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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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은 EMK뮤지컬컴퍼니 프레스 초청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아픔을 인지할 때 어떻게 행동하시나요? 저는 두 갈래의 기로에서 선택을 해요. 펑펑 울면서 온 몸을 다해 표현하거나, 혹은 필사적으로 즐거운 일을 찾아 기분 전환을 꾀하거나 하는 방법이 있답니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아픔을 대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죠. 외면하기도, 직접 마주하고 받아들이기도, 대항하기도, 순응하기도. 또 누군가는 창작으로 승화해내기도 합니다.
🔥고통의 여왕? 혁명의 여왕!

고통의 여왕. 언제나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인데요. 실제로 그의 삶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을 법한 끔찍한 고통이 다수 수반되었죠. 불과 6세의 나이에 찾아온 척추성 소아마비, 18세 무렵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렸어요. 꿈이자 종교, 분신처럼 여겼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는 여러 차례 프리다를 배신하고 숱한 염문을 뿌린 데다가 급기야는 프리다의 동생과 불륜을 저지르기에 이르고요. 어떤가요? 누구라도 삶을 포기하고만 싶은 고통스러움이 아닐까 싶은데요. 하지만 프리다는 이 아슬아슬한 절벽 끝에서조차 기어코 삶을 선택합니다. 단단히 자신을 무장하고 열정적으로 그린 그림들은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의지를 선물하고 있죠. 그런 프리다 칼로의 삶과 작품을 조명하는 뮤지컬이 3월 1일, 막을 올렸습니다.

뮤지컬 <프리다>는 창작 뮤지컬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EMK뮤지컬컴퍼니의 첫 번째 중소극장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프리다의 생애 마지막 날을 ‘The Last Night Show’라는 쇼 형식으로 보여주는 액자식 구성1)의 뮤지컬인데요.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의 블랙박스형 공연장2)을 통해 한 층 더 쇼와 같은 분위기를 살리고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개성을 보여준답니다. 주인공 프리다, 그리고 세 명의 관념 캐릭터3) 레플레하, 데스티노, 메모리아가 이끌어가는 The Last Night Show에서는 프리다의 변곡점과 선택을 바쁘게 쫓아가죠.
1) 액자가 그림을 둘러서 그림을 꾸며주듯, 바깥 이야기(외부 이야기)가 그 속의 이야기(내부 이야기)를 액자처럼 포함하고 있는 구성의 이야기를 뜻해요.
2) 공연에 따라 객석과 무대를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는 공연장 형태를 말해요!
3) 사랑, 죽음 등 특정한 감정 혹은 관념을 인간으로 육체화한 캐릭터를 뜻한답니다.
🖼뮤지컬, 도슨트가 되다
화가의 삶을 다룬 극이니만큼, 뮤지컬 <프리다> 속에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펼쳐져 있어요. 그리고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프리다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어떤 마음이 담겨있는지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서 대사와 가사를 포함한 연출로 친절한 설명을 동원하죠. 마치 <프리다>라는 공연이 미술관에서 관람객의 작품 이해를 돕는 해설사, 도슨트가 된 것 같달까요? 이번 글에서는 제가 여러분의 <프리다> 도슨트가 된 것처럼, 미리 보고 가면 더 재미있을 관전 포인트들을 짚어볼게요!
🖤🤍블랙&화이트
디에고를 향한 프리다의 연서 중에서는 이런 내용이 있어요. “당신을 그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적합한 색깔이 없어요. 색깔이 너무 많거든요.” 또 그는 검은 것은 실제로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죠. 의상 디자이너 오유경은 프리다의 말들에서 영감을 받아 그의 전부였던 흰색 캔버스와 실제하지 않는다는 검정, 두 가지로 그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습니다. 너무 많은 색으로 채워진 프리다를 다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더불어 검정과 하얀색 의상은 프리다의 실제 삶과 그 이후의 삶,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The Last Night Show를 시작할 때의 관념 캐릭터 3명은 검은색 의상을 입고 있지만, 쇼가 끝날 때에는 하얀색 의상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거든요. The Last Night Show가 끝을 향하고 있는 바로 그때. “날 살게 한 건 하얀 캔버스”라는 가사처럼, 그녀의 삶이 다시 시작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답니다.


