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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카,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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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에서 5월 4일은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지 알고 계시나요? 멕시코 연방의회에서 제정한 ‘한인 이민자의 날’이에요. 가까운 나라도 아니고 아주 먼 멕시코에서 한국인을 위한 날을 만들어 기념해 왔다니 의아하죠? 이를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을 살펴봐야 하는데요. 1905년 5월 4일, 무려 1033명의 한국인이 멕시코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도시인 메리다에서 5월 4일을 한국의 날로 지정했던 것이 지금의 ‘한국 이민자의 날’이 된 거예요. 그러다 1962년 1월 26일부터 한국과 멕시코 두 나라 사이에 공식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요. 2022년은 한국-멕시코 수교가 60주년을 맞이한 해라고 합니다. 60년 동안 이어온 인연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면 좋겠죠?

 

☝️아스테카를 아시나요?

  여러분, ‘아스테카’를 아시나요? 잘 모르시겠다면, 다시 질문해 볼게요. ‘아즈텍 문명’을 아시나요? 일반적으로 아즈텍(Aztec) 문명으로 알려진 아스테카는 마야, 잉카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 3대 문명 중 하나예요. 아즈텍은 아스테카의 영어식 표기법인데요. 아스테카가 멕시코 문화의 원류가 되는 문명이니 멕시코식 발음을 따라 ‘아스테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겠지요?

  우리에게 아스테카는 잔혹한 인신공양을 행했던 문명, 또는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허무하게 멸망한 문명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이건 너무 단편적인 정보예요. 아스테카의 부정적 이미지는 유럽 정복자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고 최근 멕시코와 유럽의 연구팀이 밝혔거든요. 침략을 정당화하고 새로운 종교를 강권하는 시도였던 것이죠. 아스테카는 1521년에 멸망했지만 1978년에 이르러서야 발굴이 시작돼 여전히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어요. 앞으로 더 많은 사실이 밝혀지겠죠? 무엇보다 60년 간 지켜온 우정을 생각한다면, 아스테카에 관한 무한한 오해들에 흽쓸리는 일은 없어야 될 거예요.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전시 포스터 ©국립중앙박물관

 

  한국과 멕시코 두 나라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문화적 시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국내 최초로 아스테카 문명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이 진행되고 있어요. 이번 전시는 아스테카 문명의 재발견을 목표로 해요. 때문에 아스테카의 유물을 단순히 예술작품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일상 용품들까지 함께 다루고 있죠. 아스테카의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보다 깊게 다루기 위함이에요. 멕시코부터 독일,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총 210여 점의 아스테카 유물을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 놓칠 수 없겠죠?

 

아스테카 지하 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포스터를 장악하고 있는 이 소조상은 바로 아스테카 지하 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입니다. 훤하게 드러난 갈비뼈와 간, 쓸개가 어쩐지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죠? 실제 크기도 무려 176cm에 달한다고 해요. 지하 세계를 관장한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으니 압도되는 느낌이 있지만, 저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세요! 장난스런 손동작과 표정을 보면 엄하다기보다는 친근하다고 느껴지잖아요. 아스테카인들은 지하 세계 거인의 뼈로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믿었습니다. 떨어진 낙엽을 거름 삼아 꽃이 자라나듯 죽음을 탄생의 근원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근원적 세계로서의 죽음을 얘기한 아스테카인들의 세계관, 궁금해지지 않나요?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아스테카의 우주관과 종교관은 놀랍도록 다채로워요. 지금까지는 잔혹성에 가려져 잘 알지 못했던 부분들이죠. 이번 전시는 이러한 세계관을 충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어요. ‘우주>멕시코>수도 테노치티틀란>신성 구역>대신전’의 순서를 따라 주변 공간에서 핵심 공간으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사회와 문화 전반에 다양하게 나타나 있는 아스테카의 상징들을 살펴볼 수 있답니다.

  아스테카의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전시 제목에 힌트가 숨어 있답니다. 바로 태양이에요. 아스테카인들은 태양이 곧 세상이라고 여겼거든요. 태양이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제사를 올리고 제물을 바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네 번의 태양이 불탄 뒤 겸손과 성실의 신, 나나우아친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다섯 번째 태양의 세계가 아스테카라고 믿었어요. 태양이 움직이지 않을 때 여러 신들이 자신의 심장을 공양하여 태양이 운행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요. 그래서 신의 희생에 보답하고, 계속해서 태양이 움직이게 하기 위해 피와 심장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행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태양은 아스테카인에게 삶의 현장인 동시에, 신의 희생이 녹아 있는 경배의 대상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태양의 돌>과 전시관 ©핸드메이커

 

  전시실 입구를 장식한 <태양의 돌>에 이러한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어요. 첫 번째 동심원에는 위의 태양 신화가 함축되어 있는데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심장을 도려내는 데 사용한 돌칼 모양의 혀를 지닌 태양신 토나티우의 얼굴이 보입니다. 토나티우는 양손에 심장도 쥐고 있어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태양의 돌>은 멕시코 국립박물관에 있는 유물의 복제품이에요. 유물로서의 역할보다는 아스테카와 태양 신화를 설명하기 위해 전시된 것이지요. 그만큼 아스테카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태양 신화가 중요하다는 의미겠죠?

