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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연주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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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숨을 죽여 볼까요. 쉿. 잠깐만 그 어떤 소리도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봅시다. 이제 사방이 고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귀를 기울여 보세요. 자. 어떤 소리가 들리시나요? 누군가의 기침소리나 하품소리가 들렸을 수도 있고요. 뱃속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나 침이 꼴깍 넘어가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이런 소리들이 모두 음악이 될 수 있을까요?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는 이렇게 우연히 발생하는 모든 소리가 다 음악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연성 음악(Aleatoric Music)을 개척한, 존 케이지와 그의 곡 <4분 33초>를 만나볼게요.

 

새로운 음악을 쫓은 존 케이지

존 케이지 ⓒFotocollectie Anefo

  191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존 케이지는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 작곡가 중 하나예요. 그는 일찍 피아노를 배우긴 했지만, 지루한 반복적인 연습을 싫어했기 때문에 음악을 전공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었어요. 그러다가 1931년, 그의 나이 19세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작곡가로서의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죠.
 

아놀드 쇤베르크 ⓒFlorence Homolka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보기로 결심한 존 케이지는 1933년,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를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어요. 쇤베르크로부터 작곡에 필요한 기본적인 화성과 대위법 등을 배웠고요. 하지만 존 케이지는 이런 틀에 박힌 전통적인 이론 공부에 답답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2년 만에 쇤베르크와의 공부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선택했는데요. 그만의 다양한 음향 실험을 시도하는 것이었어요. 그는 새로운 형식과 생각을 담은, 새로운 음악에 늘 목말라했어요. 그의 아버지, 존 밀턴 케이지(John Milton Cage, 1886~1964)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잠수함을 만든 사람으로서, 그 당시 굉장히 유명한 발명가였는데요. 그 역시, 이런 성향을 타고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1951년, 존 케이지는 하버드 대학교의 방음시설이 되어 있는 녹음실에 가게 되었어요. 녹음실은 외부로부터 모든 소리들이 차단되도록 만든 방이었죠. 그는 아무런 소리가 안 들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어떤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는데요. 그가 들었던 소리는, 혈관을 타고 움직이는 혈액 소리와 자신의 몸에 있는 신경계가 돌아가는 소리였어요. 이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그는 세상에 완벽한 침묵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만든 작품이 바로 침묵을 연주한 <4분 33초>에요.

 

이게 무슨 음악이야?

<4분 33초> 악보 ⓒSteve Rhodes
<4분 33초> 악보 ⓒJohn Cage

 

  <4분 33초>는 1952년 8월 29일 미국 뉴욕 우드스톡(Woodstock)에 있는 숲 속 매버릭(Maverick) 콘서트홀에서 초연되었어요. 여느 피아노 연주회장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는데요.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 1926~1996)가 악보와 시계를 들고 나와서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어요. 튜더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주는 하지 않고, 시계를 보면서 악장이 바뀔 때마다 피아노 뚜껑을 닫고 열었어요. 그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무대 밖으로 나가버렸죠.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연주하는 모습 

 

  관객들은 당황해 서로 쑥덕거렸고, 그중 일부는 급기야 화를 내면서 자리를 떠난 이들도 있었어요.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작곡가로서 성의가 없다’, ‘음악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도전이다’라며 지속적인 비난을 퍼부었어요. 일반 대중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단 한 사람, 존 케이지 본인만 제외하고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음악이다!

  존 케이지는 <4분 33초> 연주에 아주 만족해했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의 주변에 있는 소리가 연주회장에 가서 듣는 음악보다 더 흥미 있는 음악을 만들어 낸다고 느끼며,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느끼도록 이끌어주고 싶다”라고 말했는데요. 그는 만들어진 소리만이 음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한 소리나 일상에서 나는 소리들 역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더욱 흥미로운 음악의 재료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죠.

 

존 케이지의 사인 ⓒLuisalvaz

   <4분 33초>는 1악장 30초, 2악장 2분 40초, 그리고 3악장 1분 30초, 이렇게 모두 3악장으로 되어 있어요. 그리고 악보에는 <타셋(Tacet)>이라고만 적혀있고, 아무 음표도 적혀 있지 않았어요. 타셋은 ‘조용히, 혹은 연주하지 말고 쉬어라’라는 뜻이에요. 이 악보대로, 연주회장은 조용했죠. 하지만, 사실 관객들은 무언가를 듣고 있었어요. 황당해하는 관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 기침을 하거나, 팸플릿을 확인하려 넘기기도 했을 테죠. 4분 33초 동안 음악은 계속된 것인데요. 이 작품은 존 케이지를 최고의 전위 예술가1), 혹은 음악의 발명가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 아방가르드(Avant-Garde)와 같은 예술용어로, 일반적인 예술의 전통을 파괴하는 혁신적인 예술가를 뜻한답니다.

<4분 33초> 악보에 쓰인 ‘타셋(tacet)’ Ⓒ오마이뉴스


   <4분 33초>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만들어졌지만, 오늘날에는 다양한 독주 악기 혹은 오케스트라로도 연주되고 있어요. 이 곡은 연주를 하는 데 있어, 어떤 법칙이나 한계가 없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음악 작품이기도 해요. 그날 날씨에 따라 혹은 그날 공연장에 온 관객에 따라 다양한 음악이 만들어질 테니까요. 우리도 오늘, <4분 33초>를 연주하는 연주자가 되어보면 어떨까요? 그 시간 동안, 우리에게 들리는 모든 소리에 집중해 보는 거예요. 어떤 재미있는 우연한 음악이 탄생할지, 궁금해집니다.

 

 


ㅇ 참고자료
 - 리처드 코스텔라네츠. “케이지와의 대화.” 안미자 역,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6.
 - 홍승연. “포스터모더니즘을 통해본 존 케이지의 음악고찰.” 민족음악학회, 2003.
 - 김나래. “존 케이지의 음악에 나타난 선사상 연구, 피아노 독주곡 <4’33”>를 중심으로.” 한국불교학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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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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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존케이지 #4분33초 #아방가르드 #전위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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