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미디어 아트가 된 디지털 사이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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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몰아친 파도!

  도심 속 건물 위. 짙은 바닷물의 하얀 파도가 요동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신 적이 있나요? 마치 투명한 대형 용기 안에 파도 한 조각을 그대로 담아온 듯, 파도는 넘치지 않으며 출렁거렸어요. 저 거대한 양의 바닷물이 내게 쏟아지진 않을까하는 아슬아슬한 기분에 아마, 이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동안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 거예요. 이것은 옥외광고 전광판 안에서 3차원의 실제 파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낸 ‘Wave’라는 작품이에요. 파도는 투명한 물방울을 날리며 앞으로 쏟아질 듯 달려들었고, 그 입체감은 측면으로까지 이어져 어느 각도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파도를 볼 수 있었죠. 기존의 옥외 전광판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영상이었는데요. 이 실감나는 작품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거리에 등장한 파도 ‘Wave’ ⓒD'strict

디지털 사이니지! 정체가 무어냐

  이 옥외광고의 이름은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입니다. 이는 Sign과 –age이 합쳐진 단어인데요. 쉽게 그냥 전광판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비롯해 광장에서 자주 보이는 화려한 영상 광고판들을 모두 ‘디지털 사이니지’라고 부른답니다. 그런데 이 전광판이 기존의 고리타분한 광고판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미디어 아트로서의 가능성을 열었어요. ‘Wave’는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회사 디스트릭트(D'strict)가 선보인 작품으로, 일반 옥외 광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화질의 화면과 입체감을 갖고 있어요.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인데요. 한국의 디스트릭트는 이 분야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업체로, 코엑스 앞 ‘Wave’를 비롯해 뉴욕 타임스퀘어의 ‘Waterfall’, 넥센타이어의 ‘The Infinity Wall’ 등 국내외에서 여러 작품을 진행해왔어요. 제주도와 여수에 자체 전시관인 아르떼 뮤지엄(Arte Museum)을 개관했고 곧 강릉에도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이정도면 홍보 목적으로 하는 단발성의 ‘광고’라기 보다는, ‘아트’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죠? 
 

아르떼 뮤지엄 ⓒArte Museum

  디지털 사이니지가 일반 광고와는 다른 이유를, 눈치 채셨나요? 첫 번째는, 입체감입니다. 관람자가 입체감을 느끼기 위해선, 공간감이 충분히 드러나야 하는데요. 이를 위해 영상 안에 착시를 경험할 수 있는 직육면체의 가상공간을 설정합니다. 영상이 진행되어도 이 공간은 고정되어 있어요. 두 번째는, 역동성입니다. 3D로 만든 물체 또는 사람을 공간 안에 넣어 두고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합니다. 움직임은 추상적이거나 자연적인 요소를 활용하되, 무작위로 움직일수록 더 진짜 같은 모습을 연출할 수 있어요.
 

지금 세계는… 디지털 사이니지 열풍!

  지금 세계적으로도 디지털 사이니지의 열풍이 시작되었어요. 일본의 미디어 콘텐츠 회사 크로스 스페이스(Cross Space)는 신주쿠에 크로스 신주쿠 비전이라는 자체 디지털 사이니지를 설치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영상에는 빨간 목줄을 한 매력적인 고양이, ‘찬네루’가 등장해요. 신주쿠 한복판의 건물 위, 좁은 판 위를 요염하게 걷고 있는 찬네루는 목을 뻗으며 ‘야옹’하고 인사를 건네죠. 건물 아래로 튀어나올 것만 같기도 하고, 디테일한 몸짓과 표정에 계속 눈길이 가는데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이곳은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고 해요. 고양이 ‘찬네루’는 유명세를 타면서 제품의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고,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답니다.

 

신주쿠의 고양이 Ⓒ한경닷컴

  판다 보유국 중국은 판다의 고향으로 유명한 청두에 디지털 사이니지로 귀여운 판다 한 쌍을 선보였어요. 리안트로닉스(Liantronics)가 개발한  LianTronics LED wall라는 자체 개발 기술을 이용했는데요. 판다는 오물오물 자연스럽게 밥을 먹고 뒹굴 거리며 놀았어요. 때때로는 정말 프레임 안에서 튀어나올 듯 얼굴을 내밀어 거리의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죠. 시민들은 자신과 눈 맞춤하는 판다를 향해 앞 다투어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요. 이 곳 역시 청두의 새로운 관광 핫스팟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청두 거리의 판다 ⓒLiantronics

  이번엔 미국으로 가 볼까요.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은 디지털 사이니지를 활용한 환상적인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대표작인 Machine Hallucinations: Nature Dreams는 인공지능이 3억장 이상의 자연사진을 분석하고 추출해 기하학적인 유체 움직임을 창조해냈어요. 인공지능 데이터가 만든 그림이라는 뜻으로, AI Data Painting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요. 디지털로 표현되었지만 자연이 주는 경이로운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어요. ‘디지털 화한 자연’이라는 아이러니 속에 이 작품은 오묘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Machine Hallucinations: Nature Dreams @KOENIG GALERIE NAVE Berlin ⓒRoman Maerz

 

디지털 사이니지가 만들 새로운 풍경

  디지털 사이니지는 모바일을 잇는 4세대 미디어로 불리기도 해요. 광고계에서는 미래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고, 관광자원으로써도 큰 역할을 하고 있어서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죠. ‘미디어 아트’라고하면 선뜻 접근하기가 어려워 보이는데요. 디지털 사이니지는 예술을 우리 일상에 스며들게 했어요. 거리를 걷다가, 운전을 하다가, 문득 창문 너머로 예술을 접할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광고 매체를 이용한 것이기에 공공에 설치되어 노출도가 높고, 대부분의 작품들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영상과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습니다. 
  옥외 미디어 광고들은 지나친 밝기 탓에 조명공해를 유발하고, 운전자의 시선을 빼앗아 안전운전을 방해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어요. 하지만 디지털 사이니지의 등장으로 도심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활기를 더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앞으로 다양한 규모의 제품들이 늘어날 테고, 이들은 더욱 다양한 장소에 설치될 수 있겠죠. 너무나 기술적이면서도 동시에 자연적인 생동감을 구현하는 디지털 사이니지. 삭막한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예술의 힘이 아닐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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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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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미디어아트 #디지털사이니지 #전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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