  아스테카에는 태양의 탄생과 관련된 신화가 하나 더 있어요. 이는 5부 ‘세상의 중심, 신성 구역과 템플로 마요르’에서 살펴보실 수 있는데요. ‘템플로 마요르’는 아스테카의 수호신이자 태양의 신인 ‘우이칠로포츠틀리’의 탄생 신화를 건축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아스테카인들은 아침마다 달이 사라지고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 우이칠로포츠틀리가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는데요. 태양을 중심으로 문화를 확장해 나갔던 것만 봐도 아스테카 문명에서 태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들에게 세상=태양이었으니, 아스테카-태양=0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처럼 아스테카의 세계관을 먼저 이해한 뒤 전시를 순서대로 감상하면 유물 속에 담긴 아스테카인들의 태양 숭배가 훨씬 크게 와닿을 거예요.

 

✨아스테카 문명의 가치

  아스테카인들은 바람의 신, 물의 신부터 옥수수의 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들의 상을 제작하여 섬겼습니다. 때문에 종교의 발달 속에서 아스테카 문명사회의 성장도 읽어낼 수 있는데요. 아스테카가 체계적인 공물 징수 시스템을 바탕으로 먼 지역까지 효과적으로 다스렸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이렇게 걷은 공물은 신상과 신전을 세워 종교 활동을 영위하는 데에 이용되었습니다. 아스테카의 인신 공양 또한 무자비한 학살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당시 아스테카인에게는 신앙이 가장 중요했기에 행해질 수밖에 없었던 풍습이었거든요. 심장을 놓는 그릇이 제사 용품으로 제작될 정도로 체계화되어 있었던 제의였습니다. 물론 인신 공양을 미화할 수는 없겠죠. 다만, 그 잔혹성에 가려진 아스테카인들의 종교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들의 깊은 신앙심과 함께, 다채로운 상징들 또한 아스테카 유적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대표적으로 전쟁과 재생의 신상 ‘시페 토텍’이 있는데요. 시페 토텍은 주로 희생된 사람의 살가죽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었어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살가죽을 벗기는 행위가 옥수수를 심기 위해 대지의 초목을 베고 태우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고 하네요. 게다가 특이하게 생긴 이 칼을 좀 보세요!

제의용 칼 ©국립중앙박물관

 

  제의 때 사용되었던 칼이에요. 눈과 입이 표현되어 있는 게 아주 독특하네요. 아스테카 사람들은 칼이 말을 한다고 믿었는데요. 때문에 눈과 이빨로 칼을 장식하고, 때로는 말풍선과 같은 장치를 붙이기도 하였지요. 칼의 쓰임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까요? 칼이 있어야 진행되는 제의 자체를 신의 말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아스테카인들은 여겼을 거예요. 이처럼 낯설고 어딘가 께름칙하기도 한 아스테카의 도상들은 겉모습만 보고는 그 의미에 다가갈 수 없어요. 아스테카 신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상징들이 가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해야 하죠. ‘잔혹함’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치부하기엔, 아스테카 문명은 아주 깊고 풍요로운 가치를 담고 있으니까요.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어린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어요.

- 영상과 나레이션, AR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체험’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이에요.

- 전시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스테카의 세계관과 그것이 사회 전반에 나타난 양상을 잘 이해할 수 있어요.

- 아스테카 풍속화를 만화처럼 배치하여 무거울 수 있는 전시에 재치를 더했어요.

 

💬Editor’s Comment

  멕시코 문화에 기반한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면 해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요. 코코 속에서 해골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스테카에도 해골은 주요 표현 대상이었습니다. 아스테카에서는 죽음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힘이었거든요. 여전히 아스테카가 무섭다면, 코코를 생각해보세요. 아스테카는 표현 방식이 독특할 뿐, 굳건한 신앙심과 다양한 상징을 갖춘 위대한 문명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계속해서 아스테카를 정복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가치를 놓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전시장에서 직접 여러분의 눈으로 아스테카의 본모습을 파헤쳐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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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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