
피아졸라의 고향이자 탱고의 고장은 바로 아르헨티나에요. 탱고는 19세기 초반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시간 동안 유럽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거쳐 남아메리카인 아르헨티나에 정착했죠. 아르헨티나가 유럽 각지의 이주민들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이게 되었고 그만큼 사회적으로 혼란도 많았어요. 그 속에서 예술에 의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모여 탱고는 애절함과 슬픔이 담긴 하나의 민속음악으로 자리 잡게 되었죠.
💃탱고는 왜 탱고가 된 거야?
탱고는 그 어원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돼 '아프리카 춤(African dance)'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스페인어로 'Taner', 즉 '악기를 연주하다'에서 왔다는 의견도 있어요. '만지다'라는 뜻의 라틴어 'tangere'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죠. 음악에서는 쿠바의 하바네라(Habanera), 폴란드의 폴카(Polka), 스페인의 콘트라단자(Contradanza) 등 각국을 대표하는 춤곡의 리듬이 곳곳에서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탱고의 원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조차도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거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하바네라를 탱고의 전신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우리는 하바네라를 오페라 <카르멘(Carmen, 1875)>에서 들어본 적이 있어요. 느린 4분의 2박자의 리듬을 가진 이 하바네라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르헨티나의 빠른 템포(tempo, 빠르기)와 선율을 닮아가게 된 거죠.
🎹탱고에 사용되는 악기가 따로 있다고?
초기의 탱고는 바이올린과 플루트, 하프로 연주되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그 비싼, 거대한 악기 하프, 맞습니다. 어떤 조합인지 잘 상상이 안 가시죠? 탱고는 주로 길거리에서 연주되어 이동성이 컸기 때문에 연주자들에게 하프는 적합하지 않았고, 그 대신 기타나 피아노가 더해지면서 유동적인 악기 편성을 가져요. 오늘날에는 어두운 음색의 반도네온, 화려하고 높은 음색의 바이올린, 리드미컬한 피아노의 조합으로 안정화되었어요. 이쯤 되면 '도대체 얘는 정체가 뭘까' 싶지 않나요?
👉탱고의 핵심, 반도네온(Bandoneón)
주름진 네모난 상자, 양 끝에 달린 가죽 손잡이, 총 71개의 버튼. 두 손으로 악기를 움직여 공기가 들락날락하게 하고,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원리로 되어있는 악기에요. 마치 아코디언과 비슷한 형태죠. 탱고 음악에서 절대 빠지면 안 될 악기인 반도네온은 영국의 콘서티나(Concertina)라는 악기가 변형된 것으로, 독일의 음악교육자인 하인리히 반트(Heinrich Band, 1821-1860)가 고안하여 19세기 말 즈음 아르헨티나로 수입되었죠. 반도네온은 어딘가 우울하면서도 어두운 소리를 갖고 있지만, 그 슬픔 속에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 매력을 가진 악기예요.
💃탱고의 신분 상승 스토리
일반적으로 '탱고'하면 정열의 레드(Red), 힘차면서도 우아한, 그리고 어딘가 관능미도 느껴지는 춤동작을 떠올리는데요. 태초부터 우아했을 것 같은 탱고가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되기까지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 아시나요?
탱고는 원래 길거리 어느 술집에서, 누군가의 집에서 연주되는 하층민이 즐기던 음악이었는데요. 19세기 후반, 탱고가 유럽에 전파되면서 자연스럽게 프랑스 파리를 비롯한 영국에서 인기를 얻게 되면서 당시 가장 대중적인 음악으로 자리 잡아요. 남녀가 함께 추는 춤이면서 동작에 녹아있는 관능적인 요소들이 상류층을 사로잡게 된 거예요. 게다가 당시 정치적으로 탱고를 장려하는 분위기까지 생기면서 중산층으로 확대되기까지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탱고의 본고장인 아르헨티나에서는 홀대받고 있는 분위기였지만 말이에요.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각종 매체들이 발달하면서 탱고도 본격적으로 전파를 타게 돼요. 탱고를 사랑하던 음악가들은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냐, 감상용의 음악이냐, 가사를 붙이냐 마냐, 새로운 음악 기법을 개발하느냐에 대한 여러 경우의 수를 따지면서 열띤 논쟁을 펼쳐요. 그렇게 탱고는 클래식과 재즈의 요소가 더해지면서 무수한 변화와 발전을 거치게 되죠. 그 안에서 피아졸라는 자신만의 탱고를 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피아졸라의 탱고 인생을 살펴볼까?

