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허공에 그리는 그림, 틸트 브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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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그림이다!’ 라고 전제할 할 만한 조건이 있을까요? 수 천 년 간 인류는 물감이나 먹 같은 액체를 평평한 곳에 칠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땅 바닥이나 벽에서 시작한 그림의 역사는 종이와 캔버스 위로. 또, 컴퓨터가 발달한 후로는 화면 안에서 이루어졌어요. 기술의 발전으로 그림의 개념은 변화하며 확장되고 있지만, 그 전제는 언제나 1차원적인 ‘평면’이었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요. 무언가의 위에 붓을 터치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요. ‘평면이 아닌 것에 그림을 그릴 순 없잖아?’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릴 수 있습니다. 가상현실 속에서, 그림은 평면을 벗어나 둥둥 떠다닐 수 있어요.

 

가상현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상상! 현실이 되다?

  구글에서 개발한 틸트 브러쉬(Tilt Brush)를 들어보셨나요? 가상현실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다양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그 중, 2016년 세상에 등장한 틸트 브러쉬는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컨트롤러를 붓으로 삼아 가상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입니다. 가상현실에서 드로잉을 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에겐 생소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텅 비어있는 3차원 공간은 그 자체로 투명한 캔버스가 되고요. 붓질이 남긴 획들을 시간이 멈춘 듯 허공에 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 또한 이색적이에요. 화가가 그림에 들어간 건지, 그림이 현실이 된 것인지 모를 정도이니까요.  

 

틸트브러쉬 ©GoogleWatchBlog

구글의 틸트 브러쉬 홍보 영상 © Google Youtube Channel

 

  컨트롤러는 좌,우 각각의 역할이 있는데요. 왼손 컨트롤러는 팔레트와 메뉴 기능을, 오른손 컨트롤러는 붓 역할을 해요. 왼손으로 색과 이펙트를 설정하고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죠. 그림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을 수도 있어요. 별을 반짝거리게 한다거나 물이 흐르는 것같은 느낌을 줄 수 있죠. 이러한 기능들이 가상현실 아티스트의 손에 쥐어 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틸트브러쉬 작가들의 등장

  미국의 안나 드림 브러쉬(Anna dream brush)는 유튜브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고전적인 유화 느낌에 정교하고 화려한 색채가 더해진 그의 그림은, 어느 각도에서나 봐도 입체적이에요. 마치 현실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이죠. 작품의 스케일도 매우 커서 보는 사람조차 가상현실로 빠져듭니다. 또 다른 작가, 더 새비 라이프(The Sabby Life)는 주로 네온사인 색감이 강렬한 SF 세계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요. 디지털 기계 속이나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가상공간이라는 특성과 작품의 컨셉이 잘 어우러져 생생하고 자연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피터 챈(Peter Chan)은 흑백의 톤으로 동화같은 장면을 보여줍니다. 침울하고 가슴시린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의 형태로 풀어내고 있어요. 팀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 악몽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틸트 브러쉬 작품을 그리고 있는 안나 드림 브러쉬©안나드림브러쉬

안나 드림 브러쉬의 페인팅 과정 ©Anna dream brush Youtube Channel

더 새비 라이프의 작품 ©The Sabby Life Youtube Channel

피터 챈의 작품 ©tiltbrush 공식 홈페이지

  이렇게, 틸트 브러쉬 작가들의 작품은 가상현실을 이용해 그만의 유니크한 분위기로 변신합니다. 때문에, 틸트 브러쉬는 단순한 그림판이 아닌 그보다 수준이 높은 그래픽 툴로 볼 수 있어요. 그럼에도 많은 분들에게 아직까지도 틸트 브러쉬가 생소하게 들리실 거예요. 가상현실 콘텐츠의 대중화가 더디게 이루어졌기 때문인데요. 그 핵심엔 ‘기술의 상용화’에 있습니다. VR기기는 주로 게임 장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구글은 틸트 브러쉬를 게임 장비로 판매했는데요. VR기기로 게임을 하지 않는 소비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될 수밖에 없었죠. 그림을 온전히 관람하기 위해선 관람자도 VR기기가 필요 하는 점 또한 큰 단점으로 작용했어요. 비싼 가격과 콘텐츠 부족에 부담스러운 외관까지 더해져 VR 기기가 쉽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틸트 브러쉬는 좀처럼 기를 펴기 어려웠습니다.

 

현재 호환기기와 구매가능한 스토어 ©tiltbrush 공식 홈페이지

앞으로의 틸트브러쉬는 …

  결국 올해 1월 26일 구글은 틸트 브러쉬의 지속적인 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어요. 구글이 AR/VR 영역의 사업에서 하나씩 손을 떼고 있는 상황이었고 틸트 브러쉬의 개발 중단은 예상 가능한 결과였죠. 현재 VR의 부족한 시장성 속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페이스북은 메타로 이름까지 바꾸며 VR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구글은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럼, 이 마술 같은 가상현실의 그림 툴은 한 낮의 꿈처럼 사라져 버리는 걸까요? 구글은 틸트 브러쉬의 개발은 중단하지만 대신 오픈 소스화 한다고 밝혔어요. 세계 최대의 개발자 커뮤니티이자 플랫폼인 깃허브에 틸트 브러쉬의 코드를 공개한다는 것이에요. 개발자들의 집단지성을 통해 획기적인 진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으니, 함께 지켜보도록 해요.

  가상현실은 이미 하나의 산업이 되어 더디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예술 분야가 가상현실에서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변신을 보여 주고 있는데요. 앞으로 그 한계는 점점 더 사라질 거예요. 집에서 극장에 가지 않아도 극장에 있는 것처럼 연극을 관람하고, 전시회와 박람회를 실시간으로 방문할 수 있게 되겠죠. 당연히 가상현실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도 늘어날 겁니다. 회화 작품들 역시 시공간을 초월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할 텐데요. 틸트 브러쉬가 그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 관람자를 인식하는 그림 등, 재밌는 상상을 해보게 되는데요. 또 얼마나 놀라운 작품들이 등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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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12-14

키워드

#문화일반 #틸트브러쉬 #가상현실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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