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가 성기훈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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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중심이었죠. <오징어 게임>은 독특한 소재와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로 2021년을 K-Drama의 해로 만들었어요. 여기에 뭐니 뭐니 해도 베테랑 연기자, 이정재의 캐릭터 변신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2020년에 개봉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그는 잔인무도한 살인마, 레이 역을 맡았었는데요. <오징어 게임>에서 따뜻한 마음의 소유한 루저, ‘기훈’을 연기한 이정재의 캐릭터는 1년 전의 ‘레이’와 극렬히 상반되며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왔어요. 이렇게 배우들은 매 작품마다 본인의 몸에 새로운 인물을 씌우는 작업, 즉 ‘캐릭터 구축’을 하는데요. 이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바로, ‘캐릭터 분석’입니다. 오늘은 캐릭터를 분석하는 다섯 가지 방법에 대해 알아볼게요.
호구조사 실시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가장 기본적인 호구조사 먼저 들어갑니다. 캐릭터 이름과 나이를 파악하는 것이에요. 이름은 보통 희곡이나 시나리오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나오는 ‘캐릭터 리스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죠. 쉽다 못해 누워서 떡먹기 아닌가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름의 뉘앙스입니다. 그 뉘앙스가 특별한지 평범한지, 강한지, 약한지, 진지한지, 재미있는지 등에 따라 캐릭터의 첫인상도 정해지기 마련이에요. 장르에 따라 이름의 뉘앙스가 더욱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요. 왜 작가가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고민이 필요해요.
캐릭터의 나이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에요. 이미 작가에 의해 나이가 정해진 경우도 많지만, 희곡의 경우에는 나이를 유추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가령, 여자 캐릭터의 나이를 알 수 없을 때, 그녀의 가족 구성원의 나이와 히스토리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겠죠. 나이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분이기 때문에, 많은 분석을 통해 최대한 정교하게 나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해요. 캐릭터의 말투나 행동, 생각 모두 ‘나이’와 관련되어 표현됩니다. 실제 배우와 캐릭터의 나이 차이가 큰 경우도 있는데요. 만약 30살인 배우가 50세의 역할을 구축해야 할 경우, 일상생활에서든 다른 작품에서든 다양한 50대의 인물들의 특징을 파약하고, 내 캐릭터에 대입시키는 분석과 노력이 필요해요.


캐릭터의 신체적 특성을 찾아라!
두 번째는 캐릭터의 신체적 특성, 즉, 외적인 모습을 분석하는 것이에요. 얼굴 생김새, 목소리, 걸음걸이, 등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특징을 갖고 있죠.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신체적 특징은 작품에서도 캐릭터를 파악하는데 큰 힌트가 돼요. 텍스트 상에 작가가 요구하는 신체적 특징이 있다면 가능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나만의 버전으로 승화시킨 다면, 최고의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어요. 캐릭터의 신체적 특징을 잘 살린 배우로는, 영화 <대부 The Godfather(1972)>에서의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를 꼽을 수 있어요.


이 작품을 찍을 당시 그의 실제 나이는 47세, 캐릭터의 나이는 66세로 20년의 나이 차를 극복했어야 했어요. 그는 짙은 이마의 주름과 불독처럼 쳐진 볼, 아주 차분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카리스마 있는 보스의 모습을 그려내었죠. 특히 트레이드마크인 ‘쳐진 볼’은 오디션 당시, 그가 직접 양 볼에 솜을 집어넣어 무서운 인상을 창조한 것이에요. 실제 촬영에서는 특수 제작한 마우스피스로 대체했고요. 이렇게 발론 브란도의 통찰력 있는 캐릭터 분석이 훗날 두고두고 회자될 명 캐릭터를 탄생시킨 것이죠.
