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공연 세 시간 전, 내가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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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곳엔 뮤지컬 공연이 있습니다. 나는 늘 이날만을 기다리죠. 나는 매일 캄캄한 곳에서 스태프들, 배우들과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하지만 늘 이렇게 쓸쓸한 것만은 아니에요. 공연이 있는 날엔 화려한 조명도 받아보고,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는 관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해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요. 아, 종종 무대가 끝나도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한참 자리를 못 뜨는 관객들도 있어요. 그들의 눈빛은 나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합니다. 때론 그들과 함께 눈물 한 방울을 흘리기도 하고요, 때론 벅차오르는 감정을 누르며 무심한 듯 표정관리를 하기도 하죠. 아, 저기 무대 감독님이 오신 것 같아요. 이제 공연이 세 시간쯤 남았겠군요. 감독님은 늘, 세 시간 전에 공연장에 도착하시니까요.
공연 전 스태프들은?
보통 무대감독님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케미라이트를 체크하는 것이에요. ‘케미라이트.’ 평소 낚시를 즐기시는 분이라면 익숙하실 테죠. 처음, 어둠속에서 이 야광의 신기한 물체를 보았을 때, 그 말로만 듣던 초록 우주 생물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요. 이 덕분에 어두운 극장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이 더 이상 발을 헛디뎌 넘어지지 않아요. 무대감독님이 케미라이트의 지속력과 부착여부를 확인하는 동안 여러 파트의 스태프들이 속속 도착해 각자의 업무를 시작하네요.
모든 스피커들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 음향감독님이 보입니다. 배우가 아무리 훌륭한 가창력을 뽐내도, 스피커에서 제대로 출력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죠. 혹여나 최대 볼륨에서 찢어지는 소리는 없는지, 스피커가 각자의 위치에서 조화롭게 작동하는 지를 체크하고 있어요. 감독님은 언제나 프로답다고 느끼게 됩니다. 다음으론 ‘빛의 마법사’ 조명감독님이 보여요. 제가 가장 기다리는 분이예요. 나를 향해 조명을 팍팍 쏴주는 분이니까요. 어둠 속에 묻혀있던 무대는 빛에 의해 비로소 깨어날 수 있죠. 나는 이런 빛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요. 조명감독님은 관객들에게 선보일 최상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콘솔에 저장된 조명메모리를 꼼꼼히 체크해요. 그럴 땐 나도 무대를 가리지 않게끔 자리를 비켜드리곤 하죠. 공조명이 메모리에 맞게 잘 작동하는지, 정확한 각도로 세팅되어 있는지, 세세하게 살피는 감독님. 덕분에 오늘 공연도 멋지게 마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무대 크루쪽으로 시선을 돌려 볼까요? 무대 크루는 무대감독과 조감독 밑에서 공연 진행을 돕는 스태프를 의미하는데요. 그들은 무대 위 대도구·소도구 세팅과 세트 전환 등을 담당하며 공연 준비 전반에서 활약하는 그야말로, 만능 스태프들이랍니다. 그들이 이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어요. 때론 내가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도움을 주고 싶기도 하지만, 난 그저 그들을 지켜볼 뿐이죠.

대기실의 분위기
여러분이 더욱 궁금해 하실 곳은 아무래도, 배우들이 있는 대기실일 텐데요. 아직 배우들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텅 비어 있냐고요? 아니죠. 대기실은 벌써부터 아주 분주해요. 뮤지컬 특성 상 배우들이 착용할 의상과 소품들이 참 많거든요. 분장팀, 의상팀 모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답니다. 한 명의 배우를 분장하는데 여러 명의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분장의 중요도에 따라 대기실에 도착하는 배우들의 콜 타임이 달라지기도 하는데요. 그 사이, 배우가 도착했어요. 분장팀이 순서대로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의상팀은 의상에 이물질은 없는지, 다림질을 해야 하는 옷은 없는지를 꼼꼼히 체크합니다. 무대 의상은 급히 환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추나 지퍼가 자주 고장 나는데요. 때문에 의상팀 스태프들은 모두 수선의 달인이 되었답니다. 공연에 ‘퀵체인지’가 있는 경우에는 진행에 이상이 없도록 배우와 약속한 곳에 의상을 잘 세팅해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죠. 어휴, 나는 이렇게 막혀있는 대기실 보다는 내가 있는 넓은 무대 위가 체질인 것 같아요. 듣기만 해도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예요.
