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포'에 진심이었던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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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올림픽의 ‘꿀잼’이라면, 여러 종목들 가운데서도 쇼트트랙을 꼽을 수 있을 텐데요. 그중에서도 1000m, 1500m와 같은 장거리 경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장거리 경기는 우당탕탕 시작해서 후다닥 끝나버리는 단거리 경기와는 다른 매력이 있어요. 때론 질서 정연하게 때론 한데 뒤엉켜 속도를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는데요. 그 속도에 따라 보는 이들도 마음을 졸였다 풀었다 하곤 합니다. 이렇게 속도의 강약을 주는 것은 전략의 일환이기도 한데요. 음악에서도 속도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예요. 악보에 ‘빠르기’는 음표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죠. 특히, 베토벤은 정확한 템포의 수치를 악보에 넣어 작곡하곤 했어요.
템포 - 때론 천천히, 때론 빠르게!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의 빠르기, 즉 템포의 종류를 먼저 알아볼까요. 대표적으로 라르고(Largo)는 매우 느리게, 모데라토(Moderato)는 보통 빠르기로, 안단테(Andante)는 느리게라는 뜻이죠, 라르고(Largo)는 영어로 라지(Large)라는 뜻을 담고 있어 폭넓게 느린 뉘앙스이고 안단테(Andante)는 ‘걷다’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Andare에서 파생된 단어로, 걸음걸이의 속도를 나타내요.

매우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 빠르기 표시가 구체화되어, 숫자로 빠르기를 나타내기도 하는데요.
M.M. ♩=60
바로, 이런 식으로 표기를 합니다. 많이 보셨을 거예요. 오늘날에는 1분 동안의 박자 수를 BPM(Beats per Minute)라고 합니다. 이것은 음악이 진행되는 빠르기, 곧 템포를 나타내는 표준화된 수치랍니다. 위의 표시는, ‘4분 음표가 1분 안에 60번 연주되는 빠르기’를 나타내요. 주의 깊게 보셔야 할 것은, 악보에 숫자와 함께 적힌 음표가 4분 음표일 수도 있고 2분 음표일 수도 있는데요. 이 음표에 따라 빠르기가 결정됩니다. 빠르기 기호는 M.M. 과 ≒가 사용되는데 M.M. 기호는 생략되는 경우도 있으며 같은 의미로 ≒가 사용되기도 해요. ♩≒60, 이렇게 말이죠.
베토벤 : 템포에 진심인 편

이번엔 베토벤 심포니 8번의 악보를 볼게요. 여느 악보와 마찬가지로 악보의 시작 부분에 숫자로 빠르기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점 2분 음표가 1분에 69번 연주된다는 뜻이네요. 이대로라면 점 2분 음표를 4분 음표로 쪼개어, 1분에 207번의 박자가 연주가 되어야 합니다. 잠깐만요. 4분 음표를 기준으로, 1분에 207번이요? 정말 60초 동안 이런 연주가 가능한 것일까요? 때문에, 이제까지 연주자들은 ‘베토벤의 메트로놈이 잘 작동되지 않았다’거나, ‘적은 박자가 오류일 것이다’라는 가정을 확신했어요. 그리하여, 원래의 속도보다 2~3배는 느리게 연주해 왔죠.
하지만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2.17.~1827.03.26)은 이렇게 박자 계산에 오류를 범할 인물은 아니었어요. 그는 템포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음악의 빠르기를 일정하게 세어주는 기계인 메트로놈을 애용했어요.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메트로놈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새것을 주문해서 작곡을 할 만큼 메트로놈의 템포에 애착을 보였다고 해요. 어쩌면 기계보다도 정확했을 자신의 노련한 감으로 한 번, 기계의 정확한 셈으로 또 한 번 박자를 세어 악보에 넣었을 거예요. 그는 이토록 정확한 연주 속도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음악가였는데요.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베토벤은 본인 스스로가 연주자이기도 했지만, 더 많은 경우 다른 연주자를 통해서 본인의 음악이 연주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이때마다 자신의 곡이 자신의 의도대로 연주되길 원했다고 해요. 다른 작곡가들의 악보를 보면 위의 빠르기 표시처럼, Andante(느리게), Allegro(빠르게), Moderato(보통 빠르기로) 등 템포 지시만 해놓은 악보들이 있는데요. 베토벤은 메트로놈의 정확한 속도를 표기해 넣었어요. 베토벤의 메트로놈 속도 표시가 실제 연주하기에는 매우 어렵다는 주장들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요. 베토벤이 이별의 편지처럼 작곡한 <월광(Moonlight)>소나타를 빠른 템포로 연주한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작곡가가 전하고자 한 이별의 서글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겠죠. 이처럼 음악의 템포는 작곡가가 작곡을 하면서 의도한 곡의 뉘앙스와 표현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연주 속도는 종종 연주자에 따라, 공연장의 크기에 따라 작곡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음악은 무형의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모든 기준을 템포에 맞춰서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작곡가가 제시한 속도를 지켜 연주하고, 음악을 감상한다면 작곡가가 느꼈을 감정과 분위기를 최대한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점차 악보의 ‘빠르기’ 그대로 연주하는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장거리 쇼트트랙 선수들이 올렸다 내렸다 하는 속도에 그들만의 전략이 숨어 있듯이, 악보의 템포 역시 작곡가가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숨은 소리가 아닐까요.
ㅇ참고자료
- 민은기, 『클래식 수업2』, 사회평론(2019)
- 임현정,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피스메이커(2020)
- 『파퓰러 음악 용어 대사전』, 세광음악 출판사(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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