주변까지 꼼꼼히 봐요
세 번째는, 캐릭터의 직업, 관심사나 흥밋거리, 종교 등을 파악하는 것이에요. 직업에 대한 분석은 캐릭터에 현실감과 신뢰도를 더하는데요. 가령, 의사 역할을 분한다고 했을 때, 첫인상에서 ‘얼마나 의사처럼 보이는지’가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포인트예요. 만약 의학에 깊게 바탕을 둔 작품이라면, 캐릭터 분석 이전에 의사의 삶 전반에 대한 관찰하고 연구해봐야겠죠. 이와는 다르게, 관심사나 흥밋거리는 인물의 개인 성향을 좀 더 드러내기 위한 분석이에요. 참고로, 외적인 모습과 개인의 취향의 이미지가 꼭 같을 필요는 없어요.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로는 전혀 생각지 못할 관심사나 흥밋거리를 갖고 있는 캐릭터라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종교는 종교적 색채가 작품 전반에 녹아 있는 경우가 많은, 서양 작품에서 특히 더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오래된 유교 문화가 무심코 곳곳에 묻어있듯이, 서양 작품에서의 캐릭터 분석은 그 나라의 보편화된 종교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해요. <미스 줄리 Miss Julie(1888)>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인 장(Jean)에게 들리는 백작의 목소리가 단지 그의 목소리가 아닌, 마치 심판하는 하나님의 목소리와 동일시되는 것처럼요.
분석을 넘어선 노력
네 번째, 이제 배우 자신을 대입해볼 단계예요. 캐릭터와 나를 비교해서 구체적인 표현 방법을 찾아보는 것인데요. 텍스트 속의 캐릭터와 나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세세히 따져보는 겁니다. 배우와 비슷한 점을 많이 내포한 캐릭터라면, 그 캐릭터를 배우 본인에게 씌우는 작업이 더 효과적이고 자연스러울 거예요. 하지만 나와 다른 점이 많은 캐릭터라면? 이 경우에는, 배우가 새로운 캐릭터를 더 분석적으로 구축해 이질감을 없애야겠죠.
마지막 방법입니다. 이제까지 나무를 상세히 살폈다면, 이젠 숲을 보며 전체적인 흐름을 챙길 차례예요. 바로, 초목표와 히스토리를 분석해 보는 것입니다. 초목표 (Super-Objective)는 전체 텍스트를 아우르는 캐릭터의 목표, 삶의 주제를 뜻해요. 이 부분이 정의되지 않으면 겉모습만 따라한 캐릭터로 구축될 가능성이 높아요.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 동안, 캐릭터는 그만의 인생을 살아내죠. 캐릭터의 삶의 방향을 정의하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캐릭터의 성격은 생명력을 갖고 더욱 뚜렷해질 거예요. 캐릭터가 농축시킨 초목표가 작품 전체에 잘 퍼지게 되면, 그에 걸맞은 표현들도 따라오게 됩니다. 히스토리, 즉 캐릭터의 역사를 정리해보는 것도 필요해요. 많은 작품들은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 동안 한 캐릭터의 인생 전체를 보여주지 않아요. 인생의 한 때를 보여주는 작품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캐릭터에 입체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태생, 성장과정, 이 상황에 오기까지의 발자취 등을 텍스트를 바탕으로 정리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 과정을 통해 배우는 캐릭터와 아주 친밀해 질 수 있고, 덕분에 캐릭터를 더 명확히 표현할 수 있어요.
캐릭터를 분석하기 위해서 제시한 위의 다섯 가지 방법은 여러분이 캐릭터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어요. 이외에도, 더 다양한 항목들이 존재하거나 배우에 따라서는 다른 접근 방식을 갖고 있을 수도 있죠. 단, 어떤 방법이건 간에, 캐릭터는 단시간에 구축될 수 없다는 것만은 동일합니다. 어떤 배우든, 텍스트 분석은 물론이고 자신이 캐릭터화 될 때까지 부단한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죠. 끊임없이 탐구하고 표현에 연관시켜 부단히 실험하는 방법만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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