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미스 줄리>를 통해 알아보는 희곡 분석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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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곡을 앞에 두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나요? ‘희곡은 대체 왜, 만들어지는 것일까?’ ‘누굴 위해 희곡이 쓰이는 것일까?’ 이렇게 희곡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장한 불만이 생겼던 경험이 있으시죠? 희곡이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인 무대 공연을 하기 위한 것인데요. 때문에 우리가 희곡을 단순히 읽는 데에만 그친다면, 희곡의 진면목을 다 파악하지 못한 것이 되겠죠.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일과 단순한 희곡 읽기, 그 차이는 희곡을 얼마나 분석적으로 접근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희곡 분석법을 준비했습니다. ‘희곡 분석법’이라... 이처럼 지루하게 들리는 말이 또 있을까요? 하지만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아래 세 가지의 조건만 기억하신다면요.

 

여긴 어디?! 장소로 분석하기

  첫 번째로, 장소(Where)에 대한 물음을 갖는 것입니다. 지금 이야기가 어디에서 펼쳐지고 있는지, 배경이나 장소를 언급하는 모든 단어에서 힌트를 찾으세요. 시대, 시간적 배경일수도 있고, 구체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죠. 여기에는 3단계의 리딩이 필요합니다. 일단, 가벼운 리딩으로 무대 지시문에 드러난 모든 장소를 노트하고 머릿속에 담아보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무대 지시문에는 작가가 가장 정확히 장소에 대한 설명을 해놓으니, 레벨 1 정도의 난이도라 할 수 있겠어요. 그다음 리딩은 난이도를 살짝 올려볼게요! 캐릭터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장소를 찾아보는 거예요. 캐릭터들이 그들의 대사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장소, 혹은 장소를 암시하는 단어를 확인해보는 거죠. 인물들이 속해 있는 장소에 대하여 그들이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랍니다. 마지막으로, 캐릭터들에게 장소의 중요성이 부각된 부분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세 단계 중 난이도는 가장 높지만, 이렇게 세 차례 ‘장소’에만 집중해 읽다 보면 단계별로 눈에 밟히는 부분이 생길 테고, 충분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자, 그럼 예시를 하나 들어볼까요? 다음은 어거스트 스트린 버그의 희곡 <미스 줄리(Miss Julie, 1888)>에서 발췌한 부분입니다.

 

장소
한여름 밤, 백작 저택의 부엌 


무대 
커다란 부엌 옆 벽은 유단과 장식막으로 덮여 있다. 뒷 왼쪽으로부터 후경으로 향해서 사각을 이루고 쑥 들어가 있다. … 약간 오른쪽에는 두 개의 유리문이 달린 커다란 천장이 둥근 출입구의 일부분(사분의 삼)이 보이고. … 오른편에는 부엌 방에 놓인 은송으로 된 하인들 식탁의 한쪽 모서리가 내밀어 있고, 그 곁에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미스 줄리> 무대 디자인 1 ⓒgoogle
<미스 줄리> 무대 디자인 2 ⓒgoogle

 

  최초의 ‘무대 지시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주 무대는 백작 저택의 큰 부엌이고 두 개의 유리문이 달린 높은 천정은 이곳이 지층 내지는 반지하라는 것이에요. 단순한 장소 찾기에서 끝나지 말고, 좀 더 깊게 들어가 볼게요. 지층이나 반 지하는 어두운 음지를 뜻하죠. 귀족과 하인이 존재하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으로 보자면, 이곳은 귀족보다는 천한 하인들의 장소인 것을 눈치챌 수 있어요.  

장의 대사
“그러나 감히 그럴 수가 없어요. 적어도 이 댁에서는 안 돼요!”
“우리가 이 집에 있는 한, 아직도 장벽이 남아 있어요.”

  위의 대사를 들여다보면 이번엔 인물이 묘사하는 장소를 확인하게 되는데요. ‘이 댁’에서는 안되고, ‘이 집에 있는 한’ 장벽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죠. 이 두 대사에서, 우리는 공간이 갖는 한계성을 알 수 있어요. 희곡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이미 이곳은 백작의 저택이고, ‘줄리’는 백작의 딸이라는 것이 드러났어요. 위의 인용구는 이 집 하인인 ‘장’의 대사이고요. 두 사람에게는 백작이 부재중인 단 하룻밤이 주어지는데요. 그 시간에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게 되고 서툰 사랑을 맹세하지만 결국, 귀족과 하인이란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합니다. 비록 거짓일지라도 줄리와의 사랑을 이뤄내 귀족을 꿈꾸었던 장은 다시 하인의 모습으로, 신분을 저버린 금단의 사랑과 욕망을 선택한 줄리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면서 작품은 막을 내리죠. 이렇게 장의 대사는 이 백작의 저택에서는 결코 자신의 운명은 바뀔 수 없고, 감히 아씨인 줄리와의 사랑도 꿈꿀 수 없는 공간임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흐름을 잠시 멈추고, 시간으로 분석하기 

