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감정을 소환하는 심리 신체적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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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동안, 열다섯 번 죽는 남자가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하루에 두 번 죽기도 하고요. 그의 부인 역시 열다섯 번 그의 죽음에 오열합니다. 열다섯 번 모두, 마치 처음인  것처럼요.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 역을 맡아 21일 동안 15회의 공연을 펼쳤던 그. 그리고 콘스탄체 베버 역을 맡은 그녀의 이야깁니다. 수없이 이뤄지는 반복적인 공연에서 어떻게 배우들은 늘 최적의 감정을 갖고 연기할 수 있는 걸까요? 극중의 감정에 무뎌지진 않을까요? 이 문제의 실마리가 된 ‘심리 신체적 연기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신체 동작에서 피어나는 감정과 생각

스타니슬라브스키 시스템의 기반  /  ⓒ 안경희

 ‘심리 신체적 연기론(psychophysical acting)’은 러시아의 연출자이자 배우인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Konstantine Stanislavski, 1863-1938)에 의해 주장되었는데요. 그는 21세기 최초로 배우 훈련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 인물입니다. ‘심리 신체적 연기 시스템(system)/ 연기론’은 ‘몸과 마음이 연속적으로 교류하며 심리 신체적 상태를 표출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배우들이 적절한 신체적 상황 속에서 동작을 행하면,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라고 말했는데요.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배우가 상황에 맞는 신체 동작을 할 때, 그 과정에서 저절로 감정과 생각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동작을 통한 생각과 감정 불러일으키기  /   ⓒ 안경희

 예를 들어, 머리가 간지러울 때 우리는 해당 부위를 손가락으로 긁지요. 그리고 긁는 과정에서 머리가 간지럽다는 감정적 상태와 시원하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됩니다. 긁는 동작, 그 자체가 연관된 감정과 생각을 환기시킨 것이지요.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힘껏 밀어보세요. 이때, 우리는 머리를 미는 것이 내 손가락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개가 한쪽으로 밀리는 순간, 감정적 상태는 변하고 동시에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이 동작과 관련된 부정적 기억과 감정이 소환되었기 때문입니다.

 배우들이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서 할 만한 적절한 신체 동작을 행한다면, 캐릭터와 동일한 감정과 생각 또한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반복적으로도 일정하게 좋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동작은 배우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주장은 당시 많은 배우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동작을 통해 생성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수반한 연기로 관객들로부터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영향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고요.
 

 

신체동작에 대한 탐구, 관객에겐 최고의 경험!

 연극 연출자이자 연기 트레이너인 벨라 멀린(Bella Merlin)도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주장을 뒷받침했습니다. 그녀는 ‘내적인 느낌과 외적 표현을 동시에 일으킬 수 있도록 훈련하고 행하는 사람을 심리 신체적 연기자(psychophysical actor)’라고 칭했는데요. 배우들이 캐릭터에 맞는 신체 동작을 탐구하고 리허설을 함으로써 자신이 맡은 역할에 더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심리 신체적 연기’를 행하는 배우는 누가 있을까요?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셜록 역을 맡아 세계적인 스타가 된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omberbatch)입니다. 컴버배치는 영국의 LAMDA(London Academy of Music and Dramatic Art) 출신으로 연극 무대에서부터 꾸준히 연기를 해왔죠. 현재 그는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그는 2011년에 연극 <프랑켄슈타인(Frenkenstein)>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컴버배치가 새로운 창조물로 태어나 소리를 지르는 <프랑켄슈타인>의 오프닝 장면  /  ⓒ Catherine Ashmore

 

 극 중 컴버배치가 빅터 프랑켄슈타인 의사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창조물(creature)을 연기하는 장면이었는데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떤 발가벗은 존재가 첫 걸음마를 떼면서, 컴버배치는 신체의 마디마디를 분리하고 흔들면서 기괴한 동작을 행합니다. 마치 온몸을 한 번도 가누어 본 적이 없는 듯 말이죠. 이러한 신체적 동작은 배우에게 어려움과 좌절이라는 감정을 환기시켰고, 서서히 일어서겠다는 의지까지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관객들을 매료시킬만한 강렬한 탄생 장면이 탄생했습니다. 컴버배치는 ‘창조물’으로서의 심리 신체적 상태에 완전히 동화되었고, 관객은 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죠. 컴버배치는 상상 속 낯선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수도 없이 동작을 탐구하고 신체적으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곧 그 캐릭터의 심리와 감정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되었고요. 

 

<프랑켄슈타인> 창조물과 빅터의 싸움 장면(위: 베네딕트 컴버배치, 아래: 조니 밀러)  /  ⓒ Catherine Ashmore

 

‘심리신체적’ 연기자들의 활약을 기대하며!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생리학적 징후들을 제외하면 감정은 실제적 존재를 가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그의 말에 따르면,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 감정에만 몰두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대상을 상대로 싸움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기기 힘든 싸움이죠. 대신, 행동을 따라 하며 신체를 먼저 사용해 보면 어떨까요? 감정은 신체적 표현에 의해 소환될 수 있으니까요. 몸과 마음, 모두를 캐릭터에 맡긴 채, 열다섯 번 죽고 열다섯 번 울어도 늘 처음 같을 수 있는 그들의 노력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참고자료
- Alison Hodge,『Actor Training』,Routledge, 2010.
- Bella Merlin,『Konstantin Stanislavsky』, Routledge, 2004.
- Bella Merlin,『Beyond Stanislavsky』, Nick Hern Books Limited, 2010.
- Joseph R. Roach『The Player’s Passion,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3.
- Konstantin Stanislavski, 『An Actor Prepares』, trans. Elizabeth Hapgood, Pergamon Press, 1936. 
- 2021년 스타니슬라브스키 시스템의 기반
- 2021년 동작을 통한 생각과 감정 불러일으키기 
- 2011년 프랑켄슈타인의 오프닝 장면, 프로덕션 포토
- 2011년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과 빅터의 싸움 장면, 프로덕션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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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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