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너 그림이 될래?
- 1,418
- 0
- 글주소
여러분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요? 모두 사진을 찍지만 그 의미는 다를 거예요. 누군가는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찍지만, 누군가는 단지 강의 자료를 보기 쉽게 모아 두려고 사진을 찍죠. 셀피는 감각적인 자기 표현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사진은 예술일까요? 제 대답은 ‘YES’입니다. 다만 적어도 하나의 조건을 충족시켜야겠죠. 바로 ‘의도’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복제된 이미지가 곳곳에 널려 있어요. 카메라의 탄생으로 작품의 독창성이 훼손되었다는 말도 있고요. 때문에 의미없이 떠돌아다니는 이미지를 깊이 있는 예술로 탈바꿈하기 위해선 작가의 ‘의도’가 필요해요.
영국의 미술비평가이자 사진이론가 존 버거는 “사진이란 기호 체계가 없는 메시지”라고 말했어요. 무슨 말이냐고요? 적어도 사진에서만큼은 작가가 사진에 부여하는 ‘의미’에 모든 게 달렸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사진은 작가의 수많은 시각들 가운데 특별히 선택된 시각이라는 거예요. 결국 사진을 예술로 만들기 위해선 사진 작가의 ‘선택’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작가의 정체
여기, 평범한 강을 찍어 입이 쩍 벌어지는 가격에 판매한 사람이 있습니다. 독일 출생의 사진작가이자 현대 사진의 거장으로 불리는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1955~)인데요.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은 뭐가 다르길래, 이토록 비싸게 팔리는 걸까요?
1955년생인 거스키는 사진작가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사진과 인연이 있었어요.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독일 유수의 사진 학교인 Folkwang University of the Arts에 들어가면서부터인데요. 그는 한때 함부르크에서 포토 저널리스트가 되려 했으나 곧 생각을 바꿔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Art Academy Düsseldorf)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대부분 2m 이상의 대형사진을 촬영하는데요. 그의 작품은 글로벌 자본주의를 대담하게 기록하고, 하나의 사진에 전체 세계의 시스템을 담아낸다고 평가받아요.
거스키의 작품 <라인강 II>은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0만달러(한화 기준 48억 4천만원)에 판매되었어요. 그 덕에 2014년까지 역사상 가장 비싼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거죠.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저는 고요한 강이 주는 평온함과 완전히 혼자가 된 듯한 외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네요. 이 사진은 1년 6개월 동안의 고민 끝에 완성된 작품이에요. 강 건너편에 실제로 있던 발전소 건물과 산책하는 사람들을 디지털 편집 기술로 삭제하고, 흐르는 강의 물결을 끝없는 수평선으로 이어붙인 결과물이죠. 거스키는 자신의 작품 이미지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지구에서 우주를 여행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라고요. <라인강 II> 역시 지구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해요. 전시장에서 <라인강 II>를 직접 보게 되는 날, 우주여행자의 시각으로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묘한 전율이 흐를 거예요!
거스키의 이번 사진전은 8월 14일까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리는데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거스키의 개인전이에요. 이번 전시에서 작품 <얼음 위를 걷는 사람>과 <스트레이프>가 최초공개된다고 하니, 꼭 한번 확인해 보세요!
🙄사진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제 거스키의 작품이 갖는 특징을 살펴볼게요! 그의 작품들 중에는 회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진이 많아요. 거스키의 <무제 XIX>는 여러 점들이 모인 점묘화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튤립밭을 찍은 사진이랍니다. 인상주의적이라고 할까요, 표현주의적이라고 할까요. 대외적으로는 추상표현주의로 일컬어지는 거스키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이렇듯 거스키는 색, 선, 면 이라는 추상회화의 본질적 요소가 잘 드러나는 사진을 다뤄요. ‘튤립밭’이라는 대상의 표면이 아닌 본질에 집중한 것인데요. 마치 추상화를 그리듯 색, 선, 면을 강조함으로써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었어요.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추상화 과정을 거친 것이지요.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직과 수평의 구조도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거스키의 작품이 회화가 아닌 사진이라는 사실이에요. 아무리 그의 작품이 회화적 특성을 띠고 있다고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카메라의 포착이 명확히 드러나는 ‘사진’이죠. 동시에 거스키는 디테일 장인이기도 한데요. <파리, 몽파르나스>를 보면 아파트 창문 너머의 사람들이 보입니다. 수북이 쌓인 책더미와 붉은 침대 프레임 등 개개인의 방 인테리어가 전부 드러나죠. 거대한 유람선의 전면을 찍은 <크루즈>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 디테일들은 전부 그림이 아닌 사진이기에 가능했던 결과고요. 연출 없이 실제 모습 그대로 포착한 ‘사진’말이에요.
