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적힐 나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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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오일남의 “내가… 뭐라고 했지?”는 작품을 관통하는 최고의 명대사가 되었어요. 이 짧고 굵은 한 줄의 대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누구나 즐겨 쓰는 일종의 ‘밈(meme)’이 되었죠. 이 대사를 들은 성기훈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불같이 화를 내는데요. 여러분도 아마 이런 경험이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와 같은 경험을 공유했음에도 내가 기억하는 바와 상대가 기억하는 바가 달라 당황스러웠던 적 없으셨나요? 친구와 함께 놀러 갔던 장소를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던지, 부모님이 같은 옛날이야기를 매번 다른 내용으로 말씀하신다던지 말이에요!
우리 현대인들은 어쩌면 이런 기억 조작의 늪에 빠져있는지 몰라요. 같은 사건도 서로 인지하고 기억하는 내용이 항상 다르잖아요. 평소에 기억해야 할 정보의 양이 너무 많은 탓인지도 모르겠어요. 학업뿐만 아니라 각종 대인관계 속에서 발생했던 사건들, 우리가 느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모든 감정들, 앞으로의 스케줄… 아, 부모님이 시킨 심부름도요! 이러한 모든 정보를 원상태 그대로 온전히 기억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기억’이란 소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끔 하는 전시가 있는데요. 바로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나너의 기억>입니다!
💭기억은 선택되는 걸까?

<나너의 기억>은 정보가 급변하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그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전시입니다. 특히 최근 2년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우리의 일상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죠. 불과 며칠 전의 정보가 오늘에는 틀린 정보가 되고, 익숙해져 있던 시스템은 붕괴되어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게 되었고요. 모든 것이 낯설었어요. 코로나 팬데믹이 점차 종식되어 간다고는 하나, 아직 코로나 이전 삶의 모습을 온전히 되찾아오지는 못했잖아요. 전시는 이러한 현시점을 ‘우리가 앞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숙고해야 하는 시기’로 보고 있어요.
전시는 크게 3 부분의 파트로 구성되었어요. 1부 ‘나너의 기억’에서는 인간의 오감에 초점을 맞추어 외부 환경을 인식하고 정보를 수집해 기억화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어요. 2부 ‘지금, 여기’에서는 과거의 정보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그 연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요. 마지막 3부 ‘그때, 그곳’은 미래 세대가 구성할 기억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기억될 모습에 대해 그려보게끔 하며 전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내부에는 다양한 종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요. 유화, 영상물, 거대한 설치 작품들까지. 그중에서도 특히 눈여겨볼만한 건 단연 영상이 아닐까 해요. 위 사진은 레바논 출신 작가 아크람 자타리의 영상 작품 <스크립트>의 한 장면인데, 7분 정도의 시간 동안 이슬람 가정의 모습을 담아냈어요. 아버지는 무슬림으로서 살라트(이슬람식 기도)를 매일 5번 해야 하는데, 이를 놀이로 생각한 어린 두 아들이 아버지에게 업히고 뒹굴며 장난치는 모습이 담겨 있죠.
사진처럼 정적인 작품은 보통 쓱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영상으로 된 작품은 타임라인에 따라 관람객의 감상이 점차 달라집니다. 이건 단지 7분 정도에 불과한 영상이지만, 이 영상을 보고 주로 기억하는 내용은 관람객 모두 저마다 조금씩 다를 거예요. 즉, ‘기억의 불완전성’을 꼬집기에 영상만 한 매체가 없다고나 할까요? 여러분도 영상 작품을 중심으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또 추후에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고민해보며 전시를 즐겨보세요!
💤수면으로 보는 기억의 과정

이번 전시는 수면이라는 소재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매일매일의 기억을 구성하고 이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바로 수면이니까요. 기억은 본래 과학적으로 수면 시간에 장기 기억화 된다고 하거든요.
바로 이 수면이라는 소재에 아주 깊게 파고든 작품이 있는데요. 바로 앤디 워홀의 작품 <수면>입니다. 워홀의 친구 존 지오르노가 자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를 고정한 채 촬영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로, 그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해요. 무려 6시간 정도의 상영시간을 자랑하는 작품이죠. 정말로 자는 모습을 찍었으니까요!
워홀의 이 작품은 수면하는 장면을 촬영함으로써 우리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뇌 속 기억화의 과정을 포착합니다. 수면이 기억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죠. 낮에 깨어있는 동안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가 단순 기억의 형태로 뇌에 저장되면,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뇌가 적절한 기억만 보존시키고 불필요한 정보는 없애는데요.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좋을 대로 기억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기억의 취사선택이 우리를 안정적인 심리 상태로 이끌죠. 소위 ‘이불킥’을 불러일으키는 나쁜 기억들이 자는 동안에 점점 희미해진다는 거니까요. 그렇게 불필요한 정보를 지워가며 형성된 현재의 기억이 내일과 앞으로의 미래를 구성하게 되고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지워야 하고, 결국 잘 자야 한다는 거예요! 네? 그 이불킥 때문에 잠이 안 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많은 종류의 작품이 오감을 즐겁게 해 주고, 전시 규모에 비해 감상할 요소가 참 다양했어요!
-인증샷을 남기는 데에 급급한 전시가 아닌, 일상적인 소재에 대해 다시 깊게 생각해볼 계기를 만들어줘요.
- 국립현대미술관이 위치한 소격동은 전시 외에도 즐길 거리가 많은 동네예요. 북촌의 고즈넉함과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꼭 방문해보세요! 근처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외에도 국제갤러리, PKM갤러리 등 방문해볼 만한 미술관이 많답니다. 청와대 개방으로 서촌이 시끌벅적한 지금, 이때를 노려서 북촌 투어는 어떠신가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술관인만큼, 사람이 상당히 많아요. 다만 줄을 설 정도는 아니니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Editor’s Comment
같은 경험도 인간 저마다의 오감이 갖는 한계, 개인의 성향 및 정체성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는 것. 우리 현대인이 이 사실 자체를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요. 개인이 기억을 구성하고, 기억하고, 향유하는 방법은 다 달라도 우리는 결국 같은 공동체에서 살아가야만 하니까요. 하지만 기억이란 개인의 차이로 ‘해석의 영역’에 어느 정도 걸쳐 있기에 우리는 늘 사회 내에서 갈등을 겪죠. 현시대의 많은 사회적 쟁점과 여러 사건들도 결국 미래 세대에게는 기억의 영역이 아닌 기록의 영역이 될 테고요.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현재의 우리 세대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우리가 구성하는 현재의 기억은 어떠한 모습인지 전시를 통해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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