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세계문학상이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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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노벨상처럼 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세계문학상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바로, 고(故) 박경리(1926~2008) 작가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박경리문학상’인데요. 2011년 시작된 이 상은 2012년부터 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시상하며, 국내 최초의 세계문학상이 되었죠. 그러나 최근 ‘박경리문학상’과 ‘박경리문학축전’이 10년 만에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해요. 아쉽게도 의미 있는 문학상이 중단된 초유의 사태!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니겠죠?
✍️고(故) 박경리 작가를 소개할게요
박경리 작가는 192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본명은 ‘박금이’이고, ‘박경리’라는 필명은 그를 소설가의 길로 이끈 소설가 고(故) 김동리(1913~1995)가 지어줬어요. 그의 유년 시절은 시련 가득한 흙길이었다고 말해요. 집을 나간 아버지 때문에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고,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는 그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죠. 그는 가정과 시대를 향한 분노와 외로운 마음을 독서와 시를 쓰며 스스로 위로했다고 해요. 그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1946년 결혼했고, 1950년 서울 가정 보육사범학교 가정과(현 세종대학교)를 졸업한 후 학교에서 가정교사로 근무했어요. 그러나 곧 6.25 전쟁이 발발하고, 그의 남편은 서대문 형무소에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되고 말았죠. 게다가 세 살배기 아들까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그는 이 엄청난 슬픔을 견디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해요.
🧓박경리를 만든 일등공신 = 김동리
사실 박경리는 작가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의 등단에는 소설가 김동리의 공이 큰데요. 당시 중견 작가였던 김동리의 집에 박경리의 친구가 세 들어 살았어요. 그 친구는 김동리에게 자신의 친구가 글을 쓴다며 시를 건넸고, 김동리는 박경리의 시를 읽게 되죠. 그 시를 읽은 김동리는 호의적인 평을 건네지 않았어요. 그래도 시보다 소설을 써보라고 권했고, 계속 자신에게 글을 써오라고 제안했죠. 그 후 박경리는 글을 써서 김동리에게 가져다주었고, 김동리는 문예 살롱에서 사람들과 함께 품평회를 했어요. 박경리는 이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끼고 자신이 제출했던 원고를 돌려 달라고 했는데요. 그러던 중 박경리는 지인에게 자신의 작품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었으니 원고료를 받아 가라는 소식을 듣게 돼요. 알고 보니 김동리가 그의 소설 <불안지대>를 <계산>이라는 제목으로 바꾸고, 이름 또한 필명을 지어 비밀리에 문예지에 추천했던 것이었어요. 덕분에 박경리는 문학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자신을 등단 시켜준 김동리를 매우 고마워했죠.
이후 박경리는 수많은 걸작을 남기며,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 소설가로 인정받았죠. 후에는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는데요. 1996년 토지문화재단을 창립하고, 1999년에는 토지문화관을 개관했어요. 또한 2003년에는 <토지>와 이어지는 <나비야 청산(靑山)가자>를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폐암이 발견되어 완성하지 못해요. 그리고 2008년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박경리의 작품세계 파헤치기
그의 초기 대표작은 1958년 현대문학상을 안겨준 <불신시대>를 꼽을 수 있어요. 이 작품은 여성의 시선을 통해, 현실의 위선과 허위를 이야기하는 작품인데요. 이렇게 그의 초기 작품에는 작가의 삶이 담겨있어요. 주로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미망인으로 사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점에서 알 수 있죠. 1960년대, 그는 장편소설 <김약국 딸들(1962)>을 발표하면서 작품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작가 내면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객관적이면서 다양한 기법을 적용하기 시작하죠. 그래서일까요. 이 작품은 출판과 동시에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그가 안정적인 전업 작가의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히트를 했어요.
