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내가 찍은 사진들이 내가 죽은 후 유명해진 건에 관하여

  • 962
  • 0
  • 글주소

  여러분의 갤러리는 어떤 사진들로 채워져 있나요? 셀카,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찍어준 사진, 인테리어나 하늘 등 취향에 따라 다양한 사진이 있겠죠?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담긴 갤러리가 만천하에 공개된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내가 죽은 후에요! 솔직히 저라면 부끄러움에 또 한 번 죽고 싶을 것 같아요. 하지만 내 갤러리가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1926~2009)의 갤러리와 같다면 음,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어요. 그렇게 멋진 사진첩이라면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괴짜 보모에서 천재 사진작가로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이 이름이 사진작가로서 알려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2007년, 존 말루프라는 역사학자는 경매장에서 우연히 15만 장이나 되는 필름을 얻게 됩니다. 그 거대한 양에 놀라기도 잠시, 필름을 자세히 살펴본 말루프는 이 사진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사진의 주인을 찾기 시작했어요. 알고 보니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비비안 마이어라는 무명의 사진작가였는데요. 아니, 무명인 수준이 아니라 그가 사진작가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정도였어요. 비비안 마이어는 생전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남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거든요. 마이어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항상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특이한 보모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 이상은 몰랐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말루프는 작품들을 인터넷으로 공개해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어요. 한 번도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이어의 사진들은 여러 거장들의 작품과 비교되며 극찬받았죠. 대중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마이어의 사진에 감탄했고요. 이에 힘입어 말루프는 더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보이기 위해 전시를 준비했어요. 그 결과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은 전 세계를 돌며 성공적으로 전시되었고,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바로 올해 11월까지 열리는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에서요!

 

세상에 나오지 못 할 뻔한 비비안 마이어의 필름들 ⓒ네이버 영화


 

🔍일상에서 예술을 찍는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는 대체 어떤 사진을 찍었길래 이토록 사랑받는 걸까요? 전문 사진작가도 아니었으니 특별한 것을 촬영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혹시 눈치채셨나요? 맞아요. 마이어의 사진이 주목받는 것은, ‘특별하지 않은 것’을 찍었기 때문이에요. 그의 사진에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장면들이 많아요. 우리의 일상이 그의 피사체인 셈이죠. 매일 되풀이되기만 하는 재미없는 하루의 조각도 비비안 마이어의 카메라 안에서는 예술 작품으로 변한답니다. 아주 신기하죠? 인위적인 연출 없이 일상의 찰나를 기록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듯해요. 모두가 한 번쯤 비슷한 경험을 해 봤을 테니, 작품 속으로 빠져들기도 쉽잖아요. 마이어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전후 상황을 모르는데도 그 현장이 생생하게 느껴져요. 꼭 제가 비비안 마이어의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들어간 것처럼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비비안 마이어

 

  이 사진도 마이어의 작품 중 하나예요.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어른의 얼굴이 풍선에 절묘하게 가려진 재치 있는 사진이죠.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왠지 표정이 보이는 듯해요. 아이를 보며 이가 드러나도록 환히 웃는 얼굴이 풍선 뒤에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아이들은 마이어의 작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요소이기도해요. 마이어는 일평생 보모를 생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익숙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단지 직업 때문에 마이어의 작품에 아이가 많이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이는 반복되는 일상과 단조로운 흑백 세상에 새로운 색과 생기를 더하잖아요. 우리가 암묵적으로 지키는 규칙을 당당하게 깨부수는 유일한 존재들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일상의 포착을 즐겼던 마이어에게 아이들이 매력적인 피사체로 다가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사진을 굳이 돈 내고 봐야 해..? 에 대한 답변드리겠습니다.

  사진전을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쯤 “화면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사진을 왜 돈까지 내고 보는 거야?”라는 질문을 받아보셨을 거예요. 사진은 원본이 하나뿐인 다른 예술 작품들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종종 이런 오해를 받는답니다. 저의 경우에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진열’이 아닌 ‘전시’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답하지만, 이 대답이 전시를 즐기지 않는 분들께 늘 확실한 답이 되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에는 직접 방문해서 관람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요. 바로 작가의 소장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거든요. 그가 촬영을 위해 실제로 사용한 카메라들은 물론이고요, 인화되지 않은 필름들도 전시실에 자리하고 있어요. 핸드폰 카메라가 더 익숙한 시대에 작은 필름들에 남아 있는 이미지를 보는 일이란 퍽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연달아 찍은 사진들의 경우 몇 초 전, 또는 몇 초 후의 장면들도 함께 구경할 수 있어 더욱 재미있어요. 

 

비비안 마이어의 자화상과 그 속에 나타난 롤라이플렉스 카메라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가 즐겨 사용해 그의 상징적인 카메라가 된  ‘롤라이플렉스’를 만난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됩니다. 롤라이플렉스는 일반적인 카메라보다 더 낮은 곳에서 사진을 찍는 카메라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피사체의 시야 밖에서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는 데 용이하죠. 카메라의 특징이 작가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게다가 그 실물 카메라를 직접 볼 수 있기까지 하다니요! 마이어가 소장하던 카메라는 소중한 전시물이라 눈으로만 관람할 수 있지만, 실제 롤라이플렉스가 구비된 포토존이 있어 카메라를 직접 잡아볼 수도 있답니다. 이 정도면 사진전에 관심 없는 친구도 흥미를 보일 만하죠?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 전시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발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2015)의 클립을 짧게 보여줘요. 그 덕분에 비비안 마이어를 잘 모르는 관객도 어려움 없이 작가와 상황을 이해하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요.
  • - 정해진 주제 없이 수십 년에 걸쳐 찍은 방대한 양의 사진들을 짜임새 있게 구분하며 섹션을 구성했어요. 덕분에 별도의 큐레이션 없이도 알차게 관람할 수 있었답니다.
  • - 포토존 3곳을 제외하면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어 있어 작품 자체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포토존도 그냥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전시의 의미와 이어지는 듯해서 더 좋았고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 굿즈 등 기념품이 별로 없더라고요. 마음에 들었던 전시의 기념품을 사서 두고두고 기억하는 것도 전시 관람의 묘미인데,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에는 사진이 담긴 엽서 몇 종류가 전부라 따로 기념품을 구매하지 못했어요. 

 

💬Editor’s Comment

  일상에서 특별함을 포착해 기록으로 남긴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을 보고 나면 내 갤러리의 사진들도, 내 눈에 담기는 풍경도 괜히 다르게 보여요. 매일 보던 모습인데도 말이에요. 갑자기 다르게 보이는 게 착각만은 아닐 거예요. 정말 똑같은 하루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우리가 놓치고 지나갈 뿐이죠.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에서 새로운 시선을 찾아보세요. 더 재밌는 하루를 얻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등록 : 09-29

키워드

#미술 #사진 #비비안마이어 #사진작가 #사진예술 #일상 #아이들 #무명 #롤라이플렉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