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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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제 친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는 종종 함께 있는 이들의 정신을 쏘옥 빼놓을 만큼 아주 활달하고 생기 있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카메라를 들이미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제일 뻣뻣하고 어색한 사람으로 돌변해버립니다. 그의 매력이 사진으로 잘 담기지 않는 건 퍽 속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어느 날, 저는 아무 의미 없이 점프 사진도 한 번 찍어보자고 권했습니다. 그리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번뜩임을 얻었습니다. “이거다!” 몸을 움직여 더 높이 뛰는 데에 집중한 나머지 그는 어색함을 집어던지게 된 거예요. 저는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만, 이러한 점프의 미학을 이미 오랫동안 다룬 이가 있었답니다.(아쉽…)
『LIFE』 매거진 최다 표지 기록왕

그 주인공은 바로 필립 할스만(Philippe Halsman, 1906~1979), 20세기 중반 가장 중요한 사진작가 중 1인이라는 평을 받는 인물이죠. 『LIFE』 매거진의 표지를 무려 101번이나 장식한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2013년, 필립 할스만의 작품이 국내에서 최초로 전시되었는데요. 그가 점프에 담은 용기와 해방 정신을 전하는 전시가 8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K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Jumping Again》展이죠. 이번 전시를 관람하며 K현대미술관 운영팀 팀장님께 설명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한 층 더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본 필립 할스만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포토샵 이전에 필립 할스만이 있었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필립 할스만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연출을 통해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때문에 사진 분야에서 새로운 리얼리티를 개척한 1인자로 여겨지기도 하죠. 그의 이런 작업은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와도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었고, 대표작 중 하나로 달리와 협업한 <Dali Atomicus(달리 원자론)(1948)>이 있습니다.

때로는 말로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이미지 한 장만으로도 무언가를 대표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처럼요. ‘어디서 본 것 같은데?’하는 이 사진은 필립 할스만이 촬영한 『LIFE』 매거진의 표지 사진입니다. 무엇보다 필립 할스만은 점프를 통해 인물의 진짜 내면, ‘심리적 초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프학(jumpology)’을 펼치고 오랫동안 작업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은 20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인데요. 두 사진 속 그가 주는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흔히 보아온,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는 첫번째 사진과 같습니다. 알 듯 말 듯하고, 은근하고, 아슬아슬한 섹시 스타 말이에요. 반면 두번째 사진은 어떤가요? 솔직하고, 천방지축이고,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죠. 필립 할스만은 이렇게 마릴린 먼로 내면의 꾸밈없는 매력을 한껏 드러내 보입니다. ‘금발 백치녀’라는 일률적인 이미지 속 다양한 그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아낸 것이죠. 마릴린 먼로는 미디어가 자신에게 바라는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점프를 해달라는 그의 요구에 조금 망설였다고 해요. 우리는 평범해 보이는 점프 사진을 통해 한 번의 점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 상태에서 뛰어냈다는 마릴린 먼로의 용기, 그 용기를 이끌기 위해 함께 손을 잡고 뛰어준 필립 할스만의 따뜻함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점프!
전시장에 발을 내디딘 순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공간을 독특하게 조성해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분홍색과 빨간색이 이어진 배경은 필립 할스만의 흑백사진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사방으로 펼쳐진 동선은 다소 복잡하지만 관람객에게 마음껏 돌아다닐 자유를 선물하죠. 관람 동선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미로를 돌아다니는 기분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이미 보고 온 작품이라도 또다시 새롭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전시 서문을 통해 점프학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면, 그의 작품을 통해서는 점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마릴린 먼로의 사진처럼, 이전에 알고 있던 유명인에게 새로움을 느끼기도 하죠.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일단 들여다보게 됩니다. 점프하는 모습이 나와 비슷한 것 같다면 왠지 모를 애정이 솟아나고, 나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일지라도 그는 그대로 호기심이 피어오르게 하죠. 사람마다 어떤 표정과 어떤 자세로 점프를 하는지 궁금해지고요. 이렇듯 자연스레 사람을 향하는 관심은 그가 점프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전했던 온기 중 하나입니다.
해방에의 의지를 드러낸다는 것 또한 점프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는 ‘점프를 하면, 가면이 벗겨진다’고 이야기하며 인간이 가진 사회적 지위, 권위, 입장을 모두 내려놓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지점에 집중했습니다. 점프를 통한 개개인의 ‘심리적 초상’을 이야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점프를 하는 사람은 모두 여러 잣대들로부터 해방되어 그저 ‘솔직한 인간’이 되는 것이죠. 당시 명확하게 차별을 받았던 흑인과 LGBT 옹호자 역시 필립 할스만의 사진 안에서는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듬성듬성 빈 곳이 보이는 인류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관람을 마치며, 운영팀 팀장님께 물었습니다. 2021년에 필립 할스만을 재조명하는 이유, 그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요. 필립 할스만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기도 했고, 그 여파로 전 세계가 후유증을 앓고 있었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꾸밈없고 솔직한 그의 작업물은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를 모르더라도, 도약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큰 희망으로 다가오는 거죠. 오늘날 우리는 복잡한 변화와 코로나19 바이러스 등으로 인해 자아가 위축되는 나날들을 지나고 있습니다. K현대미술관은 그 상황 속에서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자 필립 할스만의 사진을 빌렸다고 전해왔습니다.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필립 할스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다.
- 메세지를 직관적으로 콕 집어 전달한다.
- 도슨트 설명 같은 설명문이 전시장 벽 외에도 별도로 비치되어 있다. 원한다면 더욱 풍부하고 여유로운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다!
- 특정 섹션에서만 사진 촬영이 가능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런데 또 포토존이 예쁘고 의미 있다! (1점프샷공유=1원기부)
ㅇ요건 쫌 아쉬운데
- 서문/설명에 오탈자가 종종 보이고 반복적인 설명문이 있는 등 감상을 깨는 부분들이 종종 있다.
- 사진이 크지 않고 한 섹션 안에 많은 양이 전시되어 있어 몰입도가 떨어진다.
💬Editor’s Comment
좋은 전시란 무엇일까요? 때와 상황에 따라 좋은 전시의 기준은 당연히 변모하겠지만, 현대의 좋은 전시란 ‘주는 것이 있는 전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작가나 작품이나 전시 자체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될 수도 있겠고, 혼란과 불안, 혹은 희망과 확신일 수도 있으며 어느 날은 대화의 시작일 수도 있겠죠. 또 더욱 많은 이들에게 닿기 위해서는 재미난 요소, 시각적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도 물론 있어야 하고요. 이와 같은 시선으로 《Jumping Again》展을 바라보면, 균형을 참 잘 맞춘 전시라고 생각됩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산뜻한 무게감을 주거든요. 저는 앞으로도 점프 사진을 더욱 믿고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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