1969년, 그는 한국 대하소설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하는데요. 바로, 박경리의 대표작 대하 장편소설 <토지>예요. <토지>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화 속에서 한 양반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을 담았는데요. 조선 시대가 낳은 유교 중심의 가족제도, 계급이 해체되는 모습과 서구 문물이 들어오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과정 등 한민족 역사의 대서사를 풀었다는 점에 의미와 가치를 높게 인정받고 있죠. 그는 <토지> 1부를 쓰던 중 암투병이라는 쉽지 않은 여정을 겪었는데요. 이렇게 고통을 견디고 세상과 단절하며 <토지>를 완성하기까지는 약 25년이 걸렸고, 총 20권의 책이 출간되었어요. 그만큼 <토지>는 한국 현대 문학 100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설로 손꼽히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작품이죠. 25년 동안 하나의 작품에만 몰두했다니, 박경리이기에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토지> 외에도 <표류도(1959)>, <시장과 전장(1964)>, <파시(1965)> 등이 있어요.
📗우리 민족의 대서사시 <토지>
하동군에 사는 최참판댁의 최치수가 타락한 양반 김평산과 여종의 계략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자, 그의 외동딸(최서희)은 먼 친척에게 재산을 빼앗긴 뒤 내쫓기게 되는데요. 이후 그는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다시 예전 땅과 집을 사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이 소설은 양반 최참판댁의 몰락을 통해, 조선 시대 봉건주의적 가족사와 인간의 존엄성을 담아내고 있어요. 더불어 과거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과 시련을 생생하게 풀어내고, 인간의 보편성에 대해 집중했다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죠. 게다가 국어의 아름다움까지 잘 살린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한 호흡으로 꾸준히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유지했다는 것만으로도 박경리 작가의 대단함을 알 수 있죠.
🤷♀️박경리문학상, 10년 만에 중단이라니!
최근 강원도가 코로나 19 재난지원금과 누적된 부채에 따른 재정난으로 지원예산 편성이 어렵다고 밝혔어요. 그에 따라 박경리문학상 지원예산을 별도 편성 없이 공모사업으로 전환하고, 박경리문학상에 지원하던 예산 1억 원을 강원도 내 18개 시군에 분배하겠다고 전했는데요. 주요 지원예산이 반 토막 난 상황에서 박경리문학상과 문학축전 개최가 어렵게 되었고, 결국 10년 만에 시상과 축전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죠. 강원도와 원주시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박경리문학상과 박경리문학축전 사업비로 매년 1억 원과 1억3천만 원을 지원했는데요. 박경리문학상의 상금이 1억인 점을 생각하면 앞서 지원했던 예산도 넉넉하지는 않았어요.
강원도의 결정에 따라 박경리문학상과 박경리문학축전이 중단되자, 문학계 아쉬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문학계와 강원도민들은 원주와 춘천, 강릉까지 3개의 문화도시를 보유한 강원도가 문화예술정책에서는 소홀하다는 지적과 함께 문화예술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까지 등장했는데요. 그러자 강원도는 재정 악화로 인한 결정이지 문화예술 홀대가 아니라며, 당분간 이 기조를 유지할 예정이라고 전했어요. 이렇게 박경리문학상과 문학축전이 계속된 잠정 중단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죠?
🔎국내 문학계의 반응은?
강원도의 결정에 따라 문학계는 비판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어요. 토지문화재단에 따르면, 박경리문학상 시상금은 1억 원이지만 심사에만 4천만 원이 소요되는 등 자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해요. 그렇지 않아도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러한 강원도의 방침은 사실상 박경리문학상과 문학축전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강원도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죠.
원주시도 강원도의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당혹스러운 상황이에요. 원주시는 행사를 축소해서라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토지문화재단에서는 불안정한 운영을 염려했어요. 결국, 코로나19로 해외작가 초청도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해서 올해는 일단 문학상과 문학축전 모두 열지 않기로 최종 결정된 것이죠. 그래도 원주시는 재단에서 운영방안을 제안하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반영할 것이며, 내년부터는 박경리문학상과 문학축전이 다시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며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줬어요.