🐦벌새
프리다(Frida, 원형 Frieda)라는 이름은 독일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자유, 평화’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어요. 벌새 역시 자유를 상징하는 새로, 그의 조국인 멕시코에서는 사랑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길조라고 여겼죠. 프리다는 멕시코 전통문화와 아즈텍 문명·신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아즈텍 신화에 따르면 벌새는 전사가 죽어서 환생한 존재인데요. 때문에 어쩐지 용맹하게 느껴지는 벌새는 그의 자화상에서도 등장합니다. 사실 프리다의 <벌새와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 속 벌새는 ‘존재 자체로 희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혹은 ‘죽어있는 모습이므로 위태로운 감정을 표출한 것이다’ 등 대조적으로 해석되곤 해요. 뮤지컬 <프리다>는 벌새의 신화적 의미를 드러내기도 하고, 의지를 돋우는 대사를 통해 희망적인 존재로서의 벌새를 더욱 부각했어요. “넌 다리 따위 없어도 돼, 날개가 돋을 테니” 어느 장면에서 벌새가 깜짝 튀어나올지 기대해보세요! 그리고 벌새를 만난다면 프리다의 용기를 마주한 것처럼 반가워해주자고요.

🩸심장, 피, 혹은 불꽃
저에게 있어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극 후반부의 댄스 시퀀스예요. 하늘에서는 붉은 꽃잎이 쏟아지고, 프리다는 그림, 사랑, 그리고 삶을 위한 춤을 추죠. 그 춤은 무척이나 격렬하고 처절해서 마치 몸부림 같기도, 혹은 환희에 찬 것 같기도 했어요. 이때 무대를 채운 붉은 꽃잎은 열정적인 붉은 피처럼, 혹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흔히 많은 이들이 프리다를 표현하는 단어들을 시각적으로, 배우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그 장면은 진한 감동과 전율을 불러옵니다. 더욱이 프리다의 그림 속에서는 피가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요. 고통스러웠던 순간마다 그는 그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아주 직설적으로 표현했어요. 누군가는 아마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을법한 아픔. 프리다는 이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죠. 많은 이들이 프리다의 고통에 집중하지만, 그 고통을 뛰어넘고 매 순간 살아내고자 한 그의 싸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요. <프리다>는 쇼의 형식을 채택해 프리다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아픔을 명백하게 드러내지만 결국에는 삶을 선택하는 그는 불꽃같이 뜨거운 피가 들끓는 심장 그 자체인 듯 보였어요.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 드립니다
- 무대 맛집, 중소극장에서 이런 무대가 가능하다니! 조명, 무대디자인 등 전반적인 무대 연출이 화려해요.
- 회전문 돌게 만드는 각 배우들의 퍼포먼스. 특히 레플레하의 넘버 ‘허밍버드’ 구애 씬에서는 두 배우가 서로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줘요! 전수미 배우는 탭댄스를, 리사 배우는 스캇으로 매력을 한 껏 드러냅니다!
- 인생의 흐름과 그림을 매치시켜 프리다의 작품들이 더욱 생생히 와닿아요.
- 프리다를 불운의 아이콘이라는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않아요.ㅇ요건 쫌 아쉬운데
-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와의 이혼, 그리고 재결합을 거친 이후로 그와 평생 소울메이트같은 부부 이상의 관계를 유지했어요. 생전에도 화가로서 큰 명성을 얻기도 했고, 멕시코 내 민중운동에 참여하거나 여러 분야 인사들과의 만남을 즐기는 등 사회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했고요. 그의 말년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면,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아요.
💬Editor’s Comment

프리다 칼로에 대해 조금만 찾아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을 발견하게 돼요. ‘어떻게 이런 인생을 살 수 있지?’하는 동정 섞인 시선 말이죠. 디에고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프리다가 미련스러워 보이기도 할 거예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런데 말이죠, <프리다>를 통해 바라본 프리다는 더 이상 연민의 대상이 아니었어요. 프리다처럼 누군가를 나 자신 그 이상으로 사랑해본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프리다만큼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프리다의 마지막 작품은 단순한 수박 정물화인데요. 피처럼 빨간 수박에는 ‘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라고 새겨져 있어요. 삶에 의해 몇 번이고 살해당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생 만세를 외친 그를 조금이라도 닮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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