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질 때는 야한 상상을 해, 뮤지컬 <레드북>
- 2,809
- 1
- 글주소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없었고,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는 것도 금기시되던 시대가 있어요. 이른바 ‘여자답지 못한 행동’이었으니까요. 영국 역사상,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빅토리아 시대. 이 시대에 글을 쓰는 여자, 특히나 ‘야한 소설’을 쓰는 안나의 삶은 평탄치만은 않았겠죠? 뮤지컬 <레드북>은 사회의 비난과 편견을 무릅쓰고 작가로 성장하는 여자, 안나의 이야기를 담은 국내 창작 뮤지컬이에요. 지난 6월 4일부터 8월 22일까지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인데요. 한국 뮤지컬 역사상 처음 있는 여성 캐릭터라며 사랑받고 있는 안나. 안나가 써내려간 레드북에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길래 금기시되었던 건지, 한 번 그 책장을 펼쳐볼까요?
😎캐릭터 소개부터 시작할게
주인공 안나는 슬플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하는, 야한 소설을 쓰는 작가예요. 고단한 현실을 발칙한 상상으로 견뎌내고 미래를 꿈꾸는 여성으로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죠. 브라운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졌고 신사적이지만, 시대에 걸맞은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인물이에요. 하지만 안나를 만나면서 변화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순수한 모습이 돋보이죠. 이외에도 브라운의 할머니이자, 안나가 간병했던 깐깐한 성격의 노부인 바이올렛, 여성문학회의 설립자로 여장남자 캐릭터인 로렐라이,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안나를 강제로 추행하려 하는 딕 존슨 등의 캐릭터가 등장해요.
📖<레드북>의 책장을 펼쳐볼까?
신사의 나라인 영국,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가 있었어요. 여성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도 마음대로 펼칠 수 없었죠. 그 당시 여성들과는 달리 자신을 표현하는데 아주 솔직했던 안나는 진실된 사랑을 꿈꾸는 자유분방한 여자였어요. 남자친구와의 첫 경험을 이야기했다가 약혼자에게 파혼당하고, 가족들은 안나를 집안의 수치라 여겨 쫓아내고 말아요. 안나는 귀족 부인 바이올렛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되었고, 바이올렛에게 야한 소설을 들려주죠. 남편과의 사별 이후, 죽는 날만 기다리던 바이올렛은 안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다시 사랑에 눈을 뜨고, 결국 정원사 헨리와 사랑에 빠지게 돼요.
바이올렛을 떠나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던 안나에게 바이올렛의 손자이자 변호사인 브라운이 찾아와요. 바이올렛이 안나에게 유산을 남겨줬거든요. 하지만 당시, 영국 법상 미혼 여성에게 유산을 물려줄 수는 없었죠. 안나는 문서 작업을 돕는 타이퍼로 브라운과 함께 일하게 되는데요. 어느 날 안나는 서점에서 레드북 초안을 보게 되고 레드북을 발행하는 ‘로렐라이 언덕’을 찾아가요. 그렇게 안나는 여성들만의 고품격 문학회인 로렐라이 언덕의 신입 작가가 되죠. 우여곡절 끝에 브라운과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고요. 하지만 보수적이었던 시대에 안나의 소설이 담긴 잡지는 거센 사회적 비난과 마주하게 돼요. 결국 안나는 법정 공방에 서게 되는데요. 안나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요?
🎵주목해야 할 넘버
뮤지컬 <레드북>은 중독성 높고 메시지가 잘 녹아든 넘버로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사랑은 마치’는 사랑을 잘 모르는 브라운에게 안나가 사랑은 변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곡으로, 사랑을 날씨에 비유해 알려주는 사랑스러운 곡이에요. ‘당신도 그래요’는 브라운이 안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이해할 수는 없어도 좋아할 수는 있다는 마음을 담아 부르는 넘버인데요. 이 넘버를 부를 때, 뽀뽀 장면이 있는데 정해둔 위치나 제스쳐 없이 즉흥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점이 재밌어요. 이는 배우 차지연의 아이디어로 사랑이란 아이 같을 때 더 돋보이는 감정이기 때문에, 이 장면만큼은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연기하기로 했대요. 뮤지컬의 메인 넘버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은 <레드북>의 주제를 담고 있는 곡으로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가사가 인상적이에요. ‘티 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가사는 관객들에게 감동과 눈물을 선사하고 있어요.
