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된 찰나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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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잠실 롯데월드타워 앞에 설치되었던 벨리곰과 인증샷을 찍고 오셨나요? 이 거대한 곰인형 앞에서 사진을 찍고 SNS에 업로드하는 행위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전시된 지 이틀 만에 50만 명이 이 장소를 찾았다고 하니, 정말 엄청난 열풍이었죠. 순식간에 큰 인기를 끈 벨리곰을 보고 있자니 한 가지 생각이 찾아왔어요. 현재는 우리가 직접 살아가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아직 알 수 없지만, 여기서 촬영된 사진들이 ‘클래식’으로 남아 후대에도 길이 전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벨리곰은 이미 철거되었지만, 광장 바로 옆 Museum 209에서는 오래도록 남은 클래식을 주제로 사진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라이프 사진전: 더 클래식 컬렉션>이죠.
😉아~ ‘라이프’ 알지알지!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브랜드 아닌가요? 로고도 아마 익숙할 테고요. '라이프(LIFE)’는 뉴욕에서 발간되던 시사 화보 매거진인데요. 1936년 헨리 루스(Henry Robinson Luce, 1898~1967)가 창간한 라이프는 사진을 중심으로 한 포토 저널리즘의 대표 주자로 활약했답니다. 텔레비전이 대중에 보급되기 전까지 가장 파급력이 강력한 미디어로 전성기를 누렸어요. 그러나 대부분의 월간지가 그랬듯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극복하지 못해 지난 2007년 재정 악화로 폐간되었어요. 현재는 라이프가 남겨온 사진들이 구글 웹 아카이브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에요.
그렇게 기록으로만 남을 것 같았던 라이프는 지난 2019년, ‘링크인터내셔널’이라는 패션 기업에 의해 라이선스 브랜드 형태로 국내에서 새롭게 론칭되었어요. ‘라이프 아카이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말이죠. 여러분도 한 번쯤은 빨간 바탕에 ‘LIFE’라는 글씨가 새겨진 옷, 가방, 달력 등을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혹자는 라이프가 구축한 역사성과 헤리티지를 빌려 ‘장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비추기도 했어요. 하지만 주제가 사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라이프 아카이브는 패션잡화뿐만 아니라, 라이프 매거진의 근본이 되는 사진 전시도 꾸준히 열어왔어요. 작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라이프 사진전: 더 라스트 프린트>를 열어 코로나 팬데믹에 지친 대중에 위로를 건네기도 했죠. 무엇보다 라이프는 역사에 길이 남을 상징성있는 사진들을 남겨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해요. 라이선스 브랜드가 전개한 패션 잡화, 굿즈 등은 장사 수단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사진에는 라이프가 저널리즘을 위해 분투하며 흘린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남아있답니다.
📸라이프(LIFE), 클래식이 되기까지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 중 하나가 된 이 사진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소식을 듣고 기쁨에 찬 커플이 키스하는 장면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고, 미국 해군이 기쁨에 겨워 술에 취해 타임스퀘어 거리를 지나던 간호사에게 갑작스럽게 키스를 한 상황이었어요. 때문에 오늘날에는 사진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 사진은 라이프의 대표적인 사진, 즉 ‘클래식’으로 남게 되었죠. 이처럼 이번 전시는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우리에게 클래식으로 남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라이프의 사진들이 왜 오늘날에 이르러서까지 대중에게 클래식으로 각인되어 있는지 대한 이유를 보여줍니다.
라이프의 전성기 시절 사진이 주를 이루는 만큼 사진들은 대부분 흑백이에요. 당시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만 가지 색상을 단 2가지 색으로 전달했어야 하죠. 검은색과 흰색만으로 사진 속 화자, 피사체의 감정을 온전히 포착하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건 분명 쉽지 않았을 거예요.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진들임을 생각하며 관람하면 더 인상 깊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흑백사진만이 라이프 사진의 유일한 매력은 아닙니다. 전시된 사진들이 클래식이 된 이유가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인 것도 아니고요. 그 무엇보다도 시의성과 역사성을 지닌 가치 있는 기록이자 동시에 작품이기 때문이죠. 전시는 2차 세계 대전부터 냉전시대까지 이어지는 현대 인류 역사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 2022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네요. 위 사진은 김구의 서거 직후 경교장1)에 모인 추모 인파를 사진기사 칼 마이던스가 찍은 것이에요. 총알이 뚫고 지나간 창문과 그 뒤로 펼쳐진 애도 행렬의 구도가 참 절묘한데요. 두 모습이 한 장면으로 합쳐져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망함을 불러일으킵니다. 전시는 전쟁에 참여한 주요 서방국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겪은 우리나라에도 시선을 보내고 있어요. 역사학자 E.H.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했죠. 전시 속 과거의 역사적 장면을 반추해보며 감상하는 건 어떨까요?
- 1) 경교장 : 백범 김구가 사용했던 개인 사저의 이름이랍니다. 서울시 종로구 평동에 위치하고 있어요.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이브 생 로랑, 그레이스 켈리, 오드리 햅번, 무하마드 알리, 김구, 히틀러 등의 다양한 역사 속 인물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사진전! 전시 작품들이 가진 상징성, 역사성만으로도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모두 먼 과거의 인물처럼 느껴지지만, 불과 20세기 인물들이라는 점을 떠올리며 감상하면 또 다른 느낌이 든답니다.
-전시 중반부에 석촌 호수를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요. 벚꽃과 벨리곰은 이제 없지만 맑은 석촌 호수를 보며 ‘물멍’을 즐기는 건 어떨까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라이프’가 라이선스 브랜드인 건 알아요. 그래도 전시 주제와 크게 관련 없는 잡다한 굿즈 판매는 피로감을 줬어요. 공책, 폰케이스, 에코백, 연필, 그립톡, 테이프보다는 전시 속 사진들이 새겨진 엽서를 더 늘리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전쟁의 참혹함을 주목하는 사진이 많은 건 좋았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분량이 지나치게 많았어요. 10장 중에 3-4장은 히틀러였던 기분! 피로하다 피로해.
-전시된 사진들의 주제가 다소 중구난방이란 감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작품의 규모나 인상이 대부분 균일했던 점이 아쉬워요. 특히 전시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느낌이 강합니다.
💬Editor’s Comment
저는 ‘클래식’에 더해 이 전시의 장점으로 ‘대중성’을 꼽고 싶어요. 전시의 이름처럼 클래식으로 남은 사진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의미 있기에 감상할 가치가 있고, 그 사진들은 대부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진인 경우가 많거든요. 친구나 연인과 함께 보러 갔을 때 지나치게 생소한 작품들로 가득해서 왠지 민망했던 적이 있지 않으셨나요? <라이프 사진전: 더 클래식 컬렉션>은 그럴 일이 없는 진입장벽 낮은 전시랍니다. 하지만 전부 아는 사진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서, 균형이 좋다는 생각도 했어요. 아는 사진도 있고 처음 보는 것도 골고루 섞여 있어서 적당히 아는 척도 하며 동시에 적당히 새롭기도 했답니다. 시간이 흐르면 등장할 새로운 클래식이 벌써 기다려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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