  두 번째는, 시간의 개념인 ‘언제인가(When)’ 예요. 이 부분 또한 어떤 특별한 하루에서부터 어떤 날/주/연/월/계절/세기 등등! 상세히 읽으며 시간을 파악하는 것인데요, 캐릭터들과 연관된 혹은 그들에게 의미와 중요성이 있는 시간을 노트하며 분석해보는 것 역시 빠질 수 없죠. 이번에도 역시, 작가가 직접 지시하는 무대 지시문 안에 담긴 시간의 개념을 제일 먼저 찾아보고요! 다음으로는 캐릭터가 묘사하는 시간의 개념도 알아볼게요. 희곡 <미스 줄리>의 일부분을 다시 들여다볼까요?

 

아가씨, 우측으로 급히 사라진다. 장 급히 따라간다. 판토마임과 노래, 명절날(성하절) 옷을 입은 농부들 들어온다.  

이제 해가 뜨자 공원의 나무 꼭대기가 햇빛에 반짝인다. 햇볕은 점점 창문으로 해서 방 안에 비스듬하게 들어오고 있다.  

 

현대적 각색의 <미스 줄리> 중 성하절 파티 장면 ⓒgoogle 
<미스 줄리> 중 부엌 안으로 들어오는 여명 ⓒgoogle 

장의 대사
“맥주? 성하절 전야에! 아니, 그것도 고맙기는 하지만, 내가 더 좋은 걸 가지고 있어요.”


줄리의 대사
“오오! 집안 도둑의 공모자가 되고 말았어! 오늘 밤 내가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일까? 성하절 전야에!"
“(황홀하게) 나는 이미 잠들고 있어... 이 방 전체가 마치 연기같이 몽롱해. 그리고 장은 마치 쇠로 된 페치카 같아... 마치 검정 옷에 높은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 같아... 눈은 불이 꺼진 석탄 같고... 그리고 얼굴은 마치 하얀 점, 하얀 탄진 같아... (이제 햇빛이 마룻바닥까지 다가와서 장을 비친다) 이렇게 따뜻하고 기분이 좋은데... (마치 볼을 쬐는 것같이 두 손을 비빈다) 그리고 이토록이나 환하고... 그리고 조용하고!"

  희곡 <미스 줄리>에서 자주 언급이 되는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성하절 전날이에요. 성하절은 6월 24일로 ‘세례자 요한 탄생 축일’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성하절의 바로 전날인 23일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한여름 밤의 꿈>과 시간적 배경이 같다는 사실이에요. 성하제 전날은 ‘남녀가 사랑에 빠져 흥청망청 사랑놀음을 하는 날’로, 이로 인해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속설까지 있죠. 이렇게 ‘성하절 전날’이라는 시간은 귀족 집안의 딸인 줄리와 하인인 장에게 특별한 의미가 됩니다. 이 둘의 불장난 같은 위험한 사랑을 가능하게끔 하는 배경이 될 수 있으니까요.

  위에 인용된 마지막 줄리의 대사는 가장 드라마틱한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요. 이미 ‘장소’에서 언급했듯이 이곳 부엌은 가장 어두운 음지이고, 하인들의 공간으로 귀족들과는 거리가 먼 곳이죠. 이곳에 ‘여명’이 밝아온다는 것은 결국 줄리와 장의 욕망으로 가득했던 ‘한여름 밤의 꿈’은 허망하게 사라지고 환한 빛과 맑은 기운으로 곧 추악한 과거가 세상에 낱낱이 밝혀질 것임을 암시합니다.

 

<미스 줄리> 중 여명 장면 1 ⓒgoogle
<미스 줄리> 중 여명 장면 2 ⓒgoogle

 

너는 누구냐… 인물로 분석하기

  마지막으로, ‘누구인가(Who)’는 캐릭터에 대한 분석이에요.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요. 첫 번째 질문은, ‘캐릭터들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줄리와 장의 관계를 파악해 볼까요? 아래의 상반된 두 장면에 그 힌트가 있답니다.
 