어린 시절 피아졸라는 아버지로부터 반도네온을 선물받으면서 피아노와 함께 음악에 입문했어요. 탱고 애호가였던 아버지는 그가 음악가가 되길 바랬죠. 하지만 아르헨티나와 미국 뉴욕을 오가는 이민자 가정에서 힘겹게 살았던 그의 유년시절에 음악은 다가가기 쉽지 않은 존재였어요. 그나마 음악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친구와 함께 가출하여 할렘가의 재즈 클럽에 드나들었다는 거였어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재즈를 접하던 중, 클래식 피아니스트 벨라 윌다(Bela Wilda, 1873-1973)를 만나게 돼요. 헝가리 출신의 그는 러시아의 대표 음악가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의 제자였는데, 피아졸라는 윌다가 연주하는 바흐의 작품에 매료되어 그에게 음악을 배우기로 결심해요.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피아졸라는 레슨비를 대신하기 위해 일주일에 2번 윌다에게 요리를 가져다주는 등의 열정을 보이기까지 했어요. 성인이 되던 해에는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작곡가 알베르토 히나스테라(Alberto Ginastera, 1916-1983)에게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 작곡 기법)을 비롯한 작·편곡법을 배웠는데요. 매일 아침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을 들으며 클래식 음악가로서의 수련을 탄탄히 하죠.
그러다 30대가 되어 그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스승, 나디아 블랑제(Nadia Boulanger, 1887-1979)를 만나게 돼요 프랑스 출신의 블랑제는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 같은 위대한 현대 음악가들을 양성한 '음악가들의 스승' 격인 인물이에요. 음악가의 재능을 발견하는 데 높은 안목을 갖고 있던 그에게 "피아졸라 = 탱고”로 보였던 모양이에요. “네가 클래식 곡을 잘 쓰긴 하지만 진정한 피아졸라는 탱고에 있으니 절대 버리지 말라”, “다른 작곡가를 따라 해서는 너 자신의 것이 없다. 네가 가장 너답게 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 한다"라고 조언을 해주었거든요. 피아졸라 내면에 있는 탱고 음악의 재능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조언이자 특급 칭찬이었고, 피아졸라는 이를 계기로 탱고 음악가로 전향해 큰 변화를 맞게 돼요.
😎탱고의 황금기, 내가 리드할게!
"스타일이 없다면, 음악도 없다”라는 스승의 말을 깊게 새긴 피아졸라. 그는 본격적으로 탱고를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장르로 만들기 위해 힘을 쓰기 시작해요. 바로 ‘누에보 탱고(Nuevo Tango)'예요. ‘춤을 위한 탱고가 아닌 듣기 위한 탱고'라는 의미를 가진 누에보 탱고는 피아졸라만의 스타일을 가진 독특한 탱고인데요! 아르헨티나의 탱고에 미국식 재즈, 유럽의 클래식을 접목한, 굉장히 획기적인 장르였어요. 그는 누에보 탱고만의 리듬과 연주 기법, 반주 형태를 개발했고, 전체적인 음악형식도 기존에서 완전히 탈피했죠. 특히 그의 음악을 잘 들어보면 피아노의 비중이 굉장히 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피아졸라는 반도네온 연주의 대가였지만,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내기에는 피아노만한 악기가 없었죠. 그는 다양한 표현력을 위해 피아노를 애용했어요.
🎶놓치면 아쉬운 피아졸라의 대표곡
1. 아디오스 노니노(Adiós Nonino, 1960)
이 작품은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에게는 김연아 선수의 경연곡으로 알려져 있어요. 제목은 1959년 그의 아버지 빈센트 '노니노' 피아졸라의 사망 후 작곡되어 '안녕 아버지’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당시 피아졸라는 미국에서 연주여행 중이었지만 잘 풀리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는데요. 설상가상으로 부친상까지 겪어 끊임없는 악재 속에 있었어요.
1954년 파리에서 작곡했던 초기 작품 <노니노(Nonino)>를 편곡한 곡으로 악기 편성은 피아노, 반도네온, 더블 베이스로 구성되어 있어요. 피아노의 잔잔하면서도 화려한 선율이 등장한 후, 반도네온이 이끄는 주요 멜로디가 귓가를 계속 맴돌게끔 진행되는 것이 특징인데요. 아련한 슬픔을 내비치다가도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격정적으로 변하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악기별로 감정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따라가면서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피아졸라는 이 곡을 보고 "앞으로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하며 <아디오스 노니노>를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꼽았는데요. 그 말이 무색할 만큼 이후에도 걸작들을 쏟아내요!
