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뮤지컬 <데스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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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고는 하죠. 꼭 비현실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상식과 반대되는 결과를 얻거나 주변에서 듣는 경우가 생깁니다. 개인적으로는 범죄자의 처벌 관련 뉴스를 봤을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피해자가 당한 고통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는 가해자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 소식을 접할 때면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법을 대신해 가해자를 처벌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도 이러한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입니다. 어떤 작품이냐고요? 뮤지컬 <데스노트>입니다.
😮180도 달라진 뮤지컬 <데스노트>
<데스노트>는 2015년 초연을 시작으로 2017년 재연, 2022년 올해 3연을 진행하는 뮤지컬입니다. 신선한 설정과 중독성 있는 뮤지컬 넘버의 향연으로 초연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런데 2022년 버전의 <데스노트>는 유달리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요. 여러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제작사가 변경되면서 <데스노트>가 '레플리카' 뮤지컬에서 '논 레플리카' 뮤지컬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레플리카와 논 레플리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레플리카(Replica)는 원작 공연을 그대로 가져와서 공연하는 작품이에요. 계약 내용 상, 음악이나 대본, 가사뿐만 아니라 무대, 의상 소품 등 작품의 모든 부분을 원작과 똑같이 맞춰서 공연해야 하죠. 반면 논 레플리카(Non replica)는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라이선스 계약 내용에 따라 원작의 일부를 수정, 각색, 번안하는 걸 허용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국내 환경에 맞춘 현지화, 재해석이 가능해요.
올해 선보이는 <데스노트>는 논 레플리카 뮤지컬이기 때문에 무대 구성, 의상, 편곡 등 초·재연과 많은 부분이 바뀌었어요. 특히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에 맞춰 시시각각 변하는 그래픽 영상이 무대에 도입됐는데, 이에 대한 호평이 자자하답니다. 타 뮤지컬에서 보기 힘든 무대 연출 방식이기도 하고,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그래픽 비주얼이 조금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거든요. 이러한 변화 덕분일까요. 뮤지컬 <데스노트>는 3연이 시작된 올해 4월부터 지금까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 몰이 중이랍니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그렇다면 뮤지컬 <데스노트>는 어떤 면에서 기존 작품들과 차별점이 있는지도 알아봐야겠죠! <데스노트> 만의 차별점을 두 가지로 설명드릴게요.
첫 번째로는 주인공들 간의 뒤바뀐 선악 구도입니다. 여러분은 뮤지컬 <데스노트>의 원작이 소년 만화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만화 <데스노트>는 일본의 유명 만화 잡지인 「주간 소년점프」에서 2004년도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보통 소년 만화 하면 패기 넘치는 주인공이 자신과 뜻이 맞는 동료들을 만나 성장하며 빌런을 무찌르는 식의 전개를 생각하죠. 하지만 <데스노트>는 그렇지 않습니다. 소년 만화의 클리셰를 빗겨나가는 파격적인 만화였어요. 그래서 <데스노트>의 빌런 역할을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가 맡았고요. 빌런을 무찌르는 역할은 라이토의 라이벌인 L이 맡았습니다. L만 놓고 보면 그를 선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라이토가 벌이는 짓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L을 선역으로 구분하고 있어요. 라이토처럼 세상을 자기 식대로 재단하거나 자신의 목표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진 않거든요. 그에 반해 라이토는 주변 인물들을 마치 도구처럼 여깁니다. 라이토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아마네 미사를 가스라이팅 하는 일도 서슴지 않을 정도죠. 그렇다 보니 주인공들 간의 대결 양상도 기존과는 펼쳐집니다.
🧐정의는 어디에?
두 번째로는 으레 소년만화라면 가지고 있는 희망찬 메시지의 부재(不在)입니다. <데스노트>는 삶과 죽음, 정의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고 있어요. 그래서 뮤지컬의 첫 번째 넘버인 '정의는 어디에'부터 라이토가 생각하는 정의의 개념을 전달하는데요. 넘버의 가사와 그다음에 전개되는 내용을 생각하면 굉장히 중요한 노래임을 알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이 나라의 정의란 뭘까
바보 같은 권력의 도구
정의란 건 과연 누가 정한 걸까 저 눈 먼 권력 가진 놈이 정해 놓은 기준
제대로 된 정의 진정 원한다면
제대로 된 지도자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해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얘기
정의의 기존 개념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라이토는 아이러니하게도 데스노트를 가진 이후부터 자신을 정의라고 칭합니다. 대놓고 신이 되겠다는 야망을 드러내면서 말이죠. 그 모습을 본 L은 말합니다. 신은 판단하지 않는다고. 그냥 죽을 때가 돼서 죽는 사람을 데려갈 뿐이라고요. 특히나 L은 인간이기 때문에 승부욕, 과시욕이 강한 라이토가 신인 척 남을 판단하는 행동을 더욱 비판합니다.
이렇듯 <데스노트>는 결말부까지 주인공들 간의 첨예한 대립이 이뤄지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거나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사신의 끄적임 한 번에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죠. 이는 사람의 목숨을 걸고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아님을 의미합니다. 라이토는 죽음에 엄청난 의미를 두며 자신이 하는 행동을 과시하지만, 정작 데스노트를 관리하는 사신 류크는 별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에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죠. 이러한 <데스노트>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대부분인 기존 작품들과 정반대 되는 허무주의·염세주의적 분위기를 자아낸답니다.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몰입감 넘치는 무대 구성이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어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I'm ready(사랑할 각오)'를 비롯한 몇 개의 넘버 편곡이 분위기와 맞지 않아서 살짝 아쉬웠어요.
- 전반적인 스토리는 좋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흐름이 다소 끊기는 전개가 보였어요.
💬Editor’s Comment
뮤지컬 <데스노트>는 삶과 죽음, 정의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권력을 잡은 인간은 정의롭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야가미 라이토로 대표되는 권력자의 잘못된 욕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지 생각해보면 <데스노트>의 메인 카피, '누군가는 이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에서 말하는 누군가는 개인이나 소수의 세력이 아닌 절대다수, 대중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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