배우들의 공연 준비
배우들이 각자의 콜타임에 맞춰 분장을 받고 의상까지 갖춰 입으면, 그들에겐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스트레칭 등을 통해 신체를 깨우고, 노래를 원활히 부를 수 있도록 발성 스케일을 진행하죠. 아무리 반복해도 무대에서 관객을 맞이한다는 것은 늘 떨리는 일일 텐데요. 나는 그들의 눈빛만 봐도 알 수가 있어요. 가끔, 배우들은 대기실을 나와 무대를 지키고 있는 나와 눈을 맞추기도 하거든요. 여러분은 긴장이 되는 순간, 마음을 가라앉히는 각자의 방법이 있나요? 배우들도 각자의 노하우가 있을 거예요. 독서와 사색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배우들도 있고, 동료와 수다를 떨어보는 배우들도 있다고 하네요.
클린업과 오케스트라 리허설
안무감독님이 오셨어요. 오늘은 ‘클린업(Clean up)’이 있나 봐요. 클린업 작업이란, 말 그대로 안무 동작을 다시 단장하는 것이에요. 배우들의 동작은 회가 거듭될수록 점점 흐트러질 수 있거든요. 그런 동작의 균형을 다시 잡아주기 위해 진행하는 안무 연습이죠. 보통은 공연 전에 주 1회씩 안무 모니터를 선행하는데요. 필요하다면 이렇게 공연 전에 가볍게 진행하기도 해요. 아, 오늘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공연이라 오케스트라의 리허설도 있어요. 음악감독은 연주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때로는 해당 배우와 함께 리허설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무대 앞, 좁은 공간에 숨어있듯 자리하고 있는 그들은 생생한 음악과 함께 공연을 더욱 살아있게 만들어주죠. 그들의 연주에 맞춰 나도 모르게 몸을 흔들기도 해요. 그래서 나는 그들과 함께 하는 공연을 더 기다리곤 한답니다.
공연 전 최후의 준비
이렇게 각자의 준비시간을 거친 스태프와 배우들, 이제 한 자리에 모여 프리셋을 진행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제 나도 슬슬 긴장이 되는데요. 프리셋이란 공연 전 무대를 미리 맞춰보는 것을 말하죠. 때문에 관객이 객석에서 보는 무대와 거의 똑같이 진행된답니다. 프리셋 후에는 암전테스트가 진행되고요. 공연에 필요한 조명 외에 다른 간섭이 생겨서는 안 되니까요. 불필요한 빛이 무대를 망치지 않도록 신중히 진행해야 합니다. 나도 이때만큼은, 한 올의 실조차 움직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죠. 마지막으로 하우스팀의 차례입니다. 하우스팀은 공연이 정시에 시작할 수 있도록 관객의 입장을 돕고 있어요. 무대 뒤에서는 전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여 있네요. 그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파이팅을 외칩니다!
객석 문이 닫히고 극장에는 어둠이 내려앉았어요. 그리고 나의 몸, 붉은 빛 커튼위로 은은한 조명이 쏟아지죠. 캬~ 나는 내가 이래서 그 긴 어둠을 견딜 수 있다니까요. 나를 일제히 향하고 있는 관객들의 눈빛을 보세요. 마치, 아직 열어보지 않은 선물 상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무척 설레는 표정인데요. 무대 뒤,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눈빛과 꼭 닮았습니다. 나는 조금씩 양옆으로 이동하며 자리를 내어줍니다. 이제, 내 뒤에 숨어있던 그 모든 것들이 무대 위로 등장해요. 이제 나를 비추던 조명은 무대 위를 향합니다.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공간을 선물하는 이 순간 역시, 나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죠. 쉿,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배우들이 등장했어요. 그럼 난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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