2. 리베르탱고(Libertango, 1974)
<리베르탱고>는 기존의 탱고에서 누에보 탱고를 향한 피아졸라의 열정이 가득 담긴 작품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오늘날에도 영화, 클래식, 재즈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악기의 편곡으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탱고 작품이기도 해요.
스페인어 'Libertad(자유)'와 'Tango(탱고)'를 합쳐 '자유에 대한 노래'라는 의미를 가진 이 작품.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1년 전, 피아졸라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가 겨우 회복한 상태로 몸과 마음이 상당히 지쳐있었어요. 삶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득했던 그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득 담은 새로운 작품을 썼고, 그게 바로 <리베르탱고>였어요. 드럼, 전자 기타, 베이스를 추가하여 파격적인 악기 편성을 두었고, 피아노와 반도네온의 리드미컬한 전개는 악기별로 애드립과 변주를 더해 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어요.
그는 "탱고를 연주하고 탱고를 추는 곳은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마주하는 것이며, 삶에서 교차하는 슬픔과 기쁨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요. 이 곡을 들으면 탱고가 가진 그 매력을 한껏 느끼실 수 있어요.
3.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Four Seasons of Buenos Aires, 1992)
<사계(Four seasons)>하면 대부분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를 떠올리실 거예요. 하지만 피아졸라의 탱고 버전 <사계>도 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무려 200년 후에 작곡된 동일한 제목 <사계>는 피아졸라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계절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여름(1965) - 가을(1969) - 봄(1970) - 겨울(1970)]의 순서로 작곡됐어요. 하지만 피아졸라가 사계절이 하나의 작품을 이루도록 의도해서 썼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작곡한 곡들로 추정하고 있어요. 피아졸라가 만든 탱고 5중주(반도네온, 바이올린, 전자 기타, 베이스, 피아노)를 위해 쓰였고, 이 음악들을 나중에 모아서 구성한 것이죠. 완성된 모음곡 형태로 연주된 것은 탱고 5중주의 10주년 기념일에 출연한 한 방송국의 쇼 프로그램이 최초였어요!
재밌는 점은 바이올린 콘체르토 버전의 <사계>를 들어보시면 그 안에 숨겨진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실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 1947~)가 비발디의 <사계>와 함께 짝을 이루어 연주할 만한 레퍼토리를 찾던 중 피아졸라의 작품들을 발견한 거죠. 비발디의 대작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곡을 찾지 못하고 있던 찰나, 계절별로 나뉘어 다른 작품들 속에 섞여 있던 <사계>를 알게 되고 편곡 및 재구성을 하게 되죠. 그동안 '탱고'에서 느껴졌던 특유의 리듬과 분위기보다는 클래식에 가까운 음악적 특색이 깊이 묻어있는 이 작품. '탱고 전문가'가 표현한 사계는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피아졸라의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며!
올 초부터 전국 곳곳에서는 피아졸라를 향한 애정과 존경심이 담긴 연주들이 진행되고 있어요. 지난 5월과 6월에 걸쳐 대전예술의전당에서는 '피아졸라 플러스' 시리즈를 기획하여 공연한 바 있고, 23일 (금)에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아스토르 피아졸라 탄생 100주년 특집 불멸(不滅)'편을 방영한 바 있는데요.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공연으로는 롯데문화재단에서 8월 13일-22일까지 개최하는 클래식 레볼루션 2021 <브람스 & 피아졸라>가 있어요. 매년 여름 개최되는 클래식 레볼루션 시리즈는 열흘간 리사이틀, 협주곡, 교향곡까지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데요. <피아졸라 & 그의 유산>이라는 테마로 꾸며지는 이번 무대에서 '리베르탱고'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를 들어보실 수 있답니다.
💬Editor's Comment
100년 전 태어난 거장의 음악을 현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즐기고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 순간이 공유된다는 건 깊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피아졸라의 작품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사랑을 받는 클래식 레퍼토리 중 하나인데요. 같은 '리베르탱고'여도 첼로 버전, 피아노 버전, 바이올린 버전 등 다양한 편곡이 있어서 내 스타일의 작품을 골라 듣는 재미도 쏠쏠해요. 오늘 추천드린 곡 들으시면서 내가 만약 이 곡을 연주한다면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상상하면서 듣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