<미스 줄리> 중 ‘장면 1’에 대한 부연 사진 ⓒgoogle

장면 1. 

[줄리] 명령? 점잖은 신사라면 숙녀와 교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장] 정말 지당한 말씀입니다! (두 번째 병을 따서, 한 잔을 마신다)
[줄리] 이번에는 내 건강을 위해서 마셔요!

장, 망설인다.

[줄리] 다 큰 사내가 수줍어하기는.
[장] (술잔을 받들고 무릎을 꿇고 농담조로) 우리 아가씨의 건강을 축복하면서!
[줄리] 브라보! 그럼, 이번에는 내 구두에 키스를 해야지, 그래서 격식이 다 맞지.

장, 잠깐 망설이다가 대담하게 그녀의 발을 들고 가벼운 키스를 한다.

 

<미스 줄리> 중 ‘장면 2’에 대한 부연 사진 ⓒgoogle

 장면 2.  
[줄리] 이 포도주는 어디서 났어?
[장] 술 창고에서요.
[줄리] 우리 아버님 것인데!
[장] 그럼 사위는 마시면 안 된다는 말씀인가요?
[줄리] 그리고 나는 맥주를 마실 거야! 난!
[장] 그런 고집은, 단지 아가씨는 저보다 저속한 취미를 가졌다는 증거밖에 안 돼요.
[줄리] 도둑!
[장] 저를 고발하시게요?
[줄리] 오오, 오오! 집안 도둑의 공모자가 되고 말았어! 내가 미쳤을까? 오늘 밤 내가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성하절 전야에!
[장] 흥.
[줄리] (왔다 갔다 한다) 이 순간, 이 세상에 나같이 불행한 사람이 또 있을까?
[장] 불행하다니오? 약탈을 하고 나서? 저 안에 있는 크리스텔 생각을 해 보세요! 그   여자에게도 감정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줄리]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 없어, 없어! 종은   언제든 종이야.
[장] 그리고 갈보는 갈보고!


  이 장면으로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가요? 결국 장이 마치 주인처럼 우월감을 느끼며 행동하고 있죠. 희곡의 시작과 중반까지 줄리와 장은 신분제로 얽매인 주종관계였지만, 육체적 관계 이후 두 사람의 권력관계는 뒤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줄리와 장의 대사를 통해 이 둘의 관계성과 그 변화에 대하여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죠.

다음 질문은, ‘캐릭터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줄리의 삶을 두고 간략히 이야기해 볼게요. 줄리는 귀족 집안의 딸이면서 동시에 돌아가신 엄마의 유전자를 쏙 빼닮은 채로 태어난 백작 집안의 안주인이에요. 서민의 삶을 동경하여 하인들처럼 편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죠. 장의 또 다른 대사를 예로 들어볼게요.

 

[장] 아가씨는 때로는 너무나 거만했다가도 또 어떤 때는 너무나 귀족다운 데가 없단 말이야. 돌아가신 백작 부인과 똑같아. 부인도 부엌이나 마구간을 제일 좋아하셨거든.

 

  이 대사를 통해 우리는 줄리의 삶에 대한 흔적을 엿볼 수 있어요. 이 외에도, 줄리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은 여러 곳이 있답니다. 이렇게 작은 부분부터 차근차근 찾아가면서 그녀의 인생을 탐구하고 서서히 구체화해보시면 되는 거예요. 이 외에,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던져볼 수도 있겠죠. 

 

- 캐릭터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 직업, 사회적, 경제적 계층 등
- 캐릭터들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다른 캐릭터에 대한 의견, 묘사, 등 
- 캐릭터들은 그들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캐릭터들은 어떤 형태의 권력이나 힘의 통치 아래 살고 있는가?
- 캐릭터들의 삶 속에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희곡 분석’이라는 딱딱한 단어가 이제는 좀 말랑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한 번에 쭉 내려 읽어가기 힘든 희곡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분석을 통해서 희곡을 희곡답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죠. ‘어디인가’, ‘언제인가’, ‘누구인가’ 이 세 항목을 기준으로 분석을 시작해 보세요. 어떤 분들에겐 이 과정이 소모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세세하게 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렇게 나름 ‘글자’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계속 읽어 내려갈수록 머릿속의 그림은 더욱 생생해지고, 그럼 희곡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다가올지 누가 알겠어요?

 

 

 

ㅇ 참고자료
- 김종빈 역. 『미스 줄리』공연대본, 서울: 극단 배우극장,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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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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