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들의 ‘블루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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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시상식을 방불케 하는 배우 라인업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청소년 임신, 우울증, 장애인 인식 등 사회가 마주한 이슈를 일상에 잘 녹여내며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가져다주었죠. 그런데 드라마의 제목이 왜 우리들의 ‘블루스’일까요? 블루스보다 더 익숙한 장르인 ‘재즈’도 있는데 말이죠. 그 힌트는 드라마의 기획의도에 숨겨져 있었는데요. 모든 사람들의 달고도 쓴 인생을 응원하는 드라마의 제목이 우리들의 ‘재즈’가 아닌 우리들의 ‘블루스’인 이유, 함께 알아보시죠!
💧블루스의 블루는 무슨 뜻일까?
음악 장르로서 블루스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어요. 블루스는 발라드나 댄스처럼 우리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보다 찾아서 들어야 하는 음악에 가깝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가 즐겨 듣는 대중음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에는 블루스가 있어요. 오래된 역사에 비해 친근한 R&B를 예시로 들어볼까요? R&B는 Rhythm & Blues의 약자로 블루스와 경쾌한 리듬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장르입니다. 블루스에서 이어진 R&B가 락 장르에 영향을 미쳤고, 락 장르가 또 다른 장르로 발을 뻗으면서 블루스의 영향을 받은 음악의 장르는 무척 다양해졌어요.

이렇듯 대중음악의 뿌리 격으로 여겨지는 블루스. 하지만 블루스가 처음부터 음악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블루스는 소리치는 것에 가까운 필드 홀러(field holler)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죠. 필드홀러는 17세기 무렵 미국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동원된 흑인들이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주고받은 아우성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타와 하모니카 등의 연주가 더해지며 비로소 음악적 요소를 갖추게 된 거예요. 오래된 역사 탓에 블루스라는 어원에 대해서는 추측만 난무한데요. 대표적으로 조지 콜먼의 작품 <블루 데빌스>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여기서 ‘블루’는 우울과 슬픔을 뜻해요.
흑인 노예들이 그들의 아픔을 풀어내기 위함이라는 블루스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블루스의 ‘blue’가 ‘우울한’, ‘슬픈’의 의미를 뜻한다는 추측이 그럴듯하지 않나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대본을 집필한 노희경 작가는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블루스를 ‘아픈 사람들이 아프지 않으려고 부른 노래’라고 표현했는데요. 드라마 속 인물들이 각자의 애환이 담긴 사연을 희망차게 풀어 나간다는 점에서 블루스가 가진 역사와도 맞닿는 것 같아요.
🎸가장 올드하면서 가장 트렌디한 음악!
블루스는 흑인 노예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타국인 미국에서 발전하며 음악 장르로서 점차 그 영역이 확대되었어요. 블루스는 여전히 본고장인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인의 각광을 받고 있죠. 큼직한 페스티벌도 다수 개최되고 있고요.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 재즈페스티벌이라면 몰라도 블루스페스티벌이라고 하면 조금 생소할 수도 있으니까요. 블루스 장르에서 가장 대표적인 축제의 장으로 여겨지는 세계블루스대회(International Blues Challenge)를 소개해볼게요. 매년 5월에 돌아오는 세계블루스대회(International Blues Challenge)는 올해로 37회를 맞이했습니다. 미국 멤피스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세계 최대 규모의 블루스 페스티벌이에요. 국내외의 프로 블루스 아티스트들이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만 이 무대에 오를 수 있을 만큼 블루스 장르에서 권위 있는 대회이기도 해요.
놀라운 사실은 이번 대회에 국내 최초로 결승에 진출한 밴드가 있다는 건데요! 밴드 부문에서 무려 TOP5에 들었다니···. 가늠이 안 갈 정도로 대단한 이 밴드는 바로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 입니다. 이번 기록이 감동적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요. 3년 전, 이들이 리치맨과 트리오로 활동할 당시에도 같은 대회에 참가하였지만 예선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죠. 이후 새 멤버 아이호를 영입하는 등 팀을 재정비하고 팀명 역시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로 바꾸었어요. 밴드의 주축 멤버인 리치맨은 중학생 시절 블루스의 매력을 느낀 후부터 지금까지 블루스 음악을 해올 정도로 열정이 강한 아티스트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더 뜻깊은 결실인 것 같아요!