즉 거스키는 회화인 듯 아닌 듯한 사진으로 오늘날 사진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요. 더욱이 거스키 작품의 기념비적인 규모는 복제예술과 확실한 차별성을 가지는 부분이에요. 전시장에서 직접 마주하는 거대한 사진은 관람객을 단숨에 압도하죠. 따라서 사진의 예술적 이미지를 색다르게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거고요. ‘디지털 포스트프로덕션’이라는 편집 과정을 통해 사진 속 원근감과 소실점을 삭제한다는 점 역시 거스키 작품의 큰 특징인데요. 본래 사진에는 사진만이 가지는 시간성이 있고, 대상의 표면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 존재해요. 그런데 원근감을 삭제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시각의 중심을 없애고 대상의 본질만을 남겨둘 수 있게 돼요. 더 이상 사진에서 시간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죠. 시간의 통합과 시각의 통합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요. 사진으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겠죠? 입체파 화가들의 그림처럼, 여러 각도에서 본 광경들을 한데 모은 전체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사진이론가 존 버거는 “당신이 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 속 당신의 위치와 관계가 있다.” 고 말했어요. 하지만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은 ‘나’를 유일한 시점으로 두지 않아요. 그의 사진 속 시각의 중심은 관찰자의 것이 아니랍니다. 대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되었죠. 따라서 그의 편집을 거친 사진들은 사진 속 대상의 성질을 생각하게 해요. 결국 개인의 시각보다 더 광대한 범위, 즉 사물이 존재하는 시대와 사회로 시선을 돌리게 되죠. 거스키는 사진 예술 특유의 ‘시간성’을 포착하는 데에 몰두하는 대신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대상의 ‘물성’, 그리고 대상이 존재하는 ‘시대성’ 에 집중하고자 했답니다. 실제로 거스키는 작품 <라인강 II>와 관련해 이런 말을 해요. “우주는 거대하고, 우리의 지각은 매우 제한적이다. 어쩌면 우리가 특정 건물 혹은 장소에 살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우주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한 행성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라고요. 그러니까 거스키는 라인강이라는 이미지를 단순히 ‘라인강 사진’ 혹은 ‘라인강 일대’ 가 아니라, ‘라인강이 흐르는 지구를 바라보는 우리'로까지 그 의미를 확장시킨 거예요. 그는 이렇게 작품을 통해 사진이 될 수 있는 것을 확장하고, 우리가 사진을 보는 방식에 질문을 던집니다.
👀멀리서 한 번, 가까이서 한 번!
분명한 것은, 거스키의 사진은 한 눈에 보기 어렵다는 거예요. 거스키는 사진을 한 컷으로 찍지 않아요. 한 장면을 수차례 반복해서 찍은 후 사진의 부분들을 디지털 기법으로 편집하여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작업하죠. 그러니까 그의 작품에서 전체와 세부가 함께 보이는 거예요. 때문에 거스키 작품을 감상할 때는 유념해야 할 게 있는데요. 멀리서 한 번, 가까이서 한 번 즉 적어도 두 번은 관찰해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먼저, 전체를 관망하며 큰 버전의 작품이 주는 시원함과 웅장함을 경험해 보세요. 그 다음엔 아주 가까이서 나노 단위로 관찰하고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뒤로 물러나 거대하고 완전한 사진을 감상해 보세요. 거시와 미시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거스키 작품만의 특징을 잘 느껴보실 수 있을 거예요.
보이세요? 멀리서 바라보면 추상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초고해상도의 사진이에요. 이처럼 ‘사진과 회화의 경계’가 거스키 작품을 관통하는 요소 중 하나라는 점, 꼭 기억하면서 전시를 관람해 보시세요!
⁉삭제되었기 때문에 더 분명한 세상
일반적으로 전체를 가져가고자 하면 구체성은 조금 옅어지기 마련이잖아요. 더욱이 사진은 정적이기 때문에 더욱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에서는 전체성과 개별성을 모두 볼 수 있어요. 따라서 자연스럽게 전체와 부분, 집단과 개인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죠. 그는 자신만의 편집 기법으로 대상을 뒤틀고, 시대도 뒤틀어 표현해요.
그는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와 소비지상주의, 권력 등 우리가 마주해야 할 장면들을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반면 어떤 대상은 삭제하기도 하는데요. 작품의 의도를 잘 나타내기 위해 불필요한 대상을 걷어내는 겁니다. 거스키는 시대가 가진 전지구적 문제에 대한 관심도 자유로운 편집기술을 거쳐 작품에 담았는데요. 그가 <라인강 II> 에 이어 2018년에 발표한 <라인강 III>는 이전 작품과는 달리 좀 더 황량하고 삭막한 모습으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표현하고 있어요. 선물 거래로 바글바글하던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아날로그 필름을 보관하는 <암실> 등 우리 시대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기도 했답니다. 거스키의 작품은 예술혼을 담은 ‘예술 사진’이기보다, 현대 미술이라는 큰 틀 안에서 사진을 예술로 빚어낸 ‘사진 예술’에 더 가까운 듯해요.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규모있는 작품들을 관람하기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최적의 장소였어요. 드넓은 화이트큐브의 미술관이라니!
- - 미술관 측에서 제공하는 APMA 어플을 통해 무료 도슨트 청취가 가능해, 원하는 작품의 해설을 원할 때 들을 수 있어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 안드레아스 거스키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작품들도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이해하면 더 깊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 봐요. 전시장에서도 작품 해설이 제공되기는 했지만, 작가 개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제공해주었다면 좋았겠어요.
- - 명확한 순서가 있는 전시는 아니었지만, 전시장 내 동선이 직관적이지 않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어요.
💬Editor’s Comment
회화와는 또다른 매력으로 우리가 있는 실제 세계의 순간을 포착하며 영감을 주는 사진예술. 거시와 미시가 공존하는 거스키의 사진작품을 보며, 사진예술만이 주는 묘미를 경험한 것 같아요. 우리가 아는 것들 사이의 경계를 조명해서 낯설게 하는 그의 사진. ‘예술이란 낯설게 하는 것’이라는 아주 보편적인 전제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작품들이었어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의 확장성을 늘 고민하는 예술가가 있다는 것은, 어쩐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세계와 우리의 인생을 더욱 아름답다고 느끼도록 하네요.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