👩놓칠 수 없는 3인 3색의 안나



안나 역은 차지연, 아이비, 김세정 트리플 캐스팅으로 삼인삼색의 안나를 만날 수 있어요. 차지연은 그동안의 작품에서 보여주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색다른 밝은 모습으로 찾아왔어요. 그는 안나라는 캐릭터를 만나며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껴, 정말 감사하며 행복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는데요. 2006년 데뷔 이후 처음 느껴보는 행복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내면의 깊이를 더한 성숙한 안나를 보여주고 있어요.
아이비는 초연부터 레드북에 합류하여 3년 만에 다시 안나를 연기해요. 7월 20일부터 관객을 만나며, 차지연, 김세정보다는 늦은 출발을 보여줬는데요. 이 작품을 통해 예그린뮤지컬어워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찰떡같은 캐스팅을 보증하며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세정은 이번이 두 번째 뮤지컬 작품이지만, 첫 작품 <귀환>을 비대면으로 한 번만 공연했기 때문에 관객 앞에 서는 첫 번째 뮤지컬 작품이에요. 팬들 사이에서는 일명‘클린 안나’라고 불리는데요. 그만큼 맑고 깨끗한 김세정의 연기 때문이 아닐까요? 극중 야한 여자를 연기하지만, 깨끗하고 밝은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창작 뮤지컬의 신화
2013년에 초연한 창작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동갑내기 콤비 한정석 작가와 이선영 작곡가가 다시 뭉쳐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뮤지컬 <레드북>은 2016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 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창작산실 최고의 성공작이라는 칭찬을 받고 있는데요. 2017년 대학로예술극장에서 본 공연에 앞서 선보이는 트라이 아웃(tryout) 이후, 2018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초연 무대를 거쳐, 2021년 3년 만에 재연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제7회 예그린 뮤지컬 어워드에서는 여우주연상(아이비), 여우조연상(김국희), 극본상, 작곡상을 수상하며 4관왕을 차지했고, 제3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는 작품상, 연출상, 안무상, 여우조연상(김국희)까지 4관왕을 차지하며 창작뮤지컬의 신화를 쓴 작품이죠. 중독성 있는 넘버와 탁월한 배우들의 연기력, 재미와 의미를 다 잡은 스토리로 단점을 찾기 힘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공연예술 창작산실이란?
창작뮤지컬, 창작오페라, 연극, 무용, 전통예술 등 공연예술 전 장르에 걸쳐, 프리프로덕션, 공연, 재공연까지 지원을 통해 우수 창작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사업이에요.
📕뮤지컬 <레드북> 탄생 배경
한정석 작가와 이선영 작곡가는 그동안은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을 써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여성 주인공 등장하는 작품을 써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이왕이면 두 사람이 잘 아는 분야인 ‘작가’를 직업으로 하는 여성 이야기를 쓰기로 했죠. 여성 작가라는 주제만으로는 조금 단조로운 느낌이 들어, 여성 작가가 쓰는 작품에 무게를 실어 ‘도발적인 작품을 쓰는 여성 작가’라는 캐릭터를 구축했어요. 그렇게 결국은 빅토리아 시대라는 배경에 야한 소설을 쓰는 작가 이야기가 탄생하게 됐어요. 처음부터 특정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것은 아니고, 하나하나 퍼즐이 맞춰져 탄생한 작품이죠.
💬Editor's Comment
지금의 우리와는 시대도, 장소도 거리가 있지만, 안나라는 캐릭터는 어딘가 친숙하게 느껴지시지 않나요? 뮤지컬 <레드북>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라는 배경을 빌려와 젠더 이슈, 미투 운동 등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주제들을 담아내는 작품이에요. 성별을 떠나 ‘자신’을 찾아가는 안나의 여정에 많은 관객들은 공감하고, 감동하고 있어요. 안나를 연기한 배우들은 모두 자신이 안나와 많이 닮아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차안나, 과자(아이비)안나, 클린안나 모두 좋지만, 여러분 스스로가 써 내려갈 안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오늘도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 세상 모든 안나들을 응원합니다.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