국내에서 블루스는 소수 장르로 여겨지지만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뛰어난 블루스 아티스트가 많답니다. 그중에서도 김목경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블루스 뮤지션으로, 20대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현지에서 블루스를 배운 아티스트예요. 귀국한 후에는 국내 블루스 장르를 개척했고요. 2003년에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인 ‘빌 스트리트 뮤직 페스티벌’에 동양인 최초로 초청받아 공연을 하는 등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죠.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김광석의 곡으로 알려진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원곡자가 바로 김목경이라는 건데요. 그가 유학 시절 한 노부부를 보고 만든 노래를 이후에 김광석이 리메이크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거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블루스에 대한 그의 애정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답니다.
🇰🇷K-블루스를 느끼고 싶다면?
블루스의 황무지라 불리던 국내에서 이토록 다양한 블루스 아티스트가 성장하고 있다니, 놀랍지 않나요? 물론 아티스트들의 뛰어난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의 뒤에 한국 블루스 소사이어티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없었다면 그마저도 어려웠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6년 설립된 ‘한국 블루스 소사이어티’는 국내 블루스 아티스트 지원 및 블루스를 주제로 하는 행사를 개최하는 등 블루스 음악의 성장을 위해 체계적인 관리를 하는 단체예요. 그 중심에는 김목경이 있는데요. 일찍이 본토의 블루스 시장을 경험한 그가 국내 블루스 아티스트의 해외진출 및 상호교류의 필요성을 느끼며 아티스트들을 모으기 시작한 거예요. 이후 세계블루스대회 주최기관 ‘멤피스 블루스 파운데이션’과의 제휴를 통해 현재의 모습까지 성장할 수 있었어요.
한국 블루스 소사이어티가 있기에 우리는 국내에서도 K-블루스를 즐길 수 있는데요. 매년 국내 최대 규모의 블루스 축제인 ‘서울블루스페스티벌’이 개최되기 때문이죠. 2018년부터 시작된 ‘서울블루스페스티벌’에서는 30팀 가까이 되는 다양한 국내 블루스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어요. 뿐만 아니라 한국 블루스 소사이어티는 블루스 전문 예술공간인 코리아 블루스 씨어터를 운영해 매달 블루스 아티스트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답니다.
여전히 블루스 음악이 무엇인지 감이 안 잡히신다고요? 그런 여러분을 위해 영상 하나를 추천드리려고 해요. 바로 최항석과 부기몬스터의 ‘난 뚱뚱해’라는 곡인데요. 발매 당시 솔직하고 유쾌한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 곡은 2019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어요. 영상을 보시면 구슬픈 멜로디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블루스라는 장르를 눈과 귀로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Editor's Comment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떠오른 궁금증이 오늘의 글을 만들었어요. 블루스가 가진 아픈 역사와 그 속에서 피어난 희망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국내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열정. 이 두 가지는 오늘날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 큰 응원이자 자극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여러분, 혹시 길을 걷다가 혹은 주위를 둘러보다 문득 그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세요? ‘저 사람은 어디를 갈까?’, ‘저 사람은 뭐가 그렇게 즐거울까?’ 같은 것들 말이에요. 파워 N의 MBTI를 가진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곤 하는데요. 언젠가는 제가 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보고 있는 건 저 사람의 일부분이자 한 순간일 뿐이야.’ 이 넓은 세상에 사연 없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마다 품고 있는 슬픔과 아픔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그것들을 감추며 살아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때론 소리치고, 때론 감내하면서 우연한 듯 우연하지 않은 희망을 마주하길 바라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속 인물들과 국내 블루스 아티스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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