🤔박경리문학상이 궁금해!
‘박경리문학상'은 박경리 작가의 작품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한 상이에요. 매년 세계 문학 발전을 위해 좋은 작품을 선보인 작가(소설 부문) 1인을 선정해 상과 함께 1억 원의 상금을 전달하는데요. 단일 문학상으로 상금 1억 원은 국내 최고 수준이에요. 그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작가와 작품을 선별해서 시상하겠다는 뜻이지요.
2008년 박경리 작가 타계 이후, 강원도와 원주시가 박경리문학상을 추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시작된 문학상이에요. 2010년 제1회 박경리문학축전이 개최되었으며, 2011년 박경리문학상이 제정되어 <광장(1960)>의 최인훈(1936~2018) 작가가 첫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어요. 그 후, 류드밀라 울리츠카야(Ludmila Ulitskaya, 1943~ / 러시아), 메릴린 로빈슨(Marilynne Robinson, 1947~ / 미국),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 1944~ / 독일), 아모스 오즈(Amos Oz, 1939~2018 / 이스라엘), 응구기 와 티옹오(Ngugi Wa Thiongo, 1938~ / 케냐) 등이 수상하며, 국제적인 문학상으로 성장했어요.
🧐박경리문학상, 왜 세계적으로 시상하죠?
‘박경리문학상’은 노벨상처럼 세계문학상을 지향해요. 하나의 권위 있는 세계 문학상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전 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시상을 하고 있는데요. 박경리문학상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세계 문학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 문학의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인들이 한국문학에 관심을 두도록 하는 것이죠. 이 두 목적은 국내 작가들이 자신의 문학과 세계 문학을 비교하는 기회를 얻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면 취지이죠. 즉, 박경리 문학의 계승은 물론이고 그의 문학을 뛰어넘는 세계적 수준의 한국문학 탄생을 위해 시작되었어요.
📜박경리 <토지>가 연극으로!

갑작스러운 박경리문학상의 중단으로 슬슬한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 공연이 시작돼요. 박경리 작가의 대표작 대하소설 <토지>가 연극 무대에 오른다는 반가운 소식인데요. 연극<토지I(극본 김민정, 연출 박장렬)>은 지난 2020년에 경남도립극단이 창단 공연으로 제작해서 통영과 창원 무대에 선보인 작품인데요. 올해 5월 김해에서도 성황리에 재공연 됐으며, 지난 6월에는 부산국제연극제 폐막작으로 공식 초청돼 축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어요.
<토지I>은 최참판댁이 간도로 이주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로 경남 하동을 주요 배경으로 평사리 사람들의 사랑과 갈등, 좌절과 희망을 담았는데요. 최근 경남도립극단 <토지I>에 이어지는 <토지II>도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 <토지I> 공연은 예술의전당이 지방의 문화예술 균형 발전을 위해 지역 내 문화예술기관들과 협업하는 ‘2021년 지역 우수콘텐츠 교류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선정되어, 오는 31일부터 8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어요.
💬Editor's Comment
그가 세상을 떠나자 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이런 조사(弔辭)를 읊었다고 해요. “왜 이렇게 선생님이 거두신 건 야금야금 그저 얻어먹고 싶은지. 그걸 못하게 된 게 왜 이렇게 서러운지 전 참 염치도 없지요. 선생님은 후배들이 평생, 그리고 대를 이어 자자손손 파먹어도 파먹어도 바닥나지 않을 거대하고 장엄한 문화유산을 남기셨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숭고한 창작 정신과 엄청난 업적에 대하여, 박완서 작가님은 한 명의 후배로서 한국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그에게 전하고 싶은 감사한 마음을 오롯이 담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 강원도의 결정은 늘 생계에 치우쳐 예술을 등한시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큽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말씀처럼, 후손들에게 물려줄 우수한 문화예술은 적절한 예산편성을